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철학하기 - 재미, 예술성, 장르 등 비디오 게임을 둘러싼 수많은 질문들
주자안 지음, 정세경 옮김 / 현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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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현암사


돌이켜보면, '게임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썩 적절한 응답자였던 적이 없는 듯하다. 게임, 개중에서도 주로 화면으로 송출되는 비디오 게임은 내 세대에게 퍽 다양한 의미값을 갖지 않던가. 방종의 상징과도 같은 '전자 오락'에서 평범한 취미로 인정받기까지 과장 조금 보태 격동의 시기를 거쳤으니 말이다. 오늘날 게임은 아동부터 성인까지, 후기 중장년층에서까지도 낯설지 않은 취미가 되었고, 그만큼 커뮤니티도 전세계적으로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다.

게임 커뮤니티는 전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유저 피드백이 극도로 활발한 분야이다. 이에 따라, 당연하게도, 현실과 잦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그 중 하나가 다양성과 평등에 대한 분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저자가 제시하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명백한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와 관건들을 짚어나가는 독자는 필연히 경제, 체제, 커뮤니티, 인간 존재를 다루는 현실의 최전선에 서게 될 것이다. 다시 돌아와, 커뮤니티 말이다.

p.22 가짜 사물의 나쁜 점은 매우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가짜를 원하는 이유는 뭘까? 그 답은 때로 가짜가 진짜를 경험할 수 있게 하며, 또 때로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 데일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조종한 캐릭터는 당연히 가짜였다. 하지만 그는 게임 속에서 '여성으로 여겨지는' 경험을 했다. 이는 진짜이고 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p.112 가장 좋은 옵션만 눈에 띄고 다른 옵션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경우, 플레이어가 내릴 결정의 다양성에 문제가 생겨 위협적인 수준으로 게임의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의 '밸런스에 문제가 있다'며 불평을 한다.


많은 분야에서 그러하듯 게임 유저 커뮤니티 또한 남성, 특히 백인 유성애-헤테로 남성을 기본 타겟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크며, 이들의 '재미'가 '기본값이 아닌 존재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추방하려는 경향은 낯설지 않다. 또한 유저들이 으레 내세우곤 하는 '재미와 휴식의 자유 확보'가 과연 그들과 게임이 놓인 현실, 유저와 제작자가 살아가야 하는 세계와 진정으로 '분리'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이 수차례 지적해온 바 있다.

게임이 종합 예술이자 존중될 수 있는 취미의 영역으로 인정받기 위해 탈정치를 주장해온 움직임이, 역설적으로 가장 개인적이고 탈정치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공적 영역과 정치적 주제에 속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나게 한 셈이다. 혹자는 이에 또다시 반발할지 모른다. 앞서 말한 역설처럼 왜 '사적인 재미'까지도 '눈치를 봐야'하는지 일면 억울함을 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묻지 않고는 게임 산업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논해질 수 없다.

p.161 '시간 낭비를 하면 안 된다' 라는 관념이 사실 자본주의 사회의 실패의 일환이며,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무의미하게 헛돌고 있는 사회에 일조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비디오 게임도 이런 헛된 공전의 일부가 될 잠재력이 있음을 이해한다면 자신이 무엇을 위해 게임을 하는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p.356 다만 '동등한 토론 공간을 만드는 일'에 대해 말하자면 현재의 게이머 커뮤니티는 수렁에 빠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 차별적이고 성적 대상화를 하는 비디오 게임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 공간에서 차별과 혐오 발언에 대해 강제력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그곳이 회사든 학교든 아니면 인터넷 커뮤니티든 동등한 토론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누구도 의문과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게임-체계의 일원이 그저 '보통'의 일부라는 주장의 가장 든든한 뒷받침일지도 모른다. 게임이 숙고와 철학적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게임의 내용과 구성에 다양한 의문이 제기하고 그것이 현실의 구조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따지고 탐색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게임 향유자와 생산 및 운영자, 그에 관계되는 이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서 목소리를 낼 근거가 되는지에 맞닿는 가능성일 것이다.

요구할 수 있음, 묻고 답할 수 있음. 이 허구가 현실과 완전히 별개로서의 완전무결한 존재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주체적인 향유자로서의 핵심이므로.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주장은 기실 '재미' 바깥으로 밀어내는 적극적인 선택과 외면의 결과일테니 말이다. 그렇게 게임은 철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언젠가 게임철학이라는 분야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묻고, 맞서고, 응전하고, 나아가라, 게이머들이여.

p.392 우리는 평소 'PC를 탓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기 쉬우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품을 평가하기 십상이다. 그 때문에 어떤 작품에서 아주 작은 PC의 단서만 발견해도 '또 PC네'라고 댓글을 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평가 방식은 당신에게 좋을 것이 없다. (…) 오히려 당신은 작품을 감상할 줄 아는 행복한 사람이나 작품을 제대로 리뷰할 줄 아는 소통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닌, PC 냄새만 맡으면 재채기를 하며 분노를 쏟아 내는 사람이 될 뿐이다.

p.400 만약 스스로 정치로부터 방해를 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현재 정치 환경의 기득권자라는 뜻일 것이다. (…) 예술 장르의 하나로서 비디오 게임도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같은 주류 계층이 비디오 게임 속 다양성 요소에 위화감과 익숙하게 않음을 느낄 때 비디오 게임은 오히려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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