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이야기 - 2026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박서련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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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은행나무

단편집, 개중에서도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은 것엔 언제나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소개나 작가 목록에 기대보다는 겁부터 집어먹기 때문이다. 분명 어느 작품인가엔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 모였으니 내 마음에 꼭 들어맞는 글이 하나쯤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은 몹시도 짧아 허망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만 팔랑이며 부여잡고 있을 꼴이 뻔하다… 뭐 그런 생각에.

지난 한 해에 발표된 단편소설들 중 빼어난 작품을 추리고 가려 심사한다는 김유정문학상도 벌써 20회차를 맞았다. 그간의 수상작들을 쭉 톺아보고 난 후에 읽는 올해의 후보작들은 각별하고 걸출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동시에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해왔는지, 그 안에서 문학은 무엇을 찾고, 드러내고, 돌파하고자 애써왔는지 몸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p.48 〈김채원, 태양에서 멀리〉 치워 없애야만 하는 악이 존재하고 그 악에 맞서 싸우는 선이 있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됐다. 누가 보아도 선한 (그런 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인물들이 고통받는 이야기,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반짝이는 우정이나 사랑 같은 것들. 에구, 눈부셔라. 에구, 싫어라. 솔지는 이 모든 것에 필요 이상의 적의를 가졌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솔지의 약점을 건드렸다.

p.97 〈박민경, 별개의 문제〉 그 불안 속에서 엉뚱하게도 음식물 처리기가 떠올랐다. 만약 정말 늦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것일 거다. 개를 집어삼키고 흔적 하나 없이 사라지게 할 거대하고 똑똑한 구덩이.


주제와 서사를 달리하는 여섯 작품은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문학이기 위해, 다른 무엇도 아니고 문학이기에 할 수 있는 일과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수없이 물어온 흔적이 지금, 여기의 취약하고 연약한 것의 형태를 입고 그려졌다는 느낌을 준다.

언젠가의 문학은 세상을 바꿀 창이었다. 동시에 어딘가의 문학은 사상의 지평이었고, 또 누군가의 문학은 읽는 이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어야 할 책무를 졌다. 그 모든 것을 두고 묻고자 한다. 현실이 상상을 불가하게 한다면, 현실이 발을 떼고 나아가기를, 드러내기를, 균열-하기를 거부한다면, 아니, 부인한다면. 이 이야기들은 무엇을 선언하는가. 금을 내고 추악하고 피흘리는 '것'을 까발리는가.

p.90 〈박민경, 별개의 문제〉 진심이 된다는 건 멈추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딱 그만큼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게 진심이니까. 그건 스스로를 매일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p.166 〈함윤이, 굴은 구르지 않는 돌〉 "어떤 때 애인은 나한테, 아니, 나를 통해서 뭔가에 항의하려는 것 같았어요. 가끔 그가 큰 소리로 말하길, '그쪽' 남자들이 '이쪽' 여자들을 때리고, 욕보이고, 아무렇지 않은 체 살아가고 있어. 그러면서 내 몸을 마구 주물렀어요. 내가 아파, 아파, 소리치고 내 살이 빨갛거나 파랗게 변할 때까지요. 그런 뒤에 애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감히 평하고자 한다. 이것은 경계의 이야기다. 침범하고 틈입하며 범람하는 변경, 언제나 우리-아님인 동시에 우리-안의 위험을 상기하. 가장 찬란한 진창, 무저갱의 끝이다. 앞이고, 과거이며, 순간마다 도래하는 미래이다. 가장 마지막의 가능성이고, 허리째 잘려나간 이름이다. 자격 없는 이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시도이다. 여전히 미약하고, 더없이 취약하다.

이 진부한 패배의 또다른 이름은 지금의 세계, 있는 그대로의 자리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세계에 상처입고 비틀리는 이들의 면면, 일 것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뻔뻔하고, 치졸하고, 가만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취약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 교차점들에서 상처를 읽었다. 차마 말이 되지 못한 것, 비로소 그 이름을 부르게 될 때, 문학의 길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두려워하며, 혹은, 조용히 떠는 채.

p.68 〈김채원, 태양에서 멀리〉 그러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농담 중에 한 개씩, 두 개를 골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가까이서, 그 다음에는 멀리서. 그것들은 솔지 말고는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이었다. 솔지 말고는 아무도 듣고 웃지 않는, 그러나 때때로 빛을 발하는 솔지만의 불행.

p.181 〈함윤이, 굴은 구르지 않는 돌〉 빛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가빠졌다. 눈을 들면 절반쯤 설치된 조명등 빛이 여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움켜쥔 피부처럼 붉거나 푸른 빛에 잠긴 얼굴들, 그녀들은 돌들 틈에서 만들어진 양 보였다. 또는 그저 돌 자체로, 굴속에서 오랜 시간 흘러내리고 솟아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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