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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동맹이라는 거울 - 한미일 안보 체제의 한계와 가능성
지지와 야스아키 지음, 길윤형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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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국경'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른바 '자국과 타국'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고 간주된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고 저기까지는 그들, 이라는 식으로. 책임과 권리, 방어와 침입의 구분선으로 기능하는 '국경'은 어떻게 정해져야 할까? 내륙 국가라면 차라리 해결이 쉽다. 문제는 남한과 같은 '실질적 섬'이나 일본처럼 아예 전국이 섬으로 구성된 경우이다. 그것도 인접국이 명목상으로나마 전쟁태세를 늦추지 않는 경우 말이다.
수백년간의 침략과 분쟁으로 단단히 얽힌 나라, 한국과 일본. 이 두 극동국가가 얼치기 펴와라는 현상유지에 도달한 것은 아무리 좋게 쳐줘도 양국 간 합의의 결과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 주축에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진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물음이 발생한다. 이 다글다글 붙어 있는 체제적, 정치적 '접경과밀지'에서 미국의 군사력이라는 '퍽 이질적인 세력'의 주둔이 발휘하는 힘은 어떻게 해석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극동의 군사안보적 미래는 어떻게 그려지고 또 받아들여지는가?
p.7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1945년 일본 제국이 붕괴한 뒤에도 '극동 1905년 체제'는 지속됐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패전 이후] 이 체제를 힘으로 뒷받침하게 된 것은 '한미·미일 양 동맹'이라는 안전보장 시스템이었다.
p.70 미일동맹은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허브 앤 스포크형 동맹망의 일부이다. 또 미군이 일본 내 기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한미동맹과 특히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 '일본적 시점'에서 파악한다면, 미일 두 나라 사이의 '양자' 동맹일 뿐이고 미국의 다른 동맹망과 독립된 존재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제3자적 시점'에 서면, 실제로 이 동맹은 '극동 1905년 체제'를 떠받치는 '한미·미일 양 동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안전보장 체제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기능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일본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미군 주둔과 핵무기를 이용한 위력-전략을 어떻게 이해하고 유지 혹은 개선하려 하는가?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극동의 3국, 아니 실질적으로는 6개국(남한, 북한, 읿본, 대만, 중국, 러시아)이 일종의 최전선인 동시에 잠재적 위협으로 여겨지는 형국에서 각국의 정치군사적 태도는 즉각 다른 국가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핵'의 소지 여부나, 사실상 군대인 일본 자위대 조직의 타당성에 대한 갈등이 거듭 터져나오는 것 또한 좌시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본문에서 거듭 거론되는 일국평화주의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에 대한 안일한 태도에 연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각종 밀약과 협정은 대중시민사회와 유리되어 맺어지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독자 또한 정치적 주체로서 거듭 물어야 한다.
p.150 한 발 더 나아가 말하면, 미국과 적대하는 국가는 극동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일이 사전협의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든, 즉 일본이 '사용 불허'를 결정한다 해도 주일미군이 [일본 내 기지를 활용한] 직접전투작전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수십 년 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기시 총리에게 말한 "일본의 의사에 반해 행동할 의도가 없다"는 약속은 당연히 미국의 적대국의 인식을 바꿀 만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
p.160 중요영향사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자위대가 "현재 전투행위를 행하고 있는 지역이 아닌 장소"에서 미군을 후방지원 하고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이 활동은 미군의 무력행사와 '일체화'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자위대는 상대방의 공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런 주장은 극동유사사태와 사전협의 사이의 관계처럼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국내법적 논리이자, 자국의 의회·국민을 향해 내놓는 헌법 해석이나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과연 그 '나쁜 짓에 연루되지 않기'로 충분한 것인가? 나에게 어떤 '공격적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어떤 분쟁에도 휘말리지 않는다'며 물러서는 태도가 과연, 윤리적 책무를 떠나, 얼마나 실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실질적으로 한 패로 묶이는 와중에 '결정권 없음'을 주장한대도 상대가 '결정권자끼리만 공격하겠습니다' 따위의 '친절한' 선택을 하리라 기대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저자는 일본의 입장에서 미일동맹과 '극동유사사태'에서 일본의 안전을 중심으로 논하나, 다시금, 한국의 입장,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정치적 태도와 별개로 생각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격변하는 정세와 날로 더해가는 분쟁의 위협에서 우리는 진정 '안전하기' 위해, '자주국방'을 주장하기 위해 어떻게 중심을 잡을 것인가. 어떻게 안팎의 위협으로부터 평화라는 아슬아슬한 희망의 균형을 지켜낼 수 있을까. 제국주의와 국제패권이라는 암울한 그림자 앞에서 오직 그를 물을 뿐이다.
p.215 성단을 통해 종전을 결정했다는 것은 [당시 일본이] 천황의 판단 없이는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일본 정부 내에] 거버넌스(통치 기능)가 결여돼 있었음을 드러내 보여 주는 예가 아닐까 한다. 만약 [일본이] '다음' 위기를 겪게 된다면, 전쟁 종결이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는 주체는 민의를 체현한 정부여야 한다. (…) 출구전략을 염두에 둔 일본의 시각을 평소에 동맹국이나 관계국·지역과 공유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p.288 안보 정책은 국가 간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 이상 일국평화주의나 필요최소한론에 기초한 '일본적 시점'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결국 '나만 옳다는 독선'으로 이어져 현실과 괴리가 생겨난다. 그로 인해 미일동맹이 기능할 수 없게 돼 거꾸로 일본의 안전에 위험을 불러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본말전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