한국배우 100인의 독백 모노스토리 시즌 1
서울연극협회 지음 / 들녘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악바예 무디악바나마

악바예 무디악바나마

악바예 무디악바나마

노오녜파다 악바예 에불로

네베야조야조 네베야조야조...

 

무슨 외계어인가? 주술인가?

나는 지금 <배우 100인의 모노스토리> 공연 현장에서 직접 녹음한 CD를 들으며 책장을 찬찬히 넘기고 있는 중이다. 생각지도 못한 CD가 들어있어 감격했다. 무대에서 직접 연기하는 배우들의 생동감을 느끼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현대문명 덕에 그들의 발성과 호흡, 섬세한 감정의 떨림까지 이렇게 생생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

 

이 묘하고 별난 발음의 대사는 배우 장두이의 모노로그 <자장가>의 일부로, 아프리카 가나의 자장가라고 한다. 연기를 한지 41년째인 그가 그동안 공연했던 작품 속에 들어 있던 자장가들을 추린 작품이라는 설명을 읽는다. 내 눈 앞에 비록 무대는 없지만, 오히려 상상은 더 자유롭게 날개를 편다. 잔잔하고 어쩐지 애틋하게 들리는 가락을 들으며 장두이가 앉아서 가만히 자장가를 부르고 있는 무대의 배경을, 그 색깔을 상상해 본다. 가나의 작은 마을에서, 한 어머니가 무릎에 아이를 누이고 토닥거리며 노랠 부르고 있는 장면이 겹쳐진다.

그 밖에도 인도 남부지방의 자장가, 그리고 뮤지컬 <오이디푸스>에 나왔던 자장가 등... 세상에 자장가로만 모노로그를 만들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자장가는 음악적인 측면 외에도 매우 극적인 내용과 염원이 깃들어 있어 마치 탯줄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만큼이나 강렬한 감흥과 의미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 중 가장 내 눈에 그려지는, 가장 보고픈 무대는 뮤지컬 <Greek Trilogy>의 자장가이다.

 

"신의 저주로 태어난 오이디푸스. 그의 아버지의 명령으로 목동이 갓 태어난 오이디푸스를 안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이 노래를 불러준다. 그때 나는 이미 애수에 젖을 대로 젖어 있었다...(중략)... 포대기 속에서 잠든 아기를 품에 안고 앞으로 있을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생각하며 부르는 처연한 자장가는, 아기를 재우기 위해 부르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매우 극적인 도구로 사용된다."(242쪽)

 

이런 식으로, 이 책은 마흔 세 명의 배우들의 모노로그와, 그 배우가 말하는 자신의 삶과 연극에 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모노스토리라는 제목의 책이 되었다. 장두이처럼 내가 십대 때부터 좋아하고 그가 쓴 책도 줄 그으며 읽었던 배우도 있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큼 관록있는 배우도 있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들도 있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이 책을 읽고 CD를 들으면서 많은 무대의 풍경을 상상하는 동안 참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듯 했다.

책을 덮고난 후 내 머릿속에는 지금, 다채로운 무대들이 펼쳐지고 있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이제부터 악마가 되거나 천사가 되거나, 저 지구보다 더 높이 오르거나 살안자보다 더 악랄해지거나, 결코 중간에 존재하지 않겠다!"하고 울며 절규하는 무대,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가 아마데우스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하며 "왜 저에게는 욕망만 주시고 재능은 주시지 않은 겁니까"하고 울부짖는 무대, <관객모독>에서 이 세상을 향해 질펀한 욕의 향연을 풀어놓으며 후련함을 느끼는 무대...

한정된 삶에서, 다른 이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 볼 수 있는 배우라는 일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또한 이 각박한 현실에서 몇십년 동안 연극배우라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눈물겨운가. 배우들의 인생, 그리고 무대와 연기에 대한 철학을 읽으며 그 진지함에 숙연해지는 느낌이 든다. 문득 테니슨의 글귀가 떠오른다.

“얼마나 따분한가, 멈춰서는 것, 끝내는 것, 닳지 않고 녹스는 것, 사용하지 않아 빛을 내지 못하는 것은."

멈춰서고 녹스는 것을 거부하고 무대에서 자신의 생을 아낌없이 태우는 배우들의 눈빛들. 그 순수함과 열정에 흠뻑 전염되고 싶다.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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