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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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교훈을 얻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웬만하면 어린시절에 고전을 접하는 것이 그 사람의 올바른 인성을 갖추는 데 필요함과 동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나처럼 어린시절에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던 사람들에겐 이제 와서 고전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교훈을 얻기에는 이미 잔뼈가 굵어질대로 굵어져서 그닥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다만 요즘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일들 중에서 이 작품과 웬지 관계가 있어보이는 한 가지 내용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대신할까 한다..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예전에 tv에서 만화 좀 보고 자란 사람들은 이 노래 가사만 들어도 금방 떠오를 유명한 만화 <캔디>의 주제가이다.. 뜬금없이 웬 만화영화 주제가 타령이냐고 뭐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 책 <제인 에어>의 주인공 제인의 캐릭터가 바로  이 만화의 주인공 캔디와 판박이다.. 아마도 <캔디>를 쓴 작가가 제인에어라는 캐릭터를 벤치마킹한 건 아닐까 내 맘대로 추측해보면서, 괴롭고 슬픈 삶을 꾹 참고 헤쳐나가다보면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 작품의 大주제를 어린 나이의 독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교훈으로 되새길 수 있으리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감상평을 우선 남기고 싶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 작품의 하일라이트이자 최고의 관심꺼리,, 그러니까 제인에어의 애정관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로체스터의 청혼에 거절을 표하는 제인의 모습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도덕주의자로서의 가치관과 그에 따른 행동이라 여겨지지만, 만약 제인이 그 청혼을 처음부터 승낙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 두사람이 결혼을 하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면 혹시라도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가 저지른 화재로 인해 로체스터가 큰 상처를 입는 일이 안 생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너무도 지나친 도덕적 신념 때문에 청혼을 거절하고 종적을 감춰버렸던 행동은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로체스터의 첫부인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그래서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불가능한 여자이므로 제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로체스터의 청혼을 받아들일 만한 분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제인의 융통성 없는 도덕적 신조로 인해서 로체스터가 오히려 더 큰 화를 당한 건 아닐런지,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다 된 뒤에야 이제라도 로체스터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는 제인의 모습은 솔직히 야속하고 은근히 얄밉다는 생각또한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고전 읽기는 교훈을 얻기 위함이니 이제 정석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전 kbs뉴스 앵커이자 전 국회의원이었던 박성범 전 의원과 결혼한 당대 최고의 여성 앵커 신은경.. 그리고 영화배우 설경구와 결혼한 탤런트 송윤아.. 또한 유부남 영화감독 홍상수와 같이 살고 있는 배우 김민희.. 이 세 명의 여자들에겐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남자의 부인들이 엄연히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결코 이혼을 거부했음에도 아랑곳하지않고 그 아내들을 내쫓고서 자기가 들어앉거나 들어앉으려고 하는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감히 이런 추측을 해본다.. 신은경, 송윤아, 김민희 등등은 다른 책이라면 몰라도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만큼은 결코 읽지 않았거나 혹시 읽었다면 마음으로 읽은 게 아니라 발바닥으로 읽었음이 틀림 없다는 것을..

 

살다보면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싫어질 수도 있다.. 무조건 검은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 해야 한다는 건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다만 우리는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해도 나보다 더 먼저 그사람을 사랑했고 그래서 그사람과 현재도 샅이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두 남녀가 정식으로 헤어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그게 바로 최소한의 예의이자 먼저번 사람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예의와 배려는 <제인 에어>를 제대로 읽은 사람들이라면 결코 잊지 않을 행동양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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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서기실의 암호 - 태영호 증언
태영호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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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한테 여쭤봐라~ 김정은 같은 놈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 니들이 전쟁을 얼마나 알고 북한식 공산주의를 얼마나 아니? 지금 현재 북한을 쥐고 흔드는 놈들이 물러나지 않는 이상 통일은 하나마나야.. 젊은 니들만 개고생 할 테니 두고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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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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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며칠 뒤에 같은 반 친구 설터(가명)가 우리집으로 전화를 했다..

소크라테스(내 가명)~ 뭐하냐?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설터가 내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엎드려서 만화책 보고 있어.  

좀 의외라는 듯 시큰둥하게 나는 대답했다..

설터는 같은 반 친구지만 나하고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좀 노는 녀석이었고 나는 정반대로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 따라서 우리가 그닥 친하게 지낼 일은 더더욱 없었다..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 나눠 피우는 사이 정도쯤이었을까?

갈 데 없으면 나랑 같이 시골 외할아버지 사시는 데 놀러가지 않을래? 

평소답지 않게 또다시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설터가 내게 제안했다..

최소한도 나와 단둘이 방학 때 놀러갈 사이는 아닌 녀석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으니 좀 당황스러웠지만,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거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그러마고 대답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설터는 꽤 흥분돼 있었다.. 애들도 아니고 무슨 외할아버지 댁에 놀러가는데 저렇게 기분이 들떠있을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덩치는 커다란 녀석이 정신연령은 아직도 어린애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 뭐가 그리도 좋은지 계속 주절주절 지껄여대는 덕분에 심심하진 않아서 그건 좋았다.. 지금쯤 집에 있었다면 날씨는 더운데 할일은 없고 그저 방바닥에 퍼질러져서 누나가 구독하는 여학생 잡지나 훔쳐보고 있었을 테니까..

잠시 눈을 돌려보니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문득 영어 쪽지시험 때 틀린 갯수만큼 30cm 나무 자로 뺨을 때리던 미친개 선생님의 손동작 같아보였다..

 

그러니까,,지금도 기억하는 건 버스를 타고 충청남도 조치원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지명이 잘 생각나지 않는 한적한 시골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당시에 연세가 팔순쯤 되신 설터의 외할아버지가 당신의 아들내외,,즉 설터의 외삼촌 내외분과 같이 살고 계셨다.. 

외숙모가 늦은 점심으로 만들어주신 수제비와 오이무침을 맛나게 먹고 해가 길어져 아직도 훤한 초저녁 시골마을의 풍경을 디저트 삼아 음미하며 걷고 있었는데 순간,,허연 살덩어리가 검정빛 냇물과 한몸으로 뒤엉켜있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가버렸다.. 저 앞 냇가에서 어떤 여자가 반라의 차림으로 멱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열일곱 살 남자아이의 가슴은 저절로 붕뜨며 뜨거워졌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그날 밤 설터와 나란히 누워 잠을 자는데 좀전에 냇가에서 봤던 그 여자 생각에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내가 곁눈으로 힐끗 훔쳐보면서 지나가는데도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볼일만 보던 그 여자. 마음이 싱숭생숭. 늦게까지 뒤척이다 잠이 들어서인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곁에서 자고 있던 설터는 벌써 세수를 마친 뒤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ㅡ 소크라테스~ 우리 오늘 조치원 가자.. 여긴 심심하고 답답해서 재미가 없지?  할아버지 뵀으니까 됐고 조금 있다가 떠나자.. 

어제 봤던 그 여자를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설터가 하자는대로 할 수밖에..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내외분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조치원으로 향했다.. 내가 죽기 전까지 다시는 못 와 볼 것 같은 곳을 등진 채.. 

 

조치원은 설터의 외할아버지가 사시는 시골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곳이었다.. 설터의 또다른 외삼촌 내외분이 살고 계신 이 곳에서 며칠간 지내자고 설터가 제의했다..

평범한 단독주택에 들어서니 어른들이 계셨고 우리는 인사를 드린 뒤 밥을 먹고있는데 잠시 후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단발머리 여학생이 보였다.. 하얀 교복 상의와 감청색 치마. 결코 예쁘지 않은 얼굴. 시골 소년 같은 피부색. 여학생들만 앉아있는 학급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애들 중에 하나. 대학입시 때문에 방학인데도 학교에 가야만하는, 설터와 나보다 두 살 위인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설터의 외사촌 누나였다..

 

그날 저녁,, 외삼촌과 외숙모는 며칠간 여행을 가신다고 하면서 집을 떠나셨다..

집에는 설터와 나, 외사촌 누나 그리고 얼마 전에 결혼을 한 스물대여섯 살쯤 된 설터의 외사촌형 내외 이렇게 남게 되었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설터와 나 그리고 외사촌 형 이렇게 세 사람은 고스톱을 치면서 밤 늦은 줄도 모르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외사촌 형과 갓 결혼한 형수님이 남편에게 이제 그만 자러 가자고 보채기 전까지는..

 

갑자기 내가 누워있는 방안이 고요해졌다.. 끈적거리는 밤공기가 혀를 낼름거리며 내 몸 구석구석을 핥아대고, 오래된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아주 천천히 똑딱거리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

설터와 내가 있는 방을 지나 마루 옆에 있는 조그만 방에서 설터를 부르는 외사촌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설터~ 이리 좀 와볼래? 

옆에 누워있던 설터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외사촌 누나가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몇시쯤 됐을까?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 나는 이렇게 불을 환히 켜둔 채 드러누워 천장의 낡은 벽지 무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고, 저 옆방에선 설터와 외사촌 누나가 맞고스톱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고스톱을 칠 거면 나도 좀 끼워주지 왜 지들끼리만 치고 저러는지 샘이 났다..

쟤 왜 안 자니? 

내가 누워있는 방에서 외사촌 누나가 설터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히.

잠시 후,,우당탕 방바닥에 몸 부딪치는 소리. 비닐장판에 살갗이 스치며 찌익찌익 거리는 소리. 가끔씩 터져나오는 거친 호흡소리. 애써 참아보지만 조절이 잘 안 돼 나오고야마는 옅은 신음소리.

 

얼마 후 설터가 실실 쪼개면서 내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로마로 개선한 카이사르 처럼.

누나가 너 왜 안 자냐고 묻더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설터가 나보다 싸움을 훨씬 잘했으니까.. 그냥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아버렸다.. 잠이 올 리 없었다.. 방에 불을 껐지만 활활 타오르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퍼져있는 내 모든 촉수는 결코 꺼지질 않았다..

그냥 이렇게 잠들 수는 없다.. 나도 외사촌 누나가 있는 방에 가볼까? 나도 설터처럼 누나와 섹스를 해볼까? 어쩜 누나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아니지. 만약 그렇게 했다가 누나가 소리라도 지르면서 욕을 해대면 그땐 어떡하지? 그럴 땐 힘으로라도 제압해서 덮칠까? 소삼하고 용기없고 겁쟁이인 내가 과연 그런 힘이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만 하면서 밤을 꼬박 세웠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날 밤엔 외사촌 누나가 설터를 한번 더 불렀고, 설터는 좋아라하고 달려갔으며, 설터가 다시 돌아왔을 땐 나역시 억지로 자는 척을 하느라 개고생을 했다.. 이게 여행이라니.

 

나도 모르게 얼핏 잠이 들었던지 마당의 인기척 소리에 그만 잠이 깨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뭐에 이끌린 듯 몸을 일으켜 바깥을 내다보니 외사촌누나가 학교에 가려는지 대문을 열고 있었다..

순간,,한여름 눈부신 아침 빛살에 흠뻑 젖어 유난히 더 하얗게 보였던 누나의 교복. 그리고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 

고개를 돌려보니 설터는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입을 헤벌리고 여전히 잠에 빠져있었다.. 지나가면서 발끝으로 녀석의 허벅지를 슬쩍 걷어찼다.. 그래도 모르고 잠만 자는 놈.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때까지 내 주위에서 타인이 섹스를 하는 걸 어젯밤 처럼 실감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빨간책이나 야한 영화를  통해 본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정말 현실적인.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근친상간. 성폭행 만큼이나 나쁜 짓.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건 하면 안 되는 짓.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고, 굳이 핑계도 대지 않고 솔직히, 설터의 외사촌 형이 낚시를 하러가자는 제의도 거절한 채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설터와 조치원을 버려두고.

올라오는 차 안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설터는 왜 나와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을까?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 혼자서 조치원에 가면 좀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고, 누구랑 같이 가긴 가야겠는데 소크라테스가 아닌 다른 친구, 그러니까 좀 드센 놈을 대동했다가 괜히 말썽이 나면 골치 아플 수 있다는 걸 미리 염려한 건 아니었을지.. 외사촌 누나와의 로맨스(?)를 꿈꾸는데 나 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조용한, 자기주장이 없어보이는 친구가 필요한 건 아니었을지. 내가 꿈(?)꿨던 것처럼 설터가 하는 짓을 보고 자기도 하겠다고 나서는 그런 드센 녀석과 동행했다면 정말 문제가 커질 수도 있으니까. 

 

설터는 외할아버지를 뵙기 위한 것, 친척 어른들께 인사를 하려는 것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외사촌 누나와 그짓을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에 나를 끼워놓고 엑스트라로 써 먹은 것이다.. 외사촌 누나와는 벌써 일 년 전부터 그짓을 해 왔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설터의 말을 나중에 들었을 때 비로소 지난 여름에 있었던 일들의 그림이 또렷하게 그려졌다..

 

친한 친구도 아닌 설터에게 당시엔 배신감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나를 자신이 노는 데 이용만 했다는 것에 분노 마저 치밀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언제부터인가 설터와 나 둘 중에 누가 더 위선적일까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오십 걸음에서 백 걸음 사이에 놓여있는 도토리들이 서로 자기 키가 크다고 싸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러자 어느새 설터에게 그동안 가져왔던 불쾌감이 뜨거운 프라이팬 위의 한 조각 버터가 되어 녹아 없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근친상간에 대한 기억마저도.. 

 

나는 이제 더이상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아니다.. 세상은 변했고 나도 변했다.. 무감각해졌고 뻔뻔스러워졌으며, 내 마음 속 진심이라는 그릇이 바닥을 드러내보이고 있음을 시인한다.. 하지만 가끔 옛날 생각이 나고, 그럴 때면 하얀색 교복을 차려입은 단발머리 여학생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쟤 왜 안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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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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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그저 좋은 사람>을 읽었고 이어서<이름 뒤에 숨은 사랑>, 얼마 전에는<저지대> 그리고 이번에<축복받은 집>... 어쩌다보니 줌파 라히리가 발표한 작품들 중에서 그녀가 쓴 소설 작품은 다 읽게 됐다.. 물론 한 작가가 발표한 소설 작품을 이토록 다 읽었다는 건 그만큼  작가의 작품들이 내 취향이었다는 얘기겠지만, 설령 취향이 아니었다해도 이런 작품들은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정화시켜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여겨지기에 많은 독자들이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이번에 읽은<축복받은 집>의 작품들은 너무도 아름답고 심지어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의 작품들이기에 나 역시 책에서 받은 감동들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시적인 문제 - 소통의 부재라는 주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명이 가져다주는 폐해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물질문명의 비대한 발달로 인하여 사회의 최소 구성 단위인 가족들 마저도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 잠시나마 정전이라는 기회(?)를 틈타 그동안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는 작품의 내용을 보면서, 문명이란 때때로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다만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전이 끝나고 다시 전기가 들어오자, 어두웠을 당시의 솔직함 보다 더욱더 잔인하고 현실적인 주인공들 간의 솔직함을 보면서, 세상엔 무조건 솔직하다고 해서, 무조건 대화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을 작가 라히리의 재치있는 필력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 어린 소녀의 눈에 비춰진 가족의 의미와 그 소중함을 피르자다 씨의 행적과 인도의 사회상을 통해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피르자다 씨가 자신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부모님의 조국인 인도에 대해서,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어린 소녀인 주인공이 조금씩 깨닫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든 한 나라이든 간에 갈라지거나 이별하지 않고 한데 뭉쳐 살아가야 한다는 걸 본인 스스로와 독자들이 절감하도록 이 작품은 알려준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피르자다 씨가 가족들과 재회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 주인공이, 그동안 기원의 뜻으로 매일 밤 한 개씩 먹었던 사탕을 마지막으로 한 개만 먹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는 부분은 이 작품의 압권이 아닐까한다..

 

 

질병 통역사 - 서로 간에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세상을 풍자한 작품이다..

지역과 나라마다 언어가 달라서 의사 소통이 안 되는 경우는 통역사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만, 진짜 문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 심각한 경우이다.. 사람들은 보통 서로 간에 이견이 생겼을 때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미로 '소통'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말을 해도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이해부족의 불통이야말로 진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8년 전 불륜으로 낳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자식에 대해서 관광가이드 카파시 씨에게 상담을 의뢰하는 다스 부인과, 그런 부인의 심정도 모르고 다스 부인과의 짜릿한 밀회를 상상하며 그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카파시 씨의 에피소드로, 우리는 작품에서 어이없는 불통의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진짜 경비원 -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작품<아Q정전>에 등장하는 아큐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의 주인공 부리 마... 물론 아큐 보다는 훨씬 선하고 야비하지 않으며, 아큐에게는 없는 성실성과 나름의 귀여움(?)도 갖고 있는 캐릭터이다..세파에 시달려서 이리저리 떠도는 한 늙은 여인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냉점함을 느끼게 된다.. 작품 중반에 나오는 공동주택의 입주자들이 집단적인 대중심리에 빠져 주인공을 몰아내는 장면에선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게 된다..

 

["더 많은 비가 내렸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차양 밑에서 부리 마는 신문지로 머리 위를 덮은 채 쪼그리고 앉아 장마철 개미떼가 입에 알을 물고 빨랫줄을 따라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본문 133쪽 중에서..

모르겠다.. 이 부분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물이 나왔다..마구마구.. 그리고 알게 됐다.. '연민의 정'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섹시 - 나는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섹시의 참뜻(?)을 알지 못햇다.. 작품 속에서 로힌이라는 어린 아이가 '섹시'의 뜻을 묻는 주인공의 질문에 "그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예요."라고 대답한다.. 아버지가 그랬다는 것이다.. 결국,,우리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에겐 섹시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정말 의미심장한 결론에 맞딱드리게 된다.. 그리고 그 결론에 솔직히 공감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내 남편, 내 아내에겐 에로틱한 감정을 덜 느낀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내 아내와 남편에게는 성적인 매력을 거의 못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섹시의 참뜻(?)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인 미랜더가 자신과 불륜을 맺고 있는 상대방 남자에게 외도 청산을 선언할 때 이런 말을 하려고 생각한다..[이건 그녀에게도 그의 아내에게도 공정하지 않으며, 자신과 아내 모두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관계를 더 끌고 가는 건 온당치 않다.]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불륜과 외도라는 행위로 헐떡이고 있는 수많은 개자손들이 이 작품을 읽어봤으면 한다..  

 

 

센 아주머니의 집 - 이 작품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는 '센'의 뜻이 사람의 이름이 아닌  말 그대로 기가 '쎈' 혹은 대가 '쎈" 아주머니라는 선입견을 가졌었는데, 막상 사람의 이름 앞에 붙는 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고향과 조국을 등지고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에 적응을 잘 못하는 한 인도 여인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긴, 한 편의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기존의 것에 길들여져 자기와 맞지 않는 새로운 것을  결국 거부하고 마는 센 아주머니를 소년의 눈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한 아름다운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신구 간의 세대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작가의 현명한 생각도 아울러 이 작품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여겨진다.. 

 

 

축복받은 집 - 이 소설집의 대표 제목이<축복받은 집>이어서 나름 꽤 큰 기대를 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지 막상 다 읽고난 뒤에는 기대 만큼 대단한 그 무엇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부부란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아껴주고 결국엔 싸움이 났을 때 져 주는 게 현명한 태도라는 걸 새삼 알게 해준 정도라고나 할까?  내가 모르는 그 어떤 메시지가 이 작품 속에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웬만하면 사람들 마다마다의 그 무엇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관용의 너그러움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비 할다르의 치료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백 년 동안의 고독>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작가 라히리가 때때로 이런 SF환상(?)소설도 쓸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미있게 느껴진다..

간질병을 앓고 있어서 하고 싶은 결혼도 할 수 없었던 주인공 비비는 그 어떤 치료로도 자신의 병을 고치지 못 했지만, 어느날 한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은 뒤 임신을 하고 그 아이를 출산하면서 부터 자신의 간질병이 완치됐다는, 거짓말 같은 감동 스토리가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어떤 고질적인 병이라해도 치료를 위해선 그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 유종의 美... 란 이런 것..

대개 이렇듯 아름답고 무엇하나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은 아이들 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청운의 푸른 꿈을 간직한 어린 학생들을 위해, 힘든 세상이어도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튼실한 울타리 안에서 세파에 꺽이지 말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라는, 용기백배를 주문하는 작품으로서 젊은이들에게 강한  설득력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103살 크로프트 부인의 삶을 통해서 백 년 전과 지금이 얼마나 큰 차이와 변화의 모습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옛 것을 고집하지만 한편으론 달착륙에 성공을 한 현대인들게 찬사를 보내는 부인의 모습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기성세대의 업적과 배려를 배우게 된다..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네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 본문 309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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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히리의 작품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그녀의 작품엔 은유가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도 내 가슴에 느껴지는 바에 의하면 작품의 첫소절 부터 끝부분까지 읽는 내내 단 한 순간도 "이게 무슨 말이지?  이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렇게 의문을 느끼며 난처한 상황에 빠졌던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그토록 쉽게(?) 완독을 했어도 내 밑에서 부터 역류하는 감동의 느낌은 어떤 책에서보다도 육중하고 강력했다..

 

진정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어렵다고 느껴지는 주제도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사람들이다.. 무조건 단어를 꽈배기 처럼 비틀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4차원의 그 무엇들 처럼 어렵게 써 대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뭘 주장하려고 하는지' 당췌 알아챌 수 없도록 만드는 대다수의 작가들과는 분명 구분 되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난 이런 사람들을 진정한 작가라고 생각하며, 그 몇 안 되는 진정한 작가들 중에서 줌파 라히리를 첫 손에 꼽고 싶다.. 

 

나는 대다수 작가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본인 만은 여타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글을 쓸 줄 안다는, 그래서  다른 이들과는 구분되어지고 싶어하는 욕망... 또는 내가 명색이 작가인데, 작가가 되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책을 읽고 공부했는데 그 티(?)를 내야지 그저 일반인들 처럼 단어를 고르고 글을 쓴다는 건 도저히 자존심 상 용납이 안 된다는 심리... 하지만 이런 이유와 심리 탓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 듯 갈수록 책들의 내용이 이해받기 어려워지고, 결국엔 독자들로 부터 외면받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아닐런지...

 

라히리의 소설 작품들은 어렵지 않다.. 설령 내가 모르는 그 어떤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어서, 그건 문학적으로 실력있는 독자나 평론가들 만이 알아낼 수 있다고 해도 난 결코 섭섭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내 마음 속엔 내가 느낀 라히리의 작품들이 들어차 있고,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내가 라히리의 매니아가 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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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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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한국의 위대한 인재들 중에서는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없거나, 설령 있다해도 그리스어 원어판 조르바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하기사 밥벌이도 안 되는 그리스어를 전공할 사람이 없다는 건 당연하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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