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이브들 - 인류의 진화를 이끈 첫 번째 여성들을 찾아서
캣 보해넌 지음, 안은미 옮김 / 시공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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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이브들

태초에 낙원이 있었으매 나약한 여자가 간악한 꼬임에 남자를 꾀어 죄를 짓고 낙원에서 쫓겨났더라. 여자란 본래 남자의 몸에서 난 탓에 열등하고, 약하며, 감정적이고 불안정하다… 정말로? 고래로부터 여성의 존재는 몸으로 한없이 수렴되고, 모성의 신화와 열등한 짐승이라는 비난에 쉴 새 없이 시달려왔다. 과학기술로 무장한 지금, 학계는 달라졌을까?

퍽이나. '비과학'의 시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저자는 남성을 인간의 기본형으로 삼아온 '통념'에 맞서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 우리 몸 곳곳의 조상, 저 구석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동굴의 현모양처가 아닌 생존을 위해 분투하던 곳곳의 시원들을 불러낸다. 젖을 먹이고 새끼를 낳고 무리를 이루며 나무에서 내려와 땅을 박차고 뛰기 시작한, 말하고 생각하고 오래, 때때로 너무 오래 살기 시작한 최초의 이브들.

p.13 암컷의 몸은 그저 수컷의 몸에 지방, 유방, 자궁 같은 '여분의 부위'가 달린 몸이 아니다. 고환과 난소는 바꿔 끼울 수 있는 부위가 아니다. 성별 구분은 포유류 몸에 온갖 주요 특징과 그 안에서 사는 우리 삶에 배어 있으며, 이는 생쥐에게도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이 수컷을 기준으로만 연구하면 우리는 복잡한 그림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업다. 우리는 성별에 따른 차이에 대해 질문하지 않기에, 이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무엇을 놓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p.233 여성은 근본적으로 운동 직후 근육 강도가 더 떨어지는 듯했지만 훨씬 더 빨리 회복했다. 이것은 강한지 약한지의 문제가 아니라 대사와 조직 복구의 문제다. 단기적으로 남성은 근육을 가지고 '힘 쓰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손상도 더 입는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일찍 쉬어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한숨 돌리고 나면 비슷한 상황의 남성보다 일찍 그 일을 다시 할 수 있다. 태초에 낙원이 있었으매 나약한 여자가 간악한 꼬임에 남자를 꾀어 죄를 짓고 낙원에서 쫓겨났더라. 여자란 본래 남자의 몸에서 난 탓에 열등하고, 약하며, 감정적이고 불안정하다… 정말로? 고래로부터 여성의 존재는 몸으로 한없이 수렴되고, 모성의 신화와 열등한 짐승이라는 비난에 쉴 새 없이 시달려왔다. 과학기술로 무장한 지금, 학계는 달라졌을까?


진화가 일방향적, 선형적이라는 착각과 이분법이라는 문화적 관념 모두에 도전하며 '몸 바깥의 문제들'이 어떻게 몸-존재들에게, 몸의 유무형적 차이가 어떻게 지배 담론에 이용되어 왔는지를 보인다. 그의 예시들에서 알아볼 수 있듯 생물학은 사회학과 별개가 아니다. 우리는 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압력이 어떻게 생물적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지, 생물적 다양성이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영향을 미치는지 샅샅이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청력의 성차에 대해서도, 예를 들면, 구형 전자기기에 쓰이던 부품에서는 특정 주파수 소음이 방출되었다. 그러나 이 소리는 남성보다 여성이 예민하게 감지하기 때문에, 거칠게 말하자면 그것을 개발하는 남성들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였기 때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기기를 이용할 때마다 불쾌한 느낌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를 토로하는 이들이 여자라서 예민하다는 식의 반응에 맞닥뜨렸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성을 포함한 '비남성'들은 '규격'에 들어맞지 않는 일상과 '항상적이지 않은' 불편에 순응하도록 요구받는다. 마치 '인간'과 별도의 종인 것처럼.

p.158 남성은 고음을 듣는 능력이 먼저 사라지는 유형의 난청을 여성보다 훨씬 많이 겪는다. (…) 남성이 나이 들면 고음인 여성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없지만, 남성의 목소리나 그 외 덜컹거리는 낮은 소리는 여전히 들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성은 전형적으로 나이가 들며서 사회적 권력을 얻으므로, 권력을 가진 남성은 말 그대로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p.354 트랜스 여성이 여성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뇌는 자신의 방식대로 연결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발달 변화를 겪으면서 성 정체성을 만든다. 대부분의 인간 뇌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성별이 있는 존재라고 이해하는 듯이 보인다. (...) 뇌에 기반한 성 정체성이 그 신체가 속한 사회가 기대하는 바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들의 것보다 덜 실제적인 정체성이 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진화는 우열과 의도의 문제가 아니다. '균일해보이는 정상 시스젠더 남성'은 인간종의 다양성을 대표할 수 없다. 성차별의 과학적 근거는 결국 전체적 손실로 이어진다. 성차는 결국 우열의 문제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에 부득불 반대하고 싶다면, 축하한다. 그야말로 인간 가능성의 실패작이다. 책머리로 돌아가시오. 우리 인간 모두는 이브의 몸으로부터 태어난 다양한 실험실이자 가능성이다.

저자가 강조하듯 인간의 가능성은 확장된 무리짓기와 돌봄의 연장에 있다. 혹자는 이 다양과 공존의 가능성을 '사회적 발명품' 따위로 취급하고 싶을지 모르나, 저자 말마따나, "우리가 바로 이런 몸이다. 고통스럽든 행복하든, 장애가 있든 없든, 병에 걸렸든 죽어 사라질 때까지 건강하든, 우리 몸과 그 안에 든 뇌가 그냥 우리다". 글쎄, 우리는 그저 이런 존재일 뿐이다. 그뿐이다. 부딪히고 고민하고 끊임없이 가능성을 탐색하며 함께 살 방도를 찾아나가는 이브의 아이들이다. 생긴대로 살자. 그래, 역시 좋은 말이다.

p.510 역설적이게도, 현대의 성차별은 산부인과학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저해한다. 성차별적 문화는 여성에게 더 잦은 임신을 기대하는 것 같지만, 임신한 여성에게 제공되는 건강관리 기회도 줄인다. (…) 모성 사망률이 높아지도록 놔둔다? 진화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 이런 결과는 건강한 아기를 최대한 많이 낳을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이다. 생물학적으로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다.

p.534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우리의 고유한 인간적 형질들을 총동원해야 하는, 다시 말해 확장된 친족 행동, 내러티브 구축, 문제 해결이 모두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하는 최고의 일은 이토록 깨지기 쉬운 확장된 유대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좋든 싫든, 이런 제도들은 영역성, 성차별, 우위 경쟁과 같은 우리의 덜 바람직한 행동을 극복하게 해 준다. 이 제도들은 우리 몸의 진화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이다.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하는 수단이다.


*서평도서제공: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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