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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생업.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 생계를 위해 하는 일. 먹고 사는 일. 밥벌이. 그 징하고 찡한 이야기들. 비단 먹고 숨쉬며 살아가듯이 자연스러운,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기꺼이 나서는 일, 이렇게 해야만 살 수 있기에 떨쳐일어나는 일. 그 모든 일들이 생업,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이다. 생업이란 사람을 살리고, 살게 하는,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이다.
이 책은 저자가 말 그대로 밥을 짓고 먹이는 사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 함께 사는 삶으로 나아가자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 듣고, 묻고, 나눈 시간의 기록이다. 그래서일까, 곳곳에 먹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매일같이 상 차려 먹이는 사람, 그 사람 밥 먹이던 이야기, 낯 모르는 사람들 끼니를 따라다니며 챙기는 사람…
p.12 밥과 일에 대한 가치 정립. 우리는 이 절대적인 삶의 필수 조건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투자로 얻은 금융 소득이 근로 소득을 앞서는 사회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은 갈수록 초라해진다. 좋은 직업의 '좋음'은 연봉만 우선시 된다. 그러나 돈이 없어도 살기 어렵지만 또 돈만으로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다.
p.32 "밥 하는 엄마보다는 혁명가 엄마가 좋아요." 하지만 매일 1700인 분의 밥을 짓는 사람이 혁명가다. 밥은 타인에 대한 사랑의 실행이며, 밥은 흩어진 존재들을 모으는 점성 강한 연결의 수단이다. 인간은 밥 주위로 모여든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덤덤하게, 그러나 뿌듯하게 말한다. 뼈빠지게 일하고, 때로는 일신의 안락함마저 내던지고 달려들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았다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노동의 고귀함을, 스스로와 세계를 떠받치는 자의 자부심이란 것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밥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고 했던가, 하루하루를 먹고 살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작가는 먹는 일에는 구차한 데가 있다, 고 말했다. 그 말은 그 밥 한 술 떠넣지 못하는 입을 아는 자의 치욕이다. 먹을 때가 아닌데, 들어갈 속이 아닌데도 꾸역꾸역 밀어넣어야 하는 자의 수치심이다. 정의에 가장 가까운 감정은 수치심이다. 긍지에 가장 가까운 말이 슬픔이듯이.
p.92 "환대란 내가 뭘 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있던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가 주가 될 때, 주객이 뒤집어질 때 가능하죠. 그래서 내 자리를 뺏길 각오가 돼 있어야 해요. 저는 그게 나쁘지 않았어요. 한 번이라도 관계가 전복되는 건 달라요."
p.278 화살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화살이 제대로 사람을 찌르지 못할까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갑옷이 사람을 보호하지 못할까를 걱정한다. 국어 교사 박민영은 갑옷을 만드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입힐 언어의 씨줄과 경험의 날줄로 짠, 세상에서 제일 튼튼한 갑옷을 짜는 예술가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노동절이다. 새삼스레 주변을 둘러본다. 도처에 일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채널 자막에는 일하다 죽고 다친 사람들이 줄지어 흘러갔다. 하루도 빠지는 날 없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죽음으로 밀려갔다. 앞서 생업은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이라 했다. 그러니 일하다 죽는 사람, 일 때문에 죽는 사람, 그 일이 아니었다면 견디지 않았어도 될 일에 죽어버린 사람이, 그 죽음이 얼마나 처참하고 참담한 일이란 말인가.
누구도 일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람이 사는 모든 일에 노동이 있다. 그러므로 노동을 말하는 것은 곧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과도 같다. 노동이 천함과 그악스러움의 대명사로 읽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수고와 감사를 자주 잊는다. 무심히 지나치는 얼굴들, 말끔한 공간의 곳곳을 보며 묻는다. 나의 오늘에는 어떤 노동이, 몇 명의 일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p.100 한국 사회에서 유가족이 된다는 건 바다 같은 슬픔에 잠기고 하늘 같은 분노에 휩싸이는 일이다. 사망 원인을 죽은 사람의 과실로 돌아가는 사용자 측과 질긴 싸움이 시작되고 사람이 일하다가 죽었는데도 기업은 벌금만 내면 그만인 잔인한 현실을 맞닥뜨려야 하니 가슴에 불길이 잦아들 날이 없다.
p.227 그가 싸우는 건 과격해서가 아니라 절실해서다. 자식을 낳은 엄마이자 자식이 죽는 걸 본 사람이라서다. 사랑을 줄 때조차 사랑을 받은 한 존재를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커서다. 모르는 이들을 향한 이타심,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사명감 같은 인간 보편의 감정에 따르는 것이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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