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서장에서 말하듯 필사는 텍스트를 단순히 옮겨 적는 행위를 넘어, 타인의 지혜를 나의 속도로 가장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내가 필사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내가 원하는 속도대로 스스로 사유의 틀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을 꼭꼭 씹어먹어서 소화를 시키다 보면 언어의 지평이 넓어지고 내가 발딛고 선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이 책은 기존의 필사책과는 느낌이 다르다. 유려한 단어들로 흘러가는 문학 작품과는 달리 조금 더 현실적인 질감을 선사한다. 사회과학의 언어는 현실을 꿰뚫는 논리와 정교한 단어들로 이루어져 무척이나 단단하고 묵직하다. 감성을 자극하기보다 이성을 일깨우며 부드러운 수채화보다는 정밀하게 설계된 건축 도면과 같이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구조를 명확하게 시각화해 주는 느낌이다.⠀책은 100개의 문장을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시대의 문제를 포착하는 혜안,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 연대의 우정, 작은 행동의 위대함, 권력과 통치, 우리가 살고싶은 나라라는 소제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평소 관심을 두었던 고전들의 이름이 보여 반가웠고, 이를 계기로 원전들을 정독하고 싶다는 자극을 받기도 했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시대적 고민이 현재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경험도 특별했다.⠀각각의 페이지에 곁들여진 저자의 문장들은 혼자만의 사유에 깊이를 더해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넉넉한 필사 공간 덕분에 문장을 곱씹으며 떠오른 생각들을 여유 있게 기록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현실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이 단단한 문장들은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닻이 되어줄 것이다.⠀#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