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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성해나 #인비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공포, 두렵고 무서움. 기담,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기담은 무서운 이야기인가? 이상야릇한 재미와 두렵고 무서운 마음은 무엇에 기인해 합하고 갈라지는가. 수많은 이견이 있겠으나, 일단은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두렵고 무섭고 이상야릇하고 재미난 '것'은 지와 무지의 흔들리는 경계에 있다고, 다르게 말하자면, 믿음과 믿을 수 없음에.
어떤 경우에 이것들은 말할 수 없음, 정확히는 말해질 수 없음에 기인한다. 알고 있다, 혹은 존재한다, 보았고, 겪었다 혹은 겪도록 했다. 눈을 마주친 인간, 상대의 눈 너머의 '것'을 바라보고, 혹은 바라봐진, 꿰뚫린 인간이 그것을 말할 수 있는가? 떳떳이 공표되어 살아가질 수 있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오래된 생각을 불러오고자 한다. 많은 두려움, 말해질 수 없음은 죄 혹은 '뒤집힘'의 가능성에 있다고
p.22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세월이 지나 내 아들이 성장한 후에도 이 책상이 멀쩡히 보존된다면 아들에게 이것을 물려줄 것이다. (…) 아이가 커 가정을 이룬다면 그 자식에게도 전해지겠지. 역사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 테지. 흠은 파내고 구실은 잘 덮으며. 그리고 언제까지고 내게는, 아니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도.
p.43 〈인비인〉 몸을 숨기고, 숨을 죽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두더지가 그러듯 그것은 코끝과 귓바퀴를 움직여 제 체취와 소리를 감지했고, 어디든 따라붙었습니다. 오야지.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저는 점점 죽어갔습니다. (…) 빠가! 저쪽으로 떨어지라고! 그러자 이렇게 답하더군요. 명 받들겠습니다. 오야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두렵고 이상한 것은 바깥에서 전해 들어온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우리' 안이 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기이한 것은 곧 낯선 것을 넘어 낯섦이고, 공포는 익숙해질지언정 절대로 친숙해질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바깥, 그들, 저편에서 이쪽, 안, 우리에게로 침투해올 기회를 노린다. 그 존재를 인식 너머로 밀어내거나, 어떤 믿음, 나의 경우만은 다르리라는 알량하고 공고한 믿음 없이는 일상을 안위할 수 없는 나약한 동물인 탓인지도 모르겠다.
곁가지로 나아가, 인간과 도넛은 위상적으로 같다 하지 않는가? 뒤집어 까도 인간은 인간, 도넛은 도넛. 도넛은 인간, 인간은 도넛. 자, 여기서 문제. 안팎이 뒤집어진 인간은 무엇일까요? 그 순간 우레같은 깨달음이 들려온다면, 축하한다. 당신 또한 뒤집어진 존재입니다.
p.110 〈매일〉 굴곡도 없고 위험 부담도 적으며 노출도가 낮은 삶. 누군가의 일생을 낙찰받으러 온 사람이 원하는 건 그런 삶이라고 34번은 설명한다. (...) 보통은 인생에 곡절이 너무 많아서 오는데, 인생이 너무 지루해서 오는 사람도 있대요.
p.246 〈#유령〉 이제 0에겐 그럴 힘도, 기대도 없었다.뉴로비전 패치에서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1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며 0은 패치를 뜯었다. 적막한 집 안에 단조로운 파열음이 들렸고, 1이 입을 뗐다.
내-면을 드러낸. 드러나진 안-속은 마르고 부패해 죽어간다. 박박 닦아 새로운 겉으로 만들지 않는 한. 어째서인가? 이미 부패해있기 때문이다. 주저하고 뭉개는 사이 썩어문드러졌기 때문이다. 어째서인가?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알맹이를 드러낸 겉은 금세 죽습니다. 겉은 알맹이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 울음과, 분노, 죄과는 현실을 초월하거나 미끄러져 떨어져나간, 소외된 형태로 다가오지 않나. 향기와 악취가 뒤섞인 벚나무 책상, 형태 잃은 육괴. 목숨보다 중한 것, 명예, 자존심, 나의 존재를 세계에 단단히 결속하는 '연결'에 대한 믿음. 그렇게 죄, 흠, 비밀은 스며드는 음각이다. 절망이 그러하듯이.
p.79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결연했고,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그게 부끄러웠다. 그들의 비슷한 외양이, 깨끗한 두루마기와 수치를 모르는 태도가 견딜 수 없었다.
p.186 〈윤회 (당한) 자들〉 감독님, 감독님은 소속이 어디예요? (...) 모르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매번 물어보잖아요. 소속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직장은 다니냐? 소속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속해보니까 그래요. 찐따들이어도요, 모이면 단단해져요. 그리고 되게 웃긴 게 그 안에 있으면요. 나도 조금 쓸모 있어지는 것 같아요.
단 한 명이라도 인간됨을 지향한다 믿어지는 한 승자의 기록이라느니, 본성이 어떻다느니, 현실이니 실용이니 면피는 어떤 식으로든 두려움의 형태로 돌아와 아가리를 벌려 덤벼들 것을 믿는다. 인간의 가능성은 상상에 있다 믿는다. 타인의 눈에서 나의 삶을 떠올릴 수 있는 존재이므로. 수많은 폭력이 타자를 비인간의 지위에서 몰아내려 그토록 애써온 이유.
그런 이유로 오늘도 이렇게 곁가지를 넘어 숲으로 나아간 끝에 마주친 얼굴이 몹시도 낯설어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를. 이상야릇한 감각이 닫힌 문을 열어젖히기를. 깊숙이 파묻고 통째로 불태운대도, 꺽, 넘어가는 숨에 수치와 죄책의 두려움이 스미기를.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날이 이어지기를. 슬퍼하기를. 들척지근한 수치와 도피의 냄새에 코를 박고 끝의 끝까지 도망쳐 처음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기다릴게요.
p.229 〈아미고〉 그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기계적으로 장비를 세팅하고 점검한다.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던 촬영기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오토 모드로 작동하는 카메라로 대체된다. 주위를 둘러보다 나는 생각한다.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p.301 〈고독〉 먹이 냄새가 밴 자리를 서성이는 짐승처럼 이익도 그것과의 라포르에 순치되어 지난 사나흘간 탕전실 걸쇠를 풀지 말지 몇 번이고 고민했었다. 연기가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익은 머뭇대다 걸쇠가 단단히 걸렸는지 확인한 뒤, 나직이 읊조렸다. 그래도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됐지.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