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뼈와 플라스틱 - 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
남종영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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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북트리거

심심찮게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번쯤은 우스개 반, 자포자기 반으로 내뱉은 적도 있을 것이다. 인류 멸종이 진정한 친환경이다. 인구 과잉 시대다, 인간 개체를 줄여야 한다. 동시에 동시에 지금의 일상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해외여행, 때마다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재고로 처박혀 쓰레기장으로 직행하는 옷이며 '소품'들. 경계를 넘는 사람과 물건, '자본', 대란템, 쟁여템.

'기후위기' 논쟁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 되고도 남은 지금, 위기는 재앙이 되었고, 절멸로의 직통열차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도 몇 남지 않았다. 혹자는 말한다. 기술 개발을 열심히 해서 대응하면 되지 않을까? 또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 모두가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니 이 꼴이 났다고, 불편한 삶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고.

p.6 우리는 '범람'과 '은폐'의 시대를 산다. 그 어느 시대보다 치킨을 많이 먹지만, 정작 살아 있는 닭은 보이지 않고, 그 역사도 기억하지 않는다. 가장 값싸게 소비되어 변덕과 싫증으로 버림받은 플라스틱은 땅에 묻히고 잘게 쪼개져 바다에 은폐된다. 지구는 닭뼈와 플라스틱이 범람하는 행성이 되었다. 인류 활동은 지구의 물리, 화학, 생물학 시스템을 교란하여, 지금 지구는 1만 1만 1,700년 전부터 지속된 지질시대 '홀로세'의 평형에서 이탈해 새로운 지질시대를 맞고 있다. 인간이 창조한 지질시대, 인류세다.

p.43 지구를 착취하며 이득을 취한 이들은 인류세라는 용어를 통해 과거를 지우고 기술에 기댄 '새로운 시작'을 강조하려 한다. 반면, 선진국과 거대 자본의 욕심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인류세가 이들의 과거 책임을 망각하게 하는 '탈도덕적인 효과'가 있다면서, 지배 계층에 강력하게 경고하는 개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 "그렇다면, 이 파괴적인 시대는 정확히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고귀한 야만의 신화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의 환경파괴와 그로 인한 전지구적 붕괴는 현대인이 '자연 생태계'에서 쏙 빠져나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현대의 전세계적 경제와 착취 네트워크가 인간이 감당 가능한 선을 아득히 초월해버렸다는 데에 있다. 싸고 빠르게 찍어내고 재빨리 치우고 묻어버린다. 애써 찾아낸 해결책을 외면하고 시시각각 밀려들어오는 위협을 임시방편으로 틀어막는다. 자본이 눈앞의 멸망을 막아주리라, 자본자본, 주문을 외치며.

그러므로 뭘 해보기도 전에, 이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문제라고? 작금의 현실은 모두의 책임이라고? 누가 '우리'인가? 내 집 쓰레기를 돈 주고 떠맡긴 집에서 냄새가 난다고 떠맡은 쪽에도 공동책임을 요구할 것인가? 모두의 책임은 역설적으로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게 된다. 본문에서 거듭 등장하는 '인류세'에 대한 비판의 일면에는 이런 지적이 있을 것이다. 모두의 책임인 동시에 모두가 같은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

p.61 자연만이 아니다. 에너지, 노동, 식량, 돌봄, 돈, 생명 등 일곱 가지가 '저렴해지는' 매커니즘이 자본세에 있다. (...) 플랜테이션 사업을 확장시킨 신용과 부채 매커니즘 속에서 돈도 흔해졌다. 무한히 팽창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화폐도 싸구려다. 생명도 싸구려가 됐다. (...) 무어는 저렴함이라는 무기가 플랜테이션, 나아가 자본주의가 확장하는 전략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인간과 동식물은 물론,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동원하고 있다.

p.218 인간의 번영은 지구의 번영에 의존한다. 행성적 경계를 침범해 지구 시스템이 망가지면, 인간은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행복할 수 없다. 반대로 사회적 기초를 충족 못 하는 삶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 자원을 개발하고 재화를 생산하지만, 생태적 한계는 넘지 않아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기초를 충족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개발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직면해야 한다. 돌아갈 낙원은 애시당초 존재한 적 없었고 '전환점'은 지나친 지 오래라는 것을. '우리 인간'은 단 한 순간도 무구한 적 없었다는 것을. 그 앞에서 불편과 불행은 달콤한 환상처럼 달성 과제 따위가 아니다. 누가 누구에게 죄를 빌고 용서만 받으면 마법처럼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유일한 세계를 죄 파먹다 이 지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총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저자의 말처럼 "다섯 번째 멸종의 최대 수혜자"였던 인류는 "지금은 대멸종 사태 최대의 가해자가 되었다(133)". 유례없는 이 재앙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함께 살지 않으면 몽땅 끝장이라는 현실 앞에서 '정해진 답'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오직 그뿐이다. 창백한 푸른 점에 살아가는 찰나의 생물. 어렵고 낯설어질 수밖에. 우리가 정말 '우리'이기 위하여.

p.273 어떻게 하면 '인류'를 경험할 수 있을까? 사물의 의회를 통해 비인간과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때, '나'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종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류로서 나는 어떻게 지구에 대해 책임지고, 기여할 것인지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허공에 뜬 개념에서 벗어나, 비로소 발 디딘 현실의 땅 위로 착륙한다.

p.284 탄소 배출량 장부의 숫자를 '0'으로 맞추더라도, 누군가의 희생을 쥐어짜는 삶이 계속된다면, 그곳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단순한 탄소의 균형을 넘어, 이 행성에 동승한 가난한 사람들과 뭇 생명들과 맺는 '관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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