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머니 이야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강신주 옮김, 조선경 그림 / 북하우스 / 2014년 3월
평점 :
책 표지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수척해 보이는 한 여인이, 메마른 두 손으로 가시덤불을 온 가슴에 가득 껴안고 있다. 가시덤불에 점점이 번지고 있는 붉은 빛들은 꽃잎들일까, 핏방울들일까. 눈을 감고 이 모든 고통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이 여인은, 바로 어머니다.
널리 알려졌듯, 안데르센의 동화는 보통 동화와는 달리 늘 행복한 결말을 약속하지 않는다(어렸을 때 성냥팔이 소녀를 끝내 죽여버린 그를 원망했던 것이 떠오른다.^^;). 또한 비교적 덜 유명한 작품 가운데에는 의외로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 시대에 유행했던 낭만주의의 영향도 있었을 거고, 또 그의 굴곡 많았던 삶도 다소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안데르센의 장례식에 대한 얘기를 읽었던 기억도 난다. 덴마크 국왕과 황태자를 비롯한 수백 명이 찾아왔던 그의 장례식에 정작 그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안데르센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딱히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 이야기>도 일반적으로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결말로 끝맺지 않는다. '죽음'이 아이를 데려간 후, 아이를 되찾기 위한 어머니의 길고 모진 여정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검은 옷을 입은 '밤'의 바람대로 아이에게 들려주던 자장가들을 빠짐없이 들려주고, 가시나무의 바람대로 가시덤불을 품에 꼭 껴안고 따뜻하게 해주고, 진주 모으는 걸 좋아하는 호수의 바람대로 자신의 두 눈을 호수에 가라앉히고(실핏줄들을 혜성의 꼬리처럼 단 두 눈알이 호수로 던져지는 삽화를 그림책에서 만난 신선한 충격!^^;), '죽음'의 온실을 돌보는 할멈에게 자신의 검고 긴 머리카락을 준다.
슬픔에 싸인 어머니가 '죽음'의 커다란 온실에서 수많은 꽃과 풀들 하나하나에 몸을 굽혀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그 수많은 꽃과 풀들 중에서 자기 아이의 심장 소리를 어머니는 알아차린다. 얼마나 놀라운 상상력과 비유인지.
'죽음'이 가져다 준 눈으로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된 어머니는, 그를 협박하기 위해 방금 자신이 뽑아버리려고 했던 꽃들의 일생을 보게된다. 그리고 이제껏 간절히 염원해 왔던, 아이를 돌려달라는 기도는 사라져 버린다. 대신 자신의 눈물과 기도를 부디 잊어달라고,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자신의 기도가 어긋난다면 자신의 기도를 듣지 말아달라는 아이러니한 기도가 이어진다. 마음이 저릿해진다. 얼마나 큰 고통과 괴로움을 참으며 이런 기도를 올렸을까. 아이를 품에 안고싶은 마음을 이기면서까지, 아이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달라는(즉 데려가달라는) 어머니의 절절한 외침.
'어머니는 자기 아이의 심장 박동 소리를 가진, 작고 파란 붓꽃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윽고 꽃에서 아이의 생명이 다시 태어났고, 둘은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기에 이 동화는 슬프다. 하지만 아이들이 읽는 동화라고 해서 죽음, 때론 아픈 삶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안데르센 아저씨가 이렇게 끝을 맺은 것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를 어쩐지 연상되는(이 책을 읽으며 자꾸,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있던 어머니를 그린 콜비츠의 작품이 겹쳐 보였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삽화와, 책 마지막에 옮긴이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까지, 가슴에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다. '죽음'이 떠나고 난 후, 남은 어머니의 가슴속에 부디 눈물만이 가득하지 않았기를. 시간이 지나 아이를 떠나보낸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간 후, 행복하게 아이 곁으로 갔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