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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평점 :
언젠가는 광인, 부랑자, 사회의 온갖 문제적 존재를 한 데 쑤셔넣는 곳이었다가, 또 언젠가는 치료를 빙자해 죽을 때까지 가둬놓는 격리소였다가, 시간이 흘러 이제는 주립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 환자 수 천오백 이상, 한가운데엔 원장 관사. 그곳이 바로 밤이면 환자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들고 아침이면 실랑이와 발작 가운데 씩씩하게 등교하는 주인공의 집이다.
박식한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시시때때로 속을 긁어놓는 두 형... 에 지지 않는 환장과 황당의 결정체같은 막내, 요세. 그가 풀어주는, 엉뚱발랄 따위의 깜찍한 수사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유년의 기억은, 뭐랄까. 얘야 제발. 요세, 막내야, 대체 뭐가 문제니. 진정하고 제발 말로 좀 해라. 안돼 하지마! 뭐든간에 멈춰!!!
p.131 나는 말을 떼기도 전에 그들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 때부터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할 게 없다. 주변에서 밤마다 수천 명의 사람이 그렇게 비명을 질러대는데 나까지 울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새들이 아침의 특정 시간대에 노래하기 시작하듯 저녁 울음소리에도 일정한 논리가 있는 듯했다.
p.482 나는 그들의 무절제함, 끊임없는 소란, 그리고 내게는 너무나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던 그들의 일상적 광기가 그리웠다. 또한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의 분명함을 그리워했다. 수많은 환자들이 운명처럼 갇혀 있던 존재의 숨김없는 명료함을. 그리고 무엇보다 밤마다 울려 퍼지던 환자들의 무수한 절규를 그리워했다. 나를 그토록 기분 좋게 잠들게 했던 그 절규와 비명을.
꼬마에서 청년이 되기까지 자잘한 에피소드는 이따금 황당하고, 당황스럽거나 또 사랑스럽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환상적이고 치열했고, 불가해한 갈등과 미처 알지 못했던 어른의 사정들, 짜릿한 비밀 사이사이를 채우는 것은 반짝이는 순간들이다. 사랑이거나, 두려움이거나... 슬픔 같은. 자연히 묻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어쩌면 의심할 바 없이 당연하고 단단했던 불확실성의 집합으로 빨려들어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유년의 영웅이 그저 인간에 불과했음을, 때로는 어리석고 추잡하고 두려워하는, 언젠가 늙고 병들어 죽는 한 명의 사람. 정상과 광기, 어른과 아이, 안과 밖의 다름과 동시에 인간 존재의 근원적 동일성을 납득하게 되는, 아릿한 통증. 그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p.248 슐라이 요트 클럽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이 우리를 맞았다. 이때부터 아들을 배 밖으로 내동댕이치고 바람 강도 0 상태에서 조난당해 구조된 교수의 이야기가 슐레스비히 회원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그것도 모두 면허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p.457 "참, 이상하지. 나는 내가 왜 소위 정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소위 정상적이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항상 더 편안함을 느끼는지 자주 생각했어. (...) 다른 의사들한테 부끄러워. 병든 의사라는 건 왠지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 작은 도시의 모두가 그걸 알아. 누가 병든 의사한테 자기 자식을 맡기겠니?"
종장에 다다라 그가 마주친 장면에 어떤, 아릿한 통증을 감각한다. 크으으으으게. 크게, 말고, 돌아 유리창 너머 소년의 눈동자, 흐려졌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단지 그뿐인 순간에 비로소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동시에 묻고 싶어진다. 너무 긴 포옹과 통제 불능한 존재들과 바깥의 삶은 무엇이 달랐겠느냐고.
그리고, 어째서, 이렇게나 그리운걸까. 이 정신사납고 사랑스럽고 난감한 일화들로 낱낱이 꿰인 삶을 따라가노라면 존재를 이루는 기억과 세계의 토대란 과연 이런 의미겠거니, 싶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슬픔은 단단하고 작은 조각이 된다.
어떤 순간은 잊혀질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기이하고 곤란한 존재들의 형태로 마음에 남아 삶이 되고 그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이어지고. 그렇게 한때 이해할 수 없는 분노에 발작적으로 휩싸이던 소년은 유년의 일상이었던 불가해와 기나긴 포옹으로 하나가 된다. 찬란과 고통의 혼잡 한가운데서 독자는 그와 함께 조금 더 어른이 된다. 아침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p.479 내가 기억의 꾸러미를 다시 하나하나 풀어 꺼내놓을 때, 겉으로 확실해 보이는 과거에 대한 믿음을 접고 과거를 혼돈으로 받아들이고 형상화하고 꾸미고 기념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나의 죽은 이들이 모두 다시 살아나 친숙하면서도 내가 지금껏 인정한 것보다 더 낯설고 자율적인 존재가 될 때 비로소 나는 현재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야말로 미래는 그 영원한 약속을 이행하고 불확실해지고, 하나의 선이 하나의 면으로 넓어질 것이다.
*도서제공: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