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켄 코프먼 지음, 조주희 옮김 / 일레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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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타고, 땅을 박차며 새를 본 적이 있는가? 미련도 불평도 없이 수천 킬로미터를 수십일에 걸쳐 날아가는 새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런가하면 날개는 그저 장식이거나 숫제 달리지도 않은 녀석을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은 이 기묘한 생물을 뭉뚱그려 새라고 부른다. 철마다 노래하고 창공을 가로지르며 깃과 부리를 지닌 그들을. 얼음땅에서 적도의 사막까지, 밀림에서 바다까지, 전 지구의 목록을 모두 찾아낼 수 있다면.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어진 이가 있었다. 그 자신도 방대한 경험과 하늘을 찌르는 명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학계는 경탄했다. 그의 이름은 곧 권위와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얼마나 진실이었을까.

p.40 '내게 새로운 것'과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것' 사이에는 큰 도약이 있다. 전자는 배우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후자는 자존심과 경쟁, 심지어 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발견의 동기는 순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동기가 없다면 이 책의 이야깃거리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새가 '과학계에 알려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 우리는 '누구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p.317 세상 곳곳으로 탐사를 나서본 자연주의자들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의 시선에서 이동이란 얼마나 더디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그 아름다운 비행도 물론이거니와, 이들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도 땅으로 내려앉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수년간의 연구로 밝혀진 새들의 이동에 대한 지식은 이런 마법 같은 느낌을 지우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경탄하게 만든다.


이 순간에도 산과 물은 죽어가고 있다. 불과 수십년 사이 수많은 종에 인간의 손에 의해 '절멸' 딱지가 붙었다. '생태 복원'은 헛된 희망으로 불릴 뿐이다. 이것은 정해진 미래인가. 되돌릴 수 없는 좌절의 길인가. 저자의 말을 조금 바꾸어 돌려주고자 한다. 우리는 이미 그 잔을 깨지기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니 손을 모아 그 경이를 감싸안고 지켜내야 한다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내야만 한다고.

우리 자신의 관찰 대상으로서 '그곳에 놓여있는' 동시에 우리 자신 또한 그것의 일부인 자연을 탐구하는 일의 본질적 어려움은 우리가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과 그를 부정할 수 없음에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데에 기인한다. 더이상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지식과 추정과 '발견'이 쏟아져나오는 지금 오듀본의 일화는 우리에게 오래된 물음을 던진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p.199 눈에 띄는 점은 바로 부유한 (잠재적) 후원자나 영향력 있는 자연주의자, 또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아첨하기 위해, 기존의 솔새를 새롭게 그려내고 이름 붙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처음에는 이런 해석이 너무 냉소적이고 부당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오듀본의 생애를 깊이 탐구하고 난 지금은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p.364 뉴저지 습지를 떠돌던 수천 마리의 클래퍼뜸부기는 사라졌고, 펜실베이니 아의 모든 나무 위에 떼 지어 앉아 있던 붉은머리딱따구리도 더는 볼 수 없다. 아무리 바람이 좋다 한들 뉴올리언스를 지나가는 수만 마리의 검은 가슴물떼새 비행 행렬도 다시 오지 않는다. 잔은 벌써 절반이나 비어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잔에 남은 것은 여전히 경이롭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다양한 조류라는 보물이 남아 있다.


인간 오듀본은 물론 결함투성이었다. 사기꾼이자 인종주의자였다. 그의 순진한 자의식은 사죄와 성찰이라는 양심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와 문명세계의 잘려나간 시야에 자연은 발견되고 발명되었다. 완벽한 과거의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져있다. 여기서 다시 물어야 한다. 끝이겠습니까? 무엇을, 누구의 이름으로 끝이라 부르겠습니까.

이를 마음 깊이 받아들일 때, 과거의 유산과 완전히 다른 세계의 지혜를 나의 세계에 포섭하는 폭력을 멈추어야 함을 깨달을 때, 사람이 아니라 업적을, 동시에 위대한 업적이 짓밟고 선 자리를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저자가 말하는 발견의 기쁨, 새가 온몸으로 가로지르고 누비는 세계의 아름다움, '그를 그 자리에 있는 그대로 두는' 길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자. 고요한 외침. 아, 새다.

p.420 오듀본은 노예제 찬성론자, 백인 우월주의자, 과학 사기꾼 등 여러모로 끔찍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더 다양한 종류의 새를 그려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와중에도,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면이 존재했다. (…) 오듀본은 나에게 영웅도, 롤모델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는 그의 작품까지 버리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p.456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과학적으로 새로운 생물을 발견한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각자의 기억에 남는 마법 같은 순간은 자기에게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바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러한 발견의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기적은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평도서제공: 일레븐
#모든새를보았다고믿은남자 #자연사 #탐조 #신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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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다리의 기적 - 인종, 인체, 그리고 법 정신에 관한 노트
퍼트리샤 J. 윌리엄스 지음, 박광호 옮김 / 징검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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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아 기다린 책. 응원과 사랑을 껴안고 드디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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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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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살인자. 그가 지나간 자리엔 피와 죽음의 현장 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단서도, 동기도, 하다못해 꼬리를 감추려는 최소한의 노력까지도! 뒤늦은 경찰과 평범한 이들의 몫은 고작 분통을 터트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다.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도 모르게 찾아와 탕, 탕. 그리고는, 끝. 동정도 대의도 필요치 않다.

그는 뭐랄까, 그래, 사람이라기보단 뱀이다. 어둠 속에 도사린 뱀, 소리 없이 다가와 아가리를 쩍 벌려 집어삼키는 포식자. 잠시 눈을 돌려보자. 한 여자가 지나간다. 늙고, 뚱뚱하고, 썩 온순하다고 볼 수는 없는, 대단한 재산도 없이 그저 개 하나 끌어안고 그저그런 나날을 반복하는. 조심하라. 눈 깜빡할 사이에 사타구니에 그야말로 주먹만한 구멍을 내줄테니. 깔끔하게 한 발 더. 그것만이 유일한 자비일 뿐.

p.37 마틸드가 작업을 하면, 한 발도 총알이 빗나가는 법이 없고, 아무 문제 없이 깨끗하게 일이 처리된다. 그러나 이날 저녁은 예외였다.

p.151 이 살인자 뱀은 필요성이 있을 때에만 움직일 것이다. 놈은 교활하고도 강력한 파충류이다. (...) 이 대문자 뱀은 희한한 습성을 가지고 있으니, 사타구니에 들끓는 조그만 뱀들에 특별한 혐오를 느끼며, 거기에다 독을 내뿜기 때문이다. 놈은 작은 뱀들을 싫어하는 커다란 뱀이다. 당신의 이마 한가운데 총알을 박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당신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당신의 무게 중심에다 총알 두 발을 쏘는 진짜배기인 것이다.


63세, 과부, 예술 및 문학 기사 훈장 서훈,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훈장 서훈…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평범, 아니, 모범에 가까운 그의 안락한 일상에 가장 큰 걸림돌은 비밀스러운 이면도, 고독도 아니다. 의뢰는 처리하면 그만, 대단한 의미조차 필요치 않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깜빡이는 기억력이다. 바늘틈 하나 없는 냉철함에 균열을 내는… 아이구, 참. 나이도!

그 자신조차도 의심없이 뒤바꾸고 흘려버리는 기억 탓에 이야기는 좀처럼 종잡을 수 없이 내달린다. 확신은 누구의 것인가. 평생의 동지도, 죄 없는 목격자도 필요하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제거'해버리는 그들? 기름진 부스러기를 털어대며 거드럭대는 경찰? 모순적이게도 그들 자신은 의문하지 않는다. 당혹에 빠지는 건 독자 뿐이다. 어느순간 정의와 명분 따위는 내던지고 사악한 공모의 웃음을 짓는 스스로를 발견하리라.

p.114 내 상황이 되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거야. 아냐, 기억력이 없어진 것은 아니야… 저녁이 되고, 밤이 된다. 그녀는 잠이 들었다가, 파리의 기념물들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잠에서 깨어난다. 전화 부스들의 리스트를 옆에다 적어 놓았지만,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p.338 떠나기 전에 그를 찾아가서 분명히 따지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아무것도 요구한 일이 없는 뤼도 같은 불쌍한 개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그녀의 정의감과 너무나 어긋난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일이면 생각나리라.


마틸드의 후련한 은퇴를 목전에 둔 우리 '목격자들'은 기대와 함께 부풀어오르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할것이다. 과연 누가 그를 '단죄'할까? 허물어지는 기억, 느슨해지는 연결고리에도 흔들림 없는 솜씨를 지닌 이 총잡이의 끝은 과연 어떻게 될까? 여기서 작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나 한치 없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로 다시금 허를 찌른다.

이 이야기는 무언가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 잔인한 쾌감과 지독히도 기능적인 폭력만이 있을 뿐. 몹시도 사악하다. 대문자 뱀처럼, 매혹적인 냉소. 의심하라, 모든 것을. 경계하라, 흔들리는 눈을. 두려워하라. 어둠속에 형형히 도사린 대문자 뱀. 도망칠 수 없다, 소리 없이 다가와 삼켜버릴 심연에서. 그리고, 탕.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p.230 선생은 멍하니 반장을 바라보지만, 자신은 다른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느낀다. 강렬한 감정, 분노, 혹은 다른 것을 표현해야 하지, 이렇게 초점 없는 눈으로 상대방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땅콩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는 이 뚱뚱한 반장은 똑같은 질문을 끈질기게 반복한다. 마치 고장 난 레코드판 같다. 만일 내가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곧 사회 복지사들이 들이닥칠 거야…

p.329 그날 여기에 왔던 사람이 바로 이 여자다. 이 여자가 테비와 르네를 죽였다. 경찰에 전화해서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로부터 한 15분이나 지났을까, 선생은 그 종이를 발견 하지만, 그게 무엇에 관한 것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진다.


*서평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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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은 왜 공짜일까? - 마음을 사로잡고 경제를 움직이는 마케팅의 비밀 ㅣ 생각하는 10대
이완배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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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을 알고 싶다면 그의 책장을 살펴보라고. 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사는 곳이 곧 그 사람의 품격을 보여준다고. 후자는 광고였다. 그렇지만 전자는 아니라고 할 이유가 있는가? 무언가가 나를 보여준다. 광고는 더 이상 상품을 팔지 않는다. 마케팅의 홍수 시대를 지나 모든 것이 (상업적) 광고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시대에, 광고가 파는 것은 바로 감정이고 이미지다.

되고 싶은 미래, 내 것이 아닌 현재를 판다고 해도 좋으리라. 이런 시대에 일상을 가득 메운 광고들의 속내와 기전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무의식 중에 스쳐보내는 현혹과 희망, 좌절과 결핍을 이해하는 일과도 같을 것이다.

p.9 사람의 행동을 바꾸고 시장에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업의 전략을 파악하는 일은 곧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일과 같다. 인간 심리의 작동 방식을 탐구하다 보면 일상 속 광고와 소비자의 선택이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p.74 네거티브 마케팅은 이목을 끌기 쉽다. 그 러나 모든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별, 마케팅의 역사를 살펴보면 남의 단점을 저격하는 전략은 오히려 성공하기보다 실패한 경우가 더 많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마케팅에 정답은 없다. 네거티브든 포지티브든, 마케팅의 성패는 형식이 아니라 소비자의 감성을 얼마나 제대로 찌르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 다루는 마케팅 전략들을 차근히 뜯어 보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아주 작은 부분, 그러나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을 건드린다. 다름 아닌 우리 안의 본능, 사회적 존재, 그 이전에 생물로서 가지는 깊고 연약한 부분이다. 혼자이고 싶지 않다. 이전의 결정으로 형성된 사고 방식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속고 싶지 않다.

이를 이해한다면 마케팅 전략을 더 이상 단순한 판매 방식이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계산이자 심리 싸움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우리는 흔히 기업이미지에 일종의 선악을 덧씌우고 소비자로서의 선택을 더없이 합리적인 판단으로 믿고 싶어한다. 이를 짧게 말하면 '가치'라 할 수 있겠다. 소비자는 기업과 '가치'를 주고받고, 나아가 공유하고 싶어한다. 바로 여기에서 물어야 하지 않을까.

p.117 미끼 효과와 앵커링 효과는 소비자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 당신은 현명한 소비자가 아니라, 미끼에 보기 좋게 낚인 호갱님이다.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대니얼 카너먼이 이야기한 '깊이 숙고하기' 시스템을 잘 가동해야 한다. 마케팅은 '대충 생각하기' 시스템의 빈틈을 늘 노리기 때문이다.

p.155 냉정하게 말하면 명품 소비는 합리적인 소비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지위재가 주는 행복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이 세상에는 꽤 많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명품 브랜드는 상품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리는가 하면, 멀쩡한 상태의 재고를 남김없이 불태우기까지 한다. (…) 한쪽에선 명품 하나 사겠다고 새벽부터 줄을 서서 오픈런을 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남은 제품을 불태운다. 이게 정말 효율적인가?


제목처럼, 인스타그램은 왜 공짜인가? 무슨 이득이 있어 그 많은 비용을 투자해가며 유저를 불러모으고, 끊임없는 '컨텐츠' 생성과 서로 간의 노출에 안달하는가? 왜 차고 넘치는 자본 권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에 납죽 엎드리는가?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광고산업의 일부이다. 선택하지도 의문하지도 않는 순진한 소비자는 산업의 충실한 공짜 부품이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 별 수 없기에 혹은 당연히 사야 하기에 소비하고 이용하는 얌전한 돈줄이 아닌 시장의 한 축, 경제법칙이 말하는 합리적이고 능동적인 소비 주체가 되기 위해 이 책을 읽고 권하는 우리가 살아온 세계들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p.245 전통적 시장과 달리 양면 시장에서 고객은 두 부류(양면)로 나뉜다. 하나는 돈을 내는 진짜 고객이고, 다른 하나는 그 돈을 내는 고객을 붙잡아 둘 전략적 무기 역할을 하는 고객이다. 구글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가 대부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양면 시장에서 일반 이용자는 돈을 내는 진짜 고객이 아니라, 돈 내는 고객을 붙잡아 둘 전략적 무기다.

p.246 티롤은 이 연구를 통해 '단면 시장과 달리 양면 시장에는 약탈 가격 금지 조항이나 독과점 방지 정책을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전략적 무기가 되는 고객에게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경쟁 기업을 죽이기 위한 술책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양면 시장 특유의 사업 모델이기 때문이다.


*도서제공: 북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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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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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SNS에서 본 적이 있다. 월경과 관련된 불편에 공감하는 내용의 영상 게시자가 남성이었더란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일도 아니나 댓글에서 난리가 났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모욕과 욕설이 불붙듯이 달리는 와중에 '여자가 불편하다는 얘길 하는 너도 페미 아니냐'는 억지떼가 숱하게 보였다.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거나 혐오발언을 멈추라는 댓글은 순식간에 파묻혀버렸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주체 되는 문제는 으레 이런 식으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어렵다.

숙의와 치열한 논쟁이 필요한 존엄투쟁이 감정싸움에 휘말려 소진되기 일쑤다. 한국 사회 내 젊은 남성 집단의 이런 '깽판치기'는 사실상 하루이틀 사이의 일이 아니다. 차별과 공정의 호소는 강탈된지 오래다. 제목처럼 한국 사회의 남성들은 차별을 훔쳐가는가. 그렇다. 쥐면 꺼질세라 불면 터질세라 유사 이래 노상 사경을 헤매는 남성의 '기가 죽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감정' 문제만으로 치부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p.38 남성 청소년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여성을 배제하거나 도구화한 '주류적인 남성문화'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남성 청소년들이 온라인에서 나타내는 공격성과 혐오의 표출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기존에 존재했던 우리 사회의 일면을 반영하거나 모사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p.46 판관은 결국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에 심판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성향을 지닌 이들이 우리 사회에 많아진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한계 역시 명백하다. 대체로 '사후적 징벌'에만 관심 있을 뿐, 범죄 등의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번성'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존엄을 훔쳐다 쥐어주는 사회권력이 존재한다. '알아서' 생존하도록 내몰리는 성원들과 동등한 주체가 아닌, 더 우대받고 더 보호받을 존재로 추켜올림으로써 영원히 어떤 영역에서의 무지를 보장받도록, 문제의 근원을 직면할 이유를 감각하지 않도록 천진한 무능에 고착시킨다. 더 크게, 더 많이 말하라. 전부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바로 그 이유로 '능력으로 쟁취한 공정하고 마땅한 권력'으로의 진입은 필연히 실패로 귀결되는 환상이다. 진짜 자격, 진짜 성원, 마땅히 존귀한 '우리'의 범위를 점점 더 좁게 설정하며 생득적 존엄을 마치 능력으로 쟁취하고 침탈할 수 있는 자원으로 착각하기에 자기가 놓인 자리와 사회 전체의 역동 모두를 무시하고 기득권이 곧 정의라 믿으며 '중립기어'를 박는다.

p.79 여성들로부터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기분', 기 성세대들이 청년들의 몫까지 독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분노와 박탈감을 키운다. 또래 청년 여성이든, 중년 남성이든 모두 자신의 앞길을 막는 적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p.122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남성들이 자신의 기존 권력을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면서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일종의 '착시 현상'을 경험하는 (…) 상황을 정치적 땔감으로 삼아 혐오를 조장한다. 문제의 원인은 청년 남성들의 인식에 있다. 그런데 자꾸 '과도한 페미니즘'이나 우리 사회가 남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선망하는 권력에 가까이 끌어올려주기를 바라며, '열등한 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넉넉한 우월의 여유가 보장되리라 믿으며. 그러나 익히 알고 있듯이 기울어진 땅의 중립은 필연히 권력에 힘입어 낮은 쪽으로 구른다. 이것은 진정 '자연스러운'가? 존엄과 평등이 사라진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에 과연 '공정'과 '성공'이 자리할 틈이 있기나 할까.

이 책이 제목에서부터 남성권력의 문제와 기만을 지적하고 있으나 이는 물리적 생김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라서 악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규범이, 그를 공고히 하는 기득권자들이, 눈앞의 이득과 기대가 '남자니까'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를 부수고 더 넓은 평등,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남성 존재들이 '남자니까'의 역학을 뒤집고 그 틀을 벗어나려 애쓰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p.100 흔히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공권력의 작동 범위나, 치안의 수준만이 '안전함'의 척도일까. '안전한 공간'이라는 외피를 둘러썼지만 실은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조롱과 탄압이 일상화되고, 능력주의 논리가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 곳이 지금의 한국이다.

p.167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거나, 이것부터 하고 저것은 나중에 하자는 말은 더 이상 시민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민주 정부에서도 그렇게 누군가의 삶이, 인권이 뒷전이 된 케이스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의 존재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그들의 뜻을 한국 사회에 반영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는 이전부터 소수자·약자들이 외쳤던 구호에 정답이 있다.


저자의 전작을 빌어 말하고 싶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우리의 궁극적 방향은 남자니까 이 정도면, 남성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에… 가 아닌 어떤 성원도 불평등한 각자도생의 '우리들의 사회'에서 행복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 애써야 한다. 누구도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누구도 홀로 버려두지 않아야 한다.

내가 너를, 우리가 그들을, 서로가 서로의 진정성과 무결을, '진짜 사람'을 검증하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 잘 사는 우리를 위해 타인을 소모해도 좋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가 약육강식의 '야생'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더이상 무마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모두가 말해야 한다. 남성이여, 정의로운 성원이 되어라. 남자다운 남자가 아닌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라.

p.267 '불편하다'라는 말은 여전히 매우 주관적이고 감정인 표현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사실 '불편하다'는 매우 맥락적이고 관계에 기반해 있는 말이기도 하다. (…) '불편하다'는 말은 언제나 쉽게 기각된다. 누군가의 '불편하다'는 목소리는 비웃음거리가 되고, 온갖 농담과 장난과 성희롱에 왁자지껄 웃는 것이 '도리'처럼 여겨진다면, 그런 세상에선 누가 더 살기 좋은지는 명백하다.

p.276 소수자들 입장에서 기존의 주류-기득권, 차별을 숨쉬듯 하는 이들이 편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이들은 광장에서 누군가를 쫓아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 문제는 다수자들은 소수자들을 쫓아내라고 너무나 쉽게 말한다는 점이다. 나는 그것이 '권력 차이'라고 생각한다. 연대를 유지할지 안 할지의 권한은 자신들이 갖고 있다는 생각, '우리 집단'이 '너희 집단'을 쫓아낼 힘이 있다고 믿지 않으면 그런 말은 할 수가 없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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