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 내 영혼에 조용한 기쁨을 선사해준
이하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책의 서문에서 보았듯이 고전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자세 중에서 확실성을 확보하기 전에는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하며, 아울러 어떤 사안이든 철저하게 논증을 검토해야 하는 인식의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구절을 마음 속에 새기며 이 책을 읽는 내내 심오한 뜻을 나의 능력으로는 인지하는 데 너무 많은 부족함을 느꼈다.. 따라서 책 속에 실려있는 주제들을 내 스스로 감히 요약하기엔 역부족을 실감하기에, 그저 평상시 살아오면서 가져왔던 미숙한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걸로 독후감을 마칠까 한다..

 

 

쇼펜하우어의 고독 - 고독이 인간의 삶에 있어 때때로 필요한(자아성찰을 위해서) 현상이라면 모르겠으나, 어떤 이들에겐 그 고독으로 인해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는 이유가 된다면 나는 그 고독한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에서 그들에게 돈을 좀 넉넉히 주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가난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도 고독하게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니체의 초인 - 이육사 시인의 시 <광야>에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초인은 누구일까?.. 내 자신을 새롭게 정립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수 있는, 내 몸 속에 잠재되어 있는 새로운 초인을 내가 과연 불러낼 수 있을까?

 

데카르트의 사유 - 생각할 수 있는 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너무나도 많은 타인들... 나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힘은 독서에 있다.. 생각하기 전에 책을 읽고 또 읽는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책밖에 없음을 실토한다..

 

밀의 자유 - 무엇보다 내 자신으로 부터의 자유를 원한다.. 헤세의<데미안>에서 아프락사스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고정관념의 울타리라는 구속에서 내 자신의 알껍질을 깨부수고 탈출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 난 그것을 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 - 어렸을 때 난 눈깜박이 습관,, 나중에야 알았지만 틱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은 살아감에 불안을 많이 느끼는 불안의 틱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매일매일을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으면 오히려 잠이 안 오는... 나쁜 습관을 바로잡는 데는 역시 좋은 습관으로 맞불을 놓는 게 상책일 듯싶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독서라는 틱장애를 앓고 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 - (1) 먹는 즐거움이 주는 쾌락. (2) 섹스를 통한 오르가즘에서의 쾌락. (3) 돈을 벌고 지출할 때의 쾌락. (4) 지독히 외로울 때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친구를 만날 때의 쾌락. (5) 내 사지육신이 아직까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건강함의 쾌락. (6) 지극히 이성적이고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자각할 수 있는 쾌락. (7) 아직도 미래를 꿈 꿀 수 있다고 자부하는 기대감의 쾌락. (8) 죽을 때까지 책을 곁에 두고 살 수 있는 쾌락.

 

몽테뉴의 자아 - 책 속의 대자연이 나에게 일거리를 맡겼다는 대목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부단없는 자기 학습을 통한 나 찾기를 결코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반성이라도 할 수 있었음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프롬의 홀로서기 - 마조히즘, 사디즘 모두 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즉 타인이 곁에 있을 때만 성립될 수 있는 인간의 이상심리이다.. 인간은 혼자서라면 무조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라 마조히즘 사디즘이 차라리 그 외로움 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슬픈 현실이 이렇듯 건전치 못한 심리가 생겨난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이 증세를 치료해야 한다면 홀로서기가 그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칸트의 결혼 -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니 차라리 하고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책임 없는 결혼을 통해 파생되어지는 잔존체들에게 어찌 보상을 하려고 그리도 막말, 막행동을 하는지 각성할지어다.. 진정한 자유는 책임질 수 있는 행동으로 결혼을 생각하는 자들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헤겔의 가족 - 일단 가족이 됐으면 무조건 견뎌야 한다.. 무조건 서로를 위해 주고 감싸줘야 한다.. 그것만이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프롬의 남과 여 - 남녀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리들이 앞으로 몇 년동안이나 보고 살 수 있을까?.. 우리에게 남은 인생의 시간이 얼마일까?..'를 생각해 보라.. 싸울 맛이 떨어질 테니까..

 

벡의 장거리 사랑 -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맘이 변치 않는다면 서로에게 감정이 전달될 수 있다는 위대한 사랑의 증거들이 얼마든지 있다.. 정신의 힘이 육체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숭고함에 찬사를 보낸다..

 

아도르노의 사랑의 죽음 - 주위 환경이 사람을 만들어 주는 건 너무 당연한 현상이다.. 따뜻함이 배어나오는 곳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결국 또 한 무리의 인정 깊은 사람들이 되듯이, 우리 모두는 타인들에게 무조건 베푸는 덕을 소유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의 우정 - 철학과 예술을 사랑했던 로마시대 황제 율리아누스가 그의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던 위인이 플라톤으로 알고 있다.. 그가 황제로서 권위의식을 버리고 서민적 행보를 보인 것도 플라톤의 우정에 대한 철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의 우정,,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진정한 친구를 단 한 명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의 소유자라는 흔한 말을 곱씹으며 우정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리스먼의 거리의 파토스 - 타인의 것을 뺏지 않으면 내가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사람들을 늘 불안에 떨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고 모든 걸 놔버리면 내가 추락할 테고.. 과연 혜안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다 외롭지 않게 어우러져 잘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러셀의 질투 - 그래도 질투는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집착에 비하면 말이다.. 질투를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열등의식이다.. 내가 저놈보다 잘났는데 질투할 이유가 없잖은가?  자기자신을 부단히 계발하고 성취할 수 있는 노력만이 질투라는 아름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애덤 스미스의 공감 - 불쌍한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자기위로나 하는 그런 공감은 패배의식의 한 모습에 불과하다.. 보다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며, 그것으로 이루어진 현명한 사람들의 공통의식이야말로 진정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칸트의 진실 - 세상엔 분명코 존재하지만 쉽게 찾아볼 수 없도록 기성세대들이 꽁꽁 숨겨 놓은 진실이란 소중한 말.. 이제라도 가식의 껍질을 벗겨내고 참모습으로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용기를 보이는 자만이 진실에 근접할 수 있는 첩경을 찾아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짐멜의 이방인 - 예전에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지던 '김병연'이라는 실존 인물이 문득 생각난다.. 그 분은 언제나 주변인, 즉 이방인으로 세상을 떠돌면서 유유자적하셨지만 늘 깊은 통찰력으로 잘못된 세상을 꼬집어 주셨었다..

 

루소의 숙명 - 자신의 자식 5명을 보육원에 맡긴 주제에 <에밀>이라는 교육서를 집필한 아이러니의 주인공 루소,, 그가 쓴 <나의 참회록>에서 루소는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숙명적인 이유를 내걸면서 양심선언을 한 적이 있다.. 인간에겐 그런 피할 수 없는 숙명이란 게 있는 모양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프롬의 실존 - 이 책을 통해서 형이상학에 대하여 조금은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무조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됐고, 따라서 물질적 소유만이 진정한 소유가 아님을, 정신적인 풍요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이 됐다..

 

프로이트의 딜레마 -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문득 생각난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지만 우린 언제나 한 길을 선택해야 하고, 먼훗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모습들 중에 하나라는... 어떤 길이 내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몽테뉴의 단순함 - 상대방의 그 자체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여유와 현명함...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남이 나 같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폄하하지 마라.. 그들도 나름대로 다 쓰일 곳이 있나니...' 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모두는 제각기 자신의 삶에 맞는 그릇을 가지고 자신의 양껏 소질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심플한 삶이 아닐까?

 

키케로의 늙음 - 죽음의 공포와 함께 인간에게 있어 제2의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늙음... 내가 아직 늙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전까지는 늙은 것이 아니라는 어떤 이의 말이 생각난다.. 늙음이란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나에게 더 빨리 찾아온다.. 내가 아직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고수하는 한 나는 결코 늙지 않을 것이고 그게 바로 멋지게 늙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이데거의 죽음 - 내가 감히 어떻게 그 숭고한 죽음에 대해서 세 치 혀를 놀릴 수 있단 말인가?............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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