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 소중한 삶을 위해 지금 멈춰야 할 것들 - 인생과 사랑과 일에 그만두기가 필요한 이유
앨런 B. 번스타인 & 페그 스트리프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완전히 그만두는 능력은 끈기만큼이나 '잘 사는 삶'의 소중한 도구다.'(9쪽)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아, 내가 뭔가 힘차게 때려치웠을 때마다 어르신들의 잔소리에 귀가 따가웠을 때, 이 책이 곁에 있었더라면 곰 같은 힘이 났을텐데. 난 단지 힘들어서 도망쳤던 게 아니라고(물론 그런 이유만일 때도 있었지만^^;) , 중단은 마음과 정신을 자유롭게 해 준다고, 지금 나는 그만두면서 성장과 배움을 허락하고 새 목표를 세우는 능력을 증진시키고 있다고 마음껏 나 자신을 축복했을 텐데.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인내의 신화를 먹고 자란 사람들'(27쪽) 속에서 꽤나 마음 고생했다 싶다.
이 책에서 '그만두기'는, 단순히 하던 일을 멈추는 과정이 아니라 쓸모없는 일과 사람에 대한 감정 낭비를 막고 더 소중한 삶의 목표를 깨닫는 과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뭔가를 그만둔다는 행위에 이렇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입히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우리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은 우리가 뭔가를 그만두는 것을 보통 부정적으로 보기 마련이니까.
'대체로 우리는 나쁜 습관을 끊는 것과 관련이 있을 때만 중도 포기를 능동적인 행위로 본다.'(22쪽)
맞다. 금연이라든가, 금주라든가, 도박이나 게임 중독과 결별했다거나 이런 것들 빼고는 뭔가 중단한다는 것은 언제나 환영받지 못한다. 다들 '끝까지 버티는 것'의 미덕을 입을 모아 칭송한다.
또 인간의 '회피성향' 역시 우리가 뭔가를 그만두기를 꺼리게 만든다고 한다.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할 때, 사람들은 그 일을 그만두고 떠나면 반드시 경험하게 될 미지의 영역, 즉 자기가 잘 모르는 정신적 혼란을 감수하기보다는 자기가 알고 있는 정서적 고통을 계속 견뎌나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23쪽)는 얘기, 정말 그렇다. 헤쳐나가야 할 미지의 영역을 감수하기보다는 차라리 익숙한 괴로움을 택하겠다는 것. 참 그러고보니 인간이란 존재가 약간은 가엾게도 느껴진다.^^;
요즘 뇌 과학 쪽에 흥분해 있던 차에, 우리 뇌가 우리를 어떻게 무조건 버티도록 작용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특히 흥미로웠다. 아득한 원시 시대부터 우리 뇌는 성공 가능성이 아무리 희박하더라고 무작정 매진하는 쪽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쪽으로 진화해왔고, 결국 중간에 멈춰서 새롭게 시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고 습관들을 타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 번 생각한 대로 계속 달려가게끔 되어 있는 거다(요컨대 뇌에도 관성의 법칙 같은 게 있는걸까?). 그 결과 우리는 목표가 정말 달성 가능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에 그리 능숙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굳어진 사고 습관과 중단에 대한 책임 의식은, 이렇게 우리가 만족스런 삶을 지속해가고 새 목표를 설정하는데 자꾸 삐죽 솟은 돌부리가 된다.
임상사회복지사로, 30년 넘게 심리치료사로 활동한 저자의 내공이 묵직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풀어내는 삶의 경험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목표 이탈'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중요한지, 그만둘 줄 아는 사람들일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어째서 더 행복하고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올랐던 얼굴이 있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던 일본의 과학자 야마나카 신야. 널리 알려졌듯이 그의 첫 번째 직업은 정형외과 의사였으나, 그는 수술에 재능이 지지리도 없었다. 다른 의사라면 20분이면 간단히 끝낼 수술을 2시간이나 질질 끌어 지도교수나 간호사, 환자 모두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2년 후, 그는 동맥경화를 연구하겠다고 미국 여행을 떠났고, 막상 미국에서는 동맥경화가 아닌 암을 연구했고, 암을 연구하나 싶더니 귀국한 다음에는 ips세포를 연구했다. 그의 몰두의 대상은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바뀌었다.
만일 그가 의사의 길을 끝내 고집했더라면, 의사가 되기까지의 자신의 노력이 아까워서 그 길을 중단하지 못했다면 세포의 생체 시간을 되돌린 세포를 만드는 데 최초로 성공한 과학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사려 깊고 지능적인 이탈'을 하는 것이 (당연히)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중단과 이탈에 대해 그렇게 인상쓰고 세상 끝난 것처럼 굴지 말자는 것! 중단이나 이탈이 그 자체로 끝이 아니며. 목표를 다시 설정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이며, 자기가 원하는 삶으로 향하는 길에 반드시 필요한 단계라는 것을 알고 현명하게 받아들이자는 것. 그렇게 마음을 먹고, 필요할 때는 기꺼이 뒤돌아보지 않고 이탈하는 거다, 저 멋진 신야 아저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