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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집 -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조경희 지음 / 사계절 / 2026년 7월
평점 :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거래되는 부동산-공간'으로서의 의미와 달리, 암묵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집'은 성취로 얻어지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의 승인과 압력으로 주어지는 것에 가깝다. 머물러도,살아가도, 존재해도 된다고, '때가 되면' '돌아가야 할' 곳, 마땅히 그 소속이라 불려야 한다고 선언되는 이름. 그것이 바로 '집'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 물어야 한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집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나의 집이 되고, 무엇이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거주하기'를 가능하게 하는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나, 그들,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 집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이 집은 어째서 이토록 낯설어-지는가. 어떻게 새로운 집을, 여기저기에, '열린 공간'으로 지을 수 있을 것인가.
p.9 〈들어가며〉 디아스포라에게 집은 종종 불안정과 갈등을 내포한 장소이며, 집 만들기는 그러한 조건 속에서 삶의 기반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실천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집과 사회를 연결하면서 시민권과 소속의 조건을 협상하고, 공동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친밀성과 공공성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p.289 〈재일여성의 교차성 실천과 반혐오의 정동〉 재일여성들은 각자의 삶의 맥락 속에서 인종주의와 가부장제가 구축한 경계권력과 비판적으로 교섭한다. 이러한 '집 만들기'는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살아갈 새로운 관계와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이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신체를 구성해가는 하나의 실천이다.
국경도, 민족도, 통일체로서의 국가의 의미도 예전과 같지 않다. 기실 그것에 실체가 있었던 적이 없던 것은 차치하더라도 실존적 붕괴나 절멸의 위협을 경험해본 적 없는 세대들로만 구성된 '국가'가 코앞에 도래한 때다. 이런 시대에, 혈통-구성적 진정성과 순수에의 회귀를 주창하는 이들은 과연 어디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집'은 과연 누구의 집인가. 그곳에 머무를 '자격'은 누구에게만, 어떻게 주어진다고 믿어지는가.
모두가 불안정하다고, 외롭고 힘들다고 한다. 모두가 증명의 압박에 시달리고, 고유한 자리에 '돌아가면' 될 일을 괜한 갈등을 초래한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 어떤 '자격'은 특정한 집단에게만, 낙인처럼 달라붙는 정체성의 '소유자'에게만 요구된다. 어떤 폭력은 누군가에게만 감수해야 할 일상으로 취급된다. 어떤 모욕은 누군가의 몸에 부여된 찬사와 단단히 얽히고 덧씌워진다.
p.192 〈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 이들이 관리하려는 젊고 건강한 여성의 몸은 외국인이 아닌 자국민에게 한정된다. 즉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본인 인구의 증가이며, 이민이나 다문화 공존은 대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여성의 재생산 능력이 국민 공동체의 유지와 연결되고, 외국인은 공동체를 위협하는 외부자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이는 모성주의와 섹슈얼 내셔널리즘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p.284 〈재일여성의 교차성 실천과 반혐오의 정동〉 트라우마가 삶의 생명력을 잠식하는 양상은 마이너리티 여성들에게 더욱 중첩되지만, 그럴수록 경험의 고유성은 비가시화되고 외면된다. 이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숨기거나 덮기 위해 더욱 강인한 신체적, 정동적 수행을 요구받는다. 앞에서 본 재일여성의 '씩씩함'에 대한 찬양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혐오발언은 사회적 관계의 기반 자체를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읽는 내내 맴돌았던 생각이 있다. '사회'가 소수자를 집단의 이름으로 뭉뚱그려 호명함으로써 증오의 분출구로 삼을 때, 조롱이 놀이가 되고 혐오-폭력이 어떻게든 정당화될 때, 그것은 자체만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보다 숙고를 요하고 비폭력적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시민 토론의 장을 '가로막는 가능성'이 되지 않는가. '그들'을 그대로 둔 채로 세상이 나아가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던가.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가 재일/이주/여성이라는 세 축으로 보이는 일본과 한국 사회는 끔찍이라는 말로는 모자랄만큼 참담한 몰골로 곪아가고 있다. 지적에서 그치지 않고, 절망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의 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과연 어떻게 서로의 집이 되어, 각자의 이름을 삼켜버리지 않는 채로 뒤섞여 어울릴 수 있을까.
p.189 〈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 유해한 것을 제거하려는 사고방식이 개인의 신체와 국가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관통하여 하나의 세계관을 구성한다. 신체가 외부 물질(백신)과 화학 물질(첨가물)을 거부하듯, 국가는 외부자를 공동체의 순수성을 침해하는 존재로 보고 배제한다.
p.227 〈동시대적 정동과 번역 불가능한 신체성〉 사카이 나오키에 따르면, 통일된 언어 사이의 변환이라는 발상은 번역의 '레짐'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번역 없이는 자신의 '민족어'의 통일성을 의식할 수 없다. 즉 애초에 언어와 공동체의 동질성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번역이 요청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질성 자체가 번역을 통해 구성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