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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처음에<그저 좋은 사람>을 읽었고 이어서<이름 뒤에 숨은 사랑>, 얼마 전에는<저지대> 그리고 이번에<축복받은 집>... 어쩌다보니 줌파 라히리가 발표한 작품들 중에서 그녀가 쓴 소설 작품은 다 읽게 됐다.. 물론 한 작가가 발표한 소설 작품을 이토록 다 읽었다는 건 그만큼 작가의 작품들이 내 취향이었다는 얘기겠지만, 설령 취향이 아니었다해도 이런 작품들은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정화시켜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여겨지기에 많은 독자들이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이번에 읽은<축복받은 집>의 작품들은 너무도 아름답고 심지어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의 작품들이기에 나 역시 책에서 받은 감동들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시적인 문제 - 소통의 부재라는 주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명이 가져다주는 폐해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물질문명의 비대한 발달로 인하여 사회의 최소 구성 단위인 가족들 마저도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 잠시나마 정전이라는 기회(?)를 틈타 그동안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는 작품의 내용을 보면서, 문명이란 때때로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다만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전이 끝나고 다시 전기가 들어오자, 어두웠을 당시의 솔직함 보다 더욱더 잔인하고 현실적인 주인공들 간의 솔직함을 보면서, 세상엔 무조건 솔직하다고 해서, 무조건 대화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을 작가 라히리의 재치있는 필력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 어린 소녀의 눈에 비춰진 가족의 의미와 그 소중함을 피르자다 씨의 행적과 인도의 사회상을 통해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피르자다 씨가 자신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부모님의 조국인 인도에 대해서,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어린 소녀인 주인공이 조금씩 깨닫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든 한 나라이든 간에 갈라지거나 이별하지 않고 한데 뭉쳐 살아가야 한다는 걸 본인 스스로와 독자들이 절감하도록 이 작품은 알려준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피르자다 씨가 가족들과 재회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 주인공이, 그동안 기원의 뜻으로 매일 밤 한 개씩 먹었던 사탕을 마지막으로 한 개만 먹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는 부분은 이 작품의 압권이 아닐까한다..
질병 통역사 - 서로 간에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세상을 풍자한 작품이다..
지역과 나라마다 언어가 달라서 의사 소통이 안 되는 경우는 통역사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만, 진짜 문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 심각한 경우이다.. 사람들은 보통 서로 간에 이견이 생겼을 때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미로 '소통'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말을 해도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이해부족의 불통이야말로 진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8년 전 불륜으로 낳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자식에 대해서 관광가이드 카파시 씨에게 상담을 의뢰하는 다스 부인과, 그런 부인의 심정도 모르고 다스 부인과의 짜릿한 밀회를 상상하며 그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카파시 씨의 에피소드로, 우리는 작품에서 어이없는 불통의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진짜 경비원 -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작품<아Q정전>에 등장하는 아큐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의 주인공 부리 마... 물론 아큐 보다는 훨씬 선하고 야비하지 않으며, 아큐에게는 없는 성실성과 나름의 귀여움(?)도 갖고 있는 캐릭터이다..세파에 시달려서 이리저리 떠도는 한 늙은 여인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냉점함을 느끼게 된다.. 작품 중반에 나오는 공동주택의 입주자들이 집단적인 대중심리에 빠져 주인공을 몰아내는 장면에선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게 된다..
["더 많은 비가 내렸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차양 밑에서 부리 마는 신문지로 머리 위를 덮은 채 쪼그리고 앉아 장마철 개미떼가 입에 알을 물고 빨랫줄을 따라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본문 133쪽 중에서..
모르겠다.. 이 부분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물이 나왔다..마구마구.. 그리고 알게 됐다.. '연민의 정'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섹시 - 나는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섹시의 참뜻(?)을 알지 못햇다.. 작품 속에서 로힌이라는 어린 아이가 '섹시'의 뜻을 묻는 주인공의 질문에 "그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예요."라고 대답한다.. 아버지가 그랬다는 것이다.. 결국,,우리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에겐 섹시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정말 의미심장한 결론에 맞딱드리게 된다.. 그리고 그 결론에 솔직히 공감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내 남편, 내 아내에겐 에로틱한 감정을 덜 느낀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내 아내와 남편에게는 성적인 매력을 거의 못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섹시의 참뜻(?)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인 미랜더가 자신과 불륜을 맺고 있는 상대방 남자에게 외도 청산을 선언할 때 이런 말을 하려고 생각한다..[이건 그녀에게도 그의 아내에게도 공정하지 않으며, 자신과 아내 모두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관계를 더 끌고 가는 건 온당치 않다.]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불륜과 외도라는 행위로 헐떡이고 있는 수많은 개자손들이 이 작품을 읽어봤으면 한다..
센 아주머니의 집 - 이 작품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는 '센'의 뜻이 사람의 이름이 아닌 말 그대로 기가 '쎈' 혹은 대가 '쎈" 아주머니라는 선입견을 가졌었는데, 막상 사람의 이름 앞에 붙는 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고향과 조국을 등지고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에 적응을 잘 못하는 한 인도 여인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긴, 한 편의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기존의 것에 길들여져 자기와 맞지 않는 새로운 것을 결국 거부하고 마는 센 아주머니를 소년의 눈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한 아름다운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신구 간의 세대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작가의 현명한 생각도 아울러 이 작품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여겨진다..
축복받은 집 - 이 소설집의 대표 제목이<축복받은 집>이어서 나름 꽤 큰 기대를 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지 막상 다 읽고난 뒤에는 기대 만큼 대단한 그 무엇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부부란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아껴주고 결국엔 싸움이 났을 때 져 주는 게 현명한 태도라는 걸 새삼 알게 해준 정도라고나 할까? 내가 모르는 그 어떤 메시지가 이 작품 속에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웬만하면 사람들 마다마다의 그 무엇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관용의 너그러움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비 할다르의 치료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백 년 동안의 고독>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작가 라히리가 때때로 이런 SF환상(?)소설도 쓸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미있게 느껴진다..
간질병을 앓고 있어서 하고 싶은 결혼도 할 수 없었던 주인공 비비는 그 어떤 치료로도 자신의 병을 고치지 못 했지만, 어느날 한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은 뒤 임신을 하고 그 아이를 출산하면서 부터 자신의 간질병이 완치됐다는, 거짓말 같은 감동 스토리가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어떤 고질적인 병이라해도 치료를 위해선 그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 유종의 美... 란 이런 것..
대개 이렇듯 아름답고 무엇하나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은 아이들 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청운의 푸른 꿈을 간직한 어린 학생들을 위해, 힘든 세상이어도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튼실한 울타리 안에서 세파에 꺽이지 말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라는, 용기백배를 주문하는 작품으로서 젊은이들에게 강한 설득력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103살 크로프트 부인의 삶을 통해서 백 년 전과 지금이 얼마나 큰 차이와 변화의 모습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옛 것을 고집하지만 한편으론 달착륙에 성공을 한 현대인들게 찬사를 보내는 부인의 모습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기성세대의 업적과 배려를 배우게 된다..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네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 본문 309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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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히리의 작품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그녀의 작품엔 은유가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도 내 가슴에 느껴지는 바에 의하면 작품의 첫소절 부터 끝부분까지 읽는 내내 단 한 순간도 "이게 무슨 말이지? 이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렇게 의문을 느끼며 난처한 상황에 빠졌던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그토록 쉽게(?) 완독을 했어도 내 밑에서 부터 역류하는 감동의 느낌은 어떤 책에서보다도 육중하고 강력했다..
진정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어렵다고 느껴지는 주제도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사람들이다.. 무조건 단어를 꽈배기 처럼 비틀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4차원의 그 무엇들 처럼 어렵게 써 대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뭘 주장하려고 하는지' 당췌 알아챌 수 없도록 만드는 대다수의 작가들과는 분명 구분 되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난 이런 사람들을 진정한 작가라고 생각하며, 그 몇 안 되는 진정한 작가들 중에서 줌파 라히리를 첫 손에 꼽고 싶다..
나는 대다수 작가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본인 만은 여타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글을 쓸 줄 안다는, 그래서 다른 이들과는 구분되어지고 싶어하는 욕망... 또는 내가 명색이 작가인데, 작가가 되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책을 읽고 공부했는데 그 티(?)를 내야지 그저 일반인들 처럼 단어를 고르고 글을 쓴다는 건 도저히 자존심 상 용납이 안 된다는 심리... 하지만 이런 이유와 심리 탓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 듯 갈수록 책들의 내용이 이해받기 어려워지고, 결국엔 독자들로 부터 외면받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아닐런지...
라히리의 소설 작품들은 어렵지 않다.. 설령 내가 모르는 그 어떤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어서, 그건 문학적으로 실력있는 독자나 평론가들 만이 알아낼 수 있다고 해도 난 결코 섭섭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내 마음 속엔 내가 느낀 라히리의 작품들이 들어차 있고,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내가 라히리의 매니아가 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