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 숍앤센터
설재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름지기 사람이 할 말이 있거든 분명하게 하며 주장할 바가 있다면 눈치에 휘둘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또한 미덕이고 자질이라고 오래 주장해왔다. 정론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런 이유로 시작부터 영 걱정스러웠다. 이 양반 작품을 한두 편 읽은 게 아닌데 과연 그간의 태도와 한계선을 뒤엎고 '바디 호러'의 본령인 피와 살점,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체액에 몰두할 수 있을지. 그렇게 탈규범과 이질성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을지.

결과적으로 기대 밖이라면 밖이나 퍽 실망스럽지 않은 형태의 밖이다. 그래. 버릴 수 없다면 휘두르는 것도 방법이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다면 답이 나올 때까지 부수고 뒤엎어 끄집어내는 것 또한 방법이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의 본질이란 바이오동력 오물통 내지는 비용 많이 드는 온열가죽주머니 정도 아닌가.

p.18 어차피 대중의 미감은 주입된 대로 형성된다고 염 박사는 결론 내렸다. 만약 웨일홀에 널브러진 인체 기관들로 새 종족을 만들고서는, 아주 귀엽고 고급스러운 모습이라며 오랫동안 세뇌한다면 다음 세대쯤에는 그것들이 보편적인 반려동물이 되지 않을까?

p.235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지, 누군가의 악의가 만들어낸 일이 아니니까. 허튼 짓, 모난 짓, 튀는 짓만 안 하면 편하게 평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대중은 그렇게 무엇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중인지 모르는 채로 편히 희희낙락했다.


권력은, 거칠게 말해, 규정하는 힘이다.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무엇일지를 규정하는 힘이다. 말을 정하는 힘이다. 옳고 그름의 선이 본래부터 그어져있지 않으니, 선을 긋고 지우는 것 또한 권력을 쥔 자의 권한이자 생리이다. '그'의 언어로 '나'를 변호하는 데에는 불가항의 한계가 있다. 착한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주는 밥을 신나게 처먹은 가축의 끝은 도살이다.

누군가를 정말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치다 못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매달리도록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비교다. 나와 같은, 나보다 더한 이가 차고 넘치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코앞에서 나자빠지는 '동류'들로 증명해주는 것. 결코 나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노력에 달렸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

p.10 센터의 프랑들은 세 평짜리 방에 두셋씩 살았다. 각각의 방은 흙바닥과 철창으로만 되어 있었고, 그래서 옆이나 저 너머의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 볼 수 있었다. 봉사자가 자신의 방을 지나쳐 다른 프랑의 방으로 향할 때마다 프랑들은 눈을 있는 힘껏 크게 뜨고 두 손을 턱 밑에 댄 채 눈을 깜빡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p.162 "존재는 취급에서 나와. 우리가 취급받는 대로 우리는 존재해. 너도 나도 다 쓰고 태워버릴 것으로 취급받지. 그러니까… 우린 마치 플라스틱 같은 거야. 쓸 땐 신나게 사용해놓고 나중에는 악한 것이라며 손가락질하겠지."


작중 풍경이 꼭 그렇다. 이 얼마나 여상하고 평화로운지. 흉한 것은 처박아 치우고 사랑스러운 순간만 냅다 쭉 빨아먹고 버리면 그만이니. 없는 것들이야 없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못 산다고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실로 인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이 세계는. 오래 전부터, 느리게 반복되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작가는 '있는 힘껏 크게 뜬 눈과 턱 밑에 괸 손'으로 호소하는 대신 묻는다. 아랫도리며 배때지 싹 까놓고 보면 대체 무엇이 인간이냐고. 그는 아름다운, 오래된 순리를 박살낼 작정이다. 독자를 향해 선전포고한다. 끝장나게 으깨 부수고 아주 곤죽을 만들어서라도 과연 어디가 얼마나 다르게 생겨먹었을지, 지금부터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머리가 왕왕 울리고 밑이 쑤시는(298)" 감각을 뇌리 깊숙이 때려박을 참이라고.

p.133 "네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어. 세상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어.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솎아내기만 해도 충분해. 혹시 인간을 공경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p.276 그래,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이왕 받은 거 실컷 써주리라 다짐했다. 이게 정의라고 애써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것은 생존이었다.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세상이 망한다고 울부짖는 자는 그 세상에서 안주하는 자 뿐이다. 얻어맞는 자는 안다. 나를 짓밟는 저것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 또한 나, 무수한 '나'들이라는 사실을. 큰 불은 불씨를 삼킨다. 화근이 세상을 불살라버리는 꼴을 보여주겠다. 읽는 이가 불길의 어느 편에 서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당신 말은 누구의 혀인가? 누가, 무엇이 '나'이겠는가?

마지막에 도달한 독자는 분명 살자고, 살아야겠다고 외치는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더럽혀진 얼굴로 시원하게 웃어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불안하고 불온한 존재의 등을 있는 힘껏 밀어주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어디서 어떻게인지가 문제겠지만…

p.164 "씨발, 밑이 뜨겁다고! 좋다고! 살자고!" 노엘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기분을 느끼는 걸까, 그게 우습고 신기해서였다. 비가 아무리 내려도 당겨진 불을 끌 수는 없을 듯했다.

p. 273 프랑이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인간들이 제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가련한 생명들이 어떻게 하면 탄생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이 생존할 수 있는가?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서평도서제공: 나무옆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