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7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이호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일을 하다가 잠시 뒤를 돌아본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뒤쪽에는 작지 않은 책장이 하나 있고 그 안에는 삼백여 권의 책들이 아주 잘 정돈돼서 꽂혀있다..(나는 결벽증세가 있어서 책이 반듯하고 가지런히 진열돼 있지 않으면 견디질 못 한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 일 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내가 어느날 갑자기(2009년 쯤으로 기억된다..)독서라는 행위에 feel이 꽂혀 책을 애인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름 책에 빠져 읽어 온 권(券)수가 삼백여 권이 된다..

 

솔직히 독서에 문외한이었던 2009년 당시에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욕구는 넘쳤지만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해선 결정을 못해 고민이 많았었다.. 그러다가 문득 책에 대한 아무런 가치관과 기준이 없을 때는 동서고금을 통해 이미 대중들로부터 검증을 받은 명작들을 읽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각 출판사의 세계문학 판 중에서 어린시절부터 익히 눈동냥으로 제목 만큼은 알고 지냈던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스탕달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년간의 세월을 통해 내 책장엔 앞서 말했듯이 어느새 삼백여 권의 명작들로 가득 찼고 오늘 써 보려는 독후감의 주인공,,<만(卍 ).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를 읽게 되기까지 이르렀다.. 앞으로도 틈틈이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의 독후감을 생각나는대로 쓸 계획이지만, 특히나 오늘 먼저 이 작품에 대한 감회를 다른 유명 작품에 앞서 밝히려는 이유는 그만큼 내 맘속에 충격적인 인상이 남았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나를 기절시키게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만(卍)과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라는 두 편의 중편소설을 책 한 권에 담은 일본의 유명한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집이다.. 우선,, 만(卍)이라는 작품은 당시로서는 꽤 충격적인 소재랄 수 있는 동성애를 다룬 작품으로서 작품이 발표된 시기엔 독자들에게 화제꺼리가 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내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한 주제의 작품이 아니었으므로  작품을 읽은 후의 감상을 적을 게 별로 없다.. 그럼,, 오늘 내가 쓰기로 한 독후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전체 내용은 지극히 교훈적이고 심지어 학문적이기까지 한 작품으로서 내가 그 전체 내용에 대한 인상을 이 곳에 써 보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작품 중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작중 인물들이 내게 작지 않은 충격을 줬기 때문에 그 에피소드만을 갖고서 이 독후감을 마칠까 한다..

 

작품 속에는 나이가 75세 쯤 된 구니쓰네 라는 노인과 젊은 바람둥이 사내 헤이주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구니쓰네라는 노인은 술김에 말실수로 자신보다 50살이나 연하인 아름답고 어린 아내를 타인에게 상납(?)한 뒤에 술이 깨자 후회의 후회를 거듭하다가 결국 체념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어떻게든 사랑하는 어린 아내를 잊으려고 노력을 해 보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없어지지 않음을 느끼고서 불교의 교리 중에서 부정관(不淨觀)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삶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따라서 자신이 잊지 못하는 어린 아내 역시도 그런 부질 없는 하나의 육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교의 교리를 깨달으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는 내용이다.. 참고로 부정관이란 우리들이 현실에서 보고 느끼는 아름다운 것들, 맛있는 음식, 심지어는 예쁜 여자들 마저도 사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거나 멋지지 않고 추한 본질을 갖고 있다는 불교의 교리이다.. 구니쓰네 노인도 잊지 못하는 아내를 잊기 위해서 사람의 시신을 제대로 봉분도 갖추지 않고 마구 갖다버린 시체더미들 곁에 좌정하고 앉아서 어느 젊은 여자의 시체를 구더기가 파먹는 걸 지켜보며 자신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럴듯하게 숭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젊은 바람둥이 사내 헤이주의 에피소드는 그 숙연해 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헤이주는 워낙 끼가 넘쳐 흘러서 웬만한 여자는 한두 마디로 후릴 수 있는 재주가 있었지만, 어느날 알게 된 한 절세미인의 여성은 너무도 도도한 지라 웬만해선 헤이주에게 넘어가질 않았다.. 그러자 헤이주는 그만 상사병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고 결국 그 도도한 여성을 자기 것으로 삼기에 역부족을 느끼게 되자 스스로 이 여성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하지만 그 역시 잘 되질 않자, 그 도도한 여성의 하녀를 매수하여 그녀가 용변을 요강에 보면 그걸 그냥 버리지 말고 자신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른다.. 그 이유는 우선 그 도도한 여성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해 그녀가 싼 똥을 보면 그녀를 잊는 데 도움이 될 듯했고, 아울러 그 도도한 절세미인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똥오줌을 누는 평범한 사람이란 걸 느낌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헤이주가 하녀를 통해 건네받은 그 요강 속의 똥과 오줌은 눈으로 직접 봤어도, 냄새를 맡아 봤어도 당췌 그녀를 잊을 만한 악취가 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 똥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음에도 결코 그녀를 잊기엔 너무나도 부족할 정도로 불쾌한 맛이 아니더란다.. 오마이갓 !!!!.......결국 헤이주는 그 도도한 여성을 잊지 못한 것이다..

 

이상이 오늘 내가 써 보려고 했던 독후감의 재료다.. 그런데 어찌보면 조금 특이한 내용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이 작품에 내가 왜 충격을 받고 이런 글을 쓰게 됐을까?.. 그 이유는 바로 이 헤이주란 놈의 에피소드를 읽고난 뒤부터 길을 걸어 가거나, 또는 TV 잡지 인터넷 등을 접하다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섹시하고 예쁜 여자들을 볼 때면 처음엔 '와우~ 예쁘게 생겼네,, 섹시하구나~' 등등의 느낌이 들면서도 동시에 '저 여자도 뱃속엔 똥이 가득 들어있겠지.. 설령 좀 전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봤다고 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저 예쁜 여자의 뱃속에도 똥이 가득차게 될 거야..'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일본의 위대한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똥이 아무리 더러운 물건이라 해도 작품 속의 헤이주 처럼 한 남자의 사랑을 포기시키지 못하는, 사랑의 위대함이라는 실체로 똥을 승화시킨 반면에, 허접스러운 독자인 나는 헤이주, 더 나아가 다니자키 선생으로 인해 가끔씩 예쁘고 섹시한 여자를 감상(?)하며 즐거움을 느꼈던 일 마저도 이젠 그 기쁨(?)을 똥으로 인한 연상 덕분에  엄청난 반감으로 제대로 누릴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빌어먹을........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배설을 한다는 것쯤을 내가 모르고 살진 않았지만, 이 책을, 헤이주의 에피소드를 접하고 난 뒤부터는 그 전까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 됐던 똥이, 특히 예쁜 여자들을 보면 더욱더 그 뱃속의 똥이 연상되어지는 심각한(?)증세가 생겨난 것이다.. 오마이갓 !!!!......... 

 

나는 이미 여자에 대한 환상을 접은 지가 꽤 됐다.. 따라서 지금의 이 똥에 대한 나의 증세는 내게 있어 앞으로 인생을 사는 데 별로 큰 지장을 줄 현상이 아니므로 내 스스로 결코 심각함을 느끼진 않는다.. 다만,, 책이라는 존재가 때때로 이렇듯 나 같이 예민한 사람들에게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책의 그 속성 때문이라도 때때로 가려서 읽을 필요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성격이 예민하고 성년이 안 된 친구들은 읽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다.. 혹시라도 불 같은 사랑을 경험해야 할 시기에 뱃속의 똥 생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조금이라도 그 열정이 반감되거나 방해를 받으면 안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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