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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사건집 ㅣ 코너스톤 셜록 홈즈 전집 9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바른번역 옮김 / 코너스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자못 걱정스럽다. 셜록 홈즈가 오랫동안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관대한 청중들에게 아직도 고별인사를 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인기 테너 가수처럼 될까 봐 말이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셜록 홈즈를 부디 놓아주시라!'(머리말 중에서)
아이구, 참 천연덕스럽기도 하지. 자신이 만든 이 인물이 자기 상상의 세계를 독점하다시피했다고, 이제 제발 놓아달라고 사정(?)하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웃음이 난다. 그리고 다시금 감사한다. 코난 도일이 1891년 런던에서 개업했던 안과에 환자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래서 그가 전문 작가의 길을 가기로 결단할 수 있었으니까. 만약에 그때 런던에 눈병이라도 유행하여 코난 도일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하니 아찔하다.^^;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인물 셜록 홈즈의 활약상을 이렇게 우리가 두고두고 즐길 수 없게 되었을지도.
<셜록 홈즈의 사건집>은 코난 도일이 남긴 최후의 단편집이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셜록 홈즈 시리즈를 애지중지하며 읽어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직 이 단편집과는 만나지 못했던 터라 반갑기만 하다. 어렸을 때 선물받았던 종합과자선물세트가 생각난다. 진작 다 먹었다고 생각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상자 구석에 숨어있던 무척 맛있어보이는 과자 하나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 힘을 뺀 가벼운 책 판형과 깔끔한 표지 디자인이 좋다. 가방에 쏙 넣어 다니면서 틈틈이 꺼내 홈즈와 왓슨의 세계로 빠져드는 시간은 마냥 두근거리고 즐거웠다.
열두 편의 단편들은 뭐랄까, 촘촘히 정교한 거미줄처럼 얽힌 치밀한 사건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장편과는 또 다른 유쾌한 맛이 있다. 사건의 전모를 밝혀갈 때의 무서움이나 긴장감이 덜한, 부담없고 산뜻한 느낌. 물론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는 법! 홈즈는 특유의 번뜩이는 추리와 날카로운 통찰로 언뜻 보기에 불가사의해 보이는 다채로운 사건들을 마술처럼 휘리릭~ 해결해낸다.
단편이니까 좋은 점이 또 있다! 심지어 내 추리가 맞아떨어지기도 한다는 것. 홈즈의 신출귀몰한 추리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종종 어질어질했던 장편에서는 감히 꿈꿔보지도 못했는데~(감격 중)
홈즈가 의뢰인의 편지를 읽으며 "현대와 중세, 현실과 공상이 뒤섞여 있어서 도저히 읽어줄 수가 없군. 자네가 보기엔 어때, 왓슨?"(133쪽)이라고 운을 떼는 '서식스의 뱀파이어 사건'이 내가 참여(?)한 사건이다. 뱀파이어의 혐의를 받고 있던 페루 출신의 여인이 '혹시 상처에 입을 대고 독 같은 것을 빨아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홈즈가 집안을 장식한 각종 무기와 도구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장면을 보고 그 무기와 뱀파이어 사건을 머릿속에서 살짝 연결시켜봤는데... 나중에 홈즈가 내 생각과 비슷하게 추리하는 것을 읽으며 느낀 그 감동을 어찌하리.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열두 편의 단편 속에서 만난 홈즈는 여전히 까칠하고, 창백하고, 치밀하고, 예리하고, 명석하고, 우아하고, 매력적인 탐정으로 살아숨쉬고 있었다. 코난 도일이 머리말 마지막에 썼던 대로, '삶의 근심을 잠시 잊고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렸을 적 처음 추리소설의 세계로 나를 초대해주었던 홈즈. 그때 당연하게 믿었던 것처럼, 지금도 이 예리한 탐정과 덜 예리한 동료는 이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것만 같다. 눈을 빛내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