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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평점 :
왜 같은 가정에서 함께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한쪽은 매사에 안달복달하고 '관리자' 역할에 노상 진이 쭉 빠진 것처럼 느낄까? '가사'라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영역을 담당하는 사람은 왜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사는 걸까? 왜 양육자 모두가 육아에 참여한대도 한쪽이 더 큰 부담을 지는 형국이 될까. 가정경제와 가족관계의 전반적 관리를 포함하는 가사 부담의 불평등에 으레 따라 나오는 반응은 '엄마/아내가 가장 큰 결정권자'거나 '각자 잘하는 일을 한다'는 식이다.
그러므로 우리 관계는 평등하고 공평하다고. 과연 그럴까? 가정 경제 규모 관리, 가족 성원의 일상 전반, 하다못해 빨래와 식사에 필요한 순서와 준비물, 가족 행사 챙기기는 누가 맡는가? '같이' 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의 '실패'는 누구의 탓으로 돌려지는가? 자녀에게, 연로한 부모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연락을 받고 누가 부양하며, 매일 입고 쓰는 물건과 각종 공과금 등은 누가 책임지는가?
p.8 (추천사) 이 책은 가사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존의 기계적 분담 논리에서, '가사와 육아가 누구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시킨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대개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들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평생 '머리에 이고' 살지는 않는다. (...) 남성들은 자신이 가사노동에 서투른 모습을 반복적으로 증명함으로써, 가사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여성들은 보통 자기 남편의 '무능력'을 남편의 비겁함보다는 그의 천성 탓으로 돌리곤 한다.
p.86 한번의 인지노동은 약간 성가신 소소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작은' 행동 혹은 찰나의 생각들이 쌓이면 그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왜 누구는 혼자서도 잘 살고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다가도 가사 문제엔 얼이 빠져서 '상세한 지시와 칭찬'을 요구하고, 누구는 장단기 계획을 도맡고도 '큰 일'엔 서투르다 여겨지는가? 왜 동등한 주체가 만나 독립된 가정을 꾸리고서도 한쪽은 퇴근 없는 직장을 오가고, 누군가는 휴식과 출근을 분리할 수 있는가? 물어야 한다. 이것은 정말 진정 그가 그 일에 적합한 성격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도된 나태함일까? '적성에 맞는 일'의 결과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설령 '잘 하는 일'을 맡아 나눈다 하더라도, 부담은 편중되어 있다. 누군가 준비부터 뒷처리에 실행을 맡고, 누군가는 결정만 내리면 된다면, 또한 그 결과의 책임이 한쪽에 편중되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를 평등이라 할 수 없다. 수직-업무적 위계 관계가 아니고서야 더더욱. 저자가 말하는 인지노동의 단계적 분담이 진실로 '분담'이 아닌 이유다. 개인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편만 급작스레 무능력자가 될 일이 없으니.
p.117 커플들의 합동 결정은, 결정 단계에 이르는 데 필요한 동이한 수준의 준비 작업에 남성이 참여하지도 않고, 혹은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동일한 중압감을 남성이 경험하지도 않으면서 가정생활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점수'를 따는 경우가 많았다. (…) 결정하기는 상대적으로 이득이 높은 인지노동이다. 예상하기나 지켜보기보다 눈에 잘 띄고, 많은 경우에 커플이 제한된 자원을 사용하거나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p.280 인지노동은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도 여성에게 크게 편중된 가사노동의 한 차원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는 우리가 통상 가사노동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시간 기반 지표로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 이성 커플 다수에서 여성들은 더 무거운 인지적 부하를 떠안고 있었고, 그것도 상대적으로 부담은 크지만 보상은 적은 활동들에 불균형하게 집중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이 과연 개인만의 전략이고 의도겠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사회가 어떻게 오래된 방기를 조장하고, 어떤 면에선 누군가를 집 안으로 '묶어 치워버릴' 수밖에 없게 하는지. 어떻게 이 차별이 성격과 현실의 이름으로 '합리적 선택'으로 탈바꿈되는지. 모든 노동이 얼마나 젠더-수행에 밀착되어 있는지, '정상 사회'가 얼마나 많은 비가시노동을 전제하는지를 생각해보라.
저자의 말처럼 "문화적인 힘들이 어떻게 여성을 몰아가서 가정이란 맥락에서 그러한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하는지(19)"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라, 그것은 정말 무능과 재능의 문제였는지. 가정이 관리자와 이용자로 나누어진 공간은 아니었는지. 질문에 답할 때쯤엔 이전과 같을 수 없으리라 믿는다. '같이 살아가는' 일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듯이.
p.282 이러한 서사가 호소력이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나 반세기 동안의 '젠더 혁명'이 불균형적으로 행위에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복해서 여성들에게 그들 또한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해왔으면, 여기서 '무엇이든'은 주로 직업적 성취의 맥락에서 이야기되어왔다. 이는 중요한 진전인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젠더를 '한다'는 것에는 행동뿐 아니라 사고방식과 정신적 습관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p.293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과 커플에게 변화의 주체로서의 힘을 되돌려주는 것과, 인지노동 문제를 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자기계발서에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커플을 향한 권고로 가득하다. (…) 즉, 문제의 핵심을 남성과 여성 개인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혹은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지에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진정으로 문제적인 것은 개인들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그들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힘들을 간과하는 데 있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