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의과학사 - 그림으로 읽는 의과학 혁명의 순간들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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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이과냐 문과냐, 요즘은 이런 말 안 쓴다면서요? 진짜로? 아무튼, 문이과를 묻는다면 의학은 분명히 이과, 좁은 의미로서의 과학의 영역에 속해있다. 그럼에도 의학은 과학의 한 분과 이상으로 여겨져왔다. 기존 의학사가 위업과 발견의 역사를 말함에 있어 어떤 독보적인 지위 비슷한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하기 어렵다.

오래전부터 의학과 의학자, 의료 현장 관계자는 사회 필수 '자원'으로 여겨져왔다. 의학의 발전은 인류 전체의 진보와 동일시되기 마련이다. 현대에 이르러 지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의 첨단이자 일종의 증명으로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도제식 전승이라는 닫힌 관계를 넘어 탐구함에 있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의문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p.71 측정 도구는 늘어났지만, 그것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객관성은 높아졌지만, 환자가 경험하는 질병의 의미는 숫자 너머에 있었다. (…) 맥박계는 박동의 리듬을 숫자로 환원하지만, 환자가 견디는 밤의 길이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의학은 그 이후로도 이 침상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숫자로 읽는 몸과 돌봄으로 이해되는 인간 사이를 오가고 있다.

p.244 외과의 역사는 기술의 진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환경이 어떻게 과학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감염이 개념화되고, 통증이 통제되었을 때, 외과의 실력은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었다. 칼이 더 날카로워진 것이 아니라, 칼을 쓸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 외과는 결코 혼자 발전하지 않았다. 언제나 축적된 지식들, 그리고 조건을 만들어낸 사람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외과는 의학 가운데 가장 대담하면서도 가장 절제된 학문이 되었다.


머리나 머리털이나 자르기는 매한가지였던, 의술과 주술이 뒤섞여 있던 먼 옛날부터 현대의 도전들에 이르기까지, 의학의 역사는 혁명과 전환, 이념 다툼과 집념이 뒤섞인 난장이었다. 체액설부터 이종간 세포배양까지 모든 순간에 당연하게 한발씩 나아간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 역사의 성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분투하고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애써왔는지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다.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생명은 어느날 덜렁, 등장한 신비가 아닌 복잡한 구조와 체계로 맞물린 유기체이자 가능성의 덩어리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색색의 도판과 바짝 붙어야 겨우 알아볼 복잡한 구조의 그림들, 이어지고 전도되기를 반복하는 이름들에서 발견한 것은 대단한 지식의 자랑이 아닌 열의와 경의의 기록이었다.

p.67 체액설이 여전히 의학의 중심에 있던 시대에, 몸무게의 미세한 변화와 보이지 않는 증발을 논하는 그의 연구는 기이하고 실용성이 떨어지는 집착처럼 보였을 것이다. (…) 환자를 치료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 앞에서, 숫자는 아직 설득력이 부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연구는 시대를 앞서 있었다. 측정은 곧 치료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측정 없이는 이후의 의학도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354 비타민은 단순히 새로운 약의 발견이 아니었다. 19세기에는 질병을 세균이나 독 같은 나쁜 것의 침입으로 이해했다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질병은 무언가 필요한 것이 부족할 때도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진작 이렇게 물었어야 했는지 모른다. 의학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를 묻기에 앞서, 의학의 역사는 누구의 이름과 시선으로, 무엇에 도전하고 응전하며 이어져 왔는지 그것을 말하고, 가르쳐야 했던 게 아니냐고. 동시에, 여전히 물어져야 하듯, 의사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의학은 무엇을 위해 발전하고 존속되어야 하는지 또한.

사회가 갈라져 반목한 시간이 길다. 서로를 몽매한 대중과 이기적인 이익집단 따위로 묶어 이해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의 독자일 '일반 대중'과 미래의 의학-집단이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어디쯤을 써내리고 있는가, 이 길은 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그 끝에서 여전히 서로를 사람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p.280 초음파가 청진기를 완전히 밀어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둘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공존하게 될 것이다. 환자 곁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는 도구, 판단과 행위가 시작되는 지점, 그 자리는 언제나 의학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 그것이 더 본질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p.432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옳다고 믿었던 것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 한 사람,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처음으로 본 사람. (…)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현미경 앞에 앉아 있고, 누군가는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고 있으며, 누군가는 오랫동안 붙들어 온 질문의 답에 막 손이 닿으려 하고 있다. 의학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그 역사의 중간 어딘가일 뿐이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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