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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 어느 사랑의 회고
벨 버든 지음, 손백희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10월
평점 :
#은행잎4기 #은행잎서재 #벨버든 #낯선사람
*서평도서제공: 은행나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덮고 나서도 한참을 분노와 경멸에 떨었다는 것?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참담했다는 것? 읽다 말고 정말이지 피가 거꾸로 솟다 못해 심박수 경고가 수차례 울렸다는 것? 어떻게 사람이 사람 가죽을 쓰고 이렇게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짓만 골라가며 할 수가 있나?
상대와의 신뢰를 배반하고도 조금의 죄책감과 책임의식조차 갖지 않으려는 종자들은 동서고금 젠더노소를 막론하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걸까? 자기 말대로 해야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라고, 네 책임도 있다고, 누구나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고… 물론 그 모든 것이 제 편의에 부합할 때만.
p.34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우리 결혼 생활에서, 내게서 뭐가 부족했는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 건 아니라고 했다. (…) 그는 완벽히 침착했고, 목소리도 낮고 차분했다. 그런 그의 태도 때문에 화내고 망가지고 혼란스러운 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신속하고 가볍게 받아들여야 할 상황 같았다.
p.142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남편에게 일임하는 게 좋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가 우리 집 돈 관리를 하는 것이 우리 가족을 위한 기여이자, 나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어딘가 낭만적인 면도 있었다. 똑똑하고 품위 있는 남자,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가 우리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모습 말이다. 나는 나대로 맡은 책임이 있었다. 육아, 학교 식사, 숙제, 아이들 재우기 등. 그러니 그가 우리 재정 관리를 하는 건 당연했다. 역할을 분담해서 우리는 각자 맡은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울화통이 치밀어 가슴을 두드리게 한 원인은 비단 이 상황의 원흉 뿐만이 아니다. 그에 더해 이 '파탄'의 이유가 일방적인 배신과 이기심이 아니라 '배신당한 여자', '질리게 만든 여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썩어빠진 생각을 여상한 농과 냉소로 내던지곤 툭 털어버리는 이들이 숱하게 맴돌았기 때문이다. 마치 어제까지의 친분이 '정상'에서 떨려나간 그를 조롱하고 끌어내릴 명분이고 동력이라도 되는 양.
이 책에 끝끝내 '사이다'는 없다. 통쾌한 복수와 '정의' 따위는 희미한 소망처럼, 채 빛나보지도 못한 채 거듭 뭉개지고 꺾여버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니, 그와는 완전히 별개로, 저자의 서사는 다시 자신의 것이 되었다. 주변에 떠밀려, 언젠가의 상처를 보상하기 위해, 그 순간에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타인에게 넘겨준, 스스로 써내려가고 '다른 주인공'의 뒤로 물러서버렸던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세계에 당당히 자리했다.
p.293 스스로를 지키지 않았던 순간, 갈등 대신 편안함을 택했던 순간, 알기보다 모르기를 선택했던 순간들을 직시했다. 그 순간순간의 결정이 모여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이다. (…) 하지만 나는 남편을 믿고 따르며 그의 의견에 모두 동의했던 한 여자로서, 과거의 나에게도 연민을 가져보려 했다. '다 사랑을 위해 한 일이었다. 그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p.326 온라인에서든 현실에서든, 사회가 허용하는 여성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곳에서 여자는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하고, 남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로 누가 얼마나 파괴되든 상관없이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 용인된다. 그런 부류들이 지키려는 것은 더 큰 무언가. 즉 특정한 삶의 방식과 그 방식이 주는 안온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름의 '책임'이 있었다 해도, '실패하지 않을 기회'가 있었다 해도 세상이 원하는 '완벽한 피해자'와 '정숙한 여성상' 따위를 정면으로 걷어차버리고 온갖 비난과 조롱에 맞닥뜨렸다 해도, 그리고, 여전히, 때때로 슬픔과 미련에 휩싸인다 하더라도, 자기의 삶을 움켜쥐고 놓지 않겠다고 한다.
혹자는 싹 잊고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라 말할지 모른다. 틀렸다. 당사자에겐 원망할 권리도, 배신감에 치를 떨고 반추하며 슬퍼할 권리도 있다. '털어내지' 못한다 해도, 펄펄 뛴대도, 때때로 주저앉는대도 그저 또다른 삶이다. 그가 살아가기로, 삶은 여전히 이어져나간다고 말하는 이상, 연대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그의 선택을 지지하고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다. 탓도, 책임추궁도, '달라진 삶'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물수리의 생태에 비추어 되돌아보든, 언제고 되돌아올 고통에 휩싸여 거꾸러지든, 저자와는 사뭇 다른 서사를 써나갈 또다른 누군가의 삶에서든, 그래, 인생은 이어진다. 누구에게든 언제나 바깥, '나'라는 존재는 남아있는 것이다. 그 연약하고 간신한 희망은 여기서 다시 싹튼다. 꿋꿋하게, 여전히.
p.309 우리는 모두 남자들이 만든 구멍을 대신 메우고, 그들의 나쁜 짓에도 침묵하며, 품위 있게 모른 척하도록 교육받았다. 내게 일어난 이야기를 출판하는 것은 그 구멍에, 제임스가 남긴 깊은 균열에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뒷수습하며 품위를 지키는 역할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 회고의 힘은 저자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내내 곁을 지키며 지지해온 이들을 조명하는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상처를 고백함으로써 같은 고통에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선례가 되어주었다. 그가 이 부당한 상황에 순응하지 않은 데에는 그 자신의 용기 뿐만 아니라 먼저 자립한 여성들, 언젠가 배반당하고 치를 떨었던 이들, 이 상황이 옳지도, 참아서 해결되지도 않음을 경험하고 증언해온 이들이 있었다. 이제 그 또한 하나의 가능성이 되었다.
몇번이고 제목을 되돌아봤다. Stranger, 낯선 사람. 종장에 이르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 남자'가 저자에게, 자기가 배신한 관계에 한순간에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라고만 생각했다. 덮고 난 지금, 이제는 안다.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었다고. 그가 놓쳐버린 가족들의 삶은 영영 낯설어지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처음부터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p.335 이제 제임스를 생각하면, 그때 내게 손을 흔들던 그 남자가 떠오른다. 그는 악인이 아니다.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는 내 아이들의 아버지이며, 여러 해 동안 사랑과 행복을 준 사람이다. 자기 삶과 미래에 대해 다른 결정을 내린 사람이다. 나는 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