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언제부터 신과 다른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전지전능의 일신론이 의식체계와 기반 세계를 재편하기 전, 인간의 욕망과 충동, 명과 암의 양면성은 인간사회의 곳곳에 스며 있었다. 그것들은 신의 광휘를 입고 그 자체로 자연스레, 혹은 영광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고의 창조주와 순종의 물결을 타고 인간 안의 감정과 욕망 생리와 사회적 본능이 피조물의 속성으로 전락해, 신성을 인간과 별개의 존재로 떼내어 숭앙하기 시작한지 기천년, 또 백여년 사이 급기야 제거 대상의 물목에 오른 지금 현대인은 수용되고 합일되지 못하는 야만과 내면세계와의 갈등을 겪고 있다.

p.49 편향된 신화는 우리를 현실성 없는 이상에 매달리게 하며 거듭 좌절하게 만든다. 자녀가 자기 아버지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아버지가 성숙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도 온전한 아버지 이미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융 분석가인 매리언 우드먼은 어머니의 어두운 측면을 통합하는 것이 현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진화사적 과업이라 했는데, 아버지의 어두운 면을 통합하는일 또한 이에 버금가는 중요한 숙제로 보인다.

p.208 심리적 위기의 정점인 '영혼의 어두운 밤'은 마치 태양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식과도 같다. 그런데 깜깜할 때야말로 영혼이 잠에서 깨어나며 비가식적 존재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성인기에는 책임이나 성공 같은 '바깥의 빛'을 향해 매진하는 것이 주 과업이라면, 삶의 후반부에는 눈을 안으로 돌려 내면 작업에 매진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사라진 신들은 어디로 갔는가? 야만과 죄를 뒤집어쓴 채 영영 타르타로스의 밑바닥에 봉인되었는가? 여기서 기억해내야 한다. 신탁과 운명을 부정하던 이들의 말로를. 그들은 잠재된 위협으로 남아 시시때때로 봉인을 강하기에 억눌리는 것이 아니라 억눌렸기에 위험하고 강한 존재가 된다. 현대인에 있어 뜯겨나간 신성의 또다른 이름은 폭력, 중독, 우울과 채워질 길 없는 절망이다.

그리스신화는 명백한 다신론적 세계관이다. 아니, 모든 것이 신이자 신성이다. 갈등도, 모순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도.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다채롭게 존재하는 세계야말로 가득한 신성의 증거이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사잇길이다. 무턱대고 누를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을 회복하는 길이요 그 안의 자유를 찾는 방법이라 저자는 말한다.

p.112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즉 성과 공격성 혹은 사랑과 전쟁의 구도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몰아내길 원한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찾으려 했다. 하르모니아의 탄생에는 바로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가장 감당하기 어렵고 또 가장 매혹적인 원초적 에너지들이 결합해 두 에너지 사이 균형이 이루어지자, 비로소 진정한 '조화'가 탄생했다.

p.241 이 신은 위협적이다. 그리고 정통의 위협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증상에는 영혼의 호소가 들어 있다. 그림자가 난무하는 지금, 억압과 배제가 아니라 디오니소스 힘을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가 절실하다. 이 강력한 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야만에서 벗어나 인류가 도약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일 것이다. 신의 선물인 풍요의 뿔은 모두를 비옥하게 할, 결코 망각할 수 없는 힘이다.


신화는 분명 오래된 이야기이다. 보편에 기대어 설명하는 데에도 분명 한계가 있다. 이성과 논리의 세계의 현시대의 '남성성'에는 남신들의 속성과 그들의 이미지를 통해 참조할 모델을 잃어버린 채 안팎으로 터져나오는 폭력만이 남아있다. 모호함과 감정의 오염을 거부하는 명료한 이성과 논리의 세계는 들끓는 감정과 카타르시스, 부드러움과 유기적 자연의 이미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비단 물리적 '남성'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인간에 내재된 남성성의 문제다. 신화가 유비하는 인간사, 신들의 세계로 전해지는 인간 내면의 추동과 갈등을 통해 엿보는 억눌린 무의식과 원형 이미지는 다시금 차가운 이성의 세계에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 본질에 가장 가까운 서사의 세계가 그 해답으로 가는 문을 살그머니 열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p.91 취약함과 수치심을 수술하듯 제거하거나 깊숙이 묻어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노력은 상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장애물을 항구적으로 만들 뿐이다. (...) 상처도 결점도 추함도 열등감도 없어 보이는 삶을 원한다는 것, 이는 자신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창조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참자기가 되는 길은 있어도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p.252 디오니소스를 몸의 영성이라 했다. 의례를 통해 몸의 감각을 일깨워 신적인 합일에 이르는 것은 신을 경배하기 시작하던 선사시대부터 있어 온 한결같은 인간의 염원이었다. 이를 상실한 우리는 두려움과 열망, 충동과 금기의 반목과 갈등을 각자 내면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경험한다. 신화는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할수록 벌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해 준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