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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성형수술'이라는 말에 거리며 웹사이트를 도배하는 '이상적인 외형'의 모델들을 떠올리지 않는 이가 드물 것이다. 돈만 주면 티도 안 나게 딴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며 이리저리 긋는 절개선이며 보형물을 늘어놓는 광고를 질리도록 보고 또 보는 일상에도 익숙할 것이다.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가끔가다 섬뜩하게까지 느껴질 지경인, 거의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성형외과에 대한 시선은 비대칭적으로 양분되어 있다. 한쪽은 다분히 미용의 영역으로서 가히 자연의 수준을 벗어난 경지를 추구하는 '사치', 반대편은 생성과 재건, 조립과 해체 등 지극히 첨예한 기술의 장으로.
p.157 그가 고향에 도착했을 때는 환영 행진도, 악단도 없었고 예전 약혼자뿐 아니라 많은 주민이 그의 달라진 얼굴에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예전 직장을 찾아갔을 때 사장은 손님들이 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으니 뒤쪽 구석에서 잡일이나 하라고 했다. 이런 푸대접에 분개한 그는 사직서를 내고 나왔다. 상처는 전쟁터에서만 입는 것이 아니었다.
p.328 미용 시술에 대한 관심이 역사상 가장 높아지긴 했지만 선천적 이상, 외상, 질병으로 달라진 몸을 복원하고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재건 수술은 여전히 이 분야의 주류로 남아 있다. (...) 추진력이 무엇이든 안면 이식이 일부 환자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고형 음식물을 먹고, 자력으로 호흡을 하며, 더 나아가 평생 처음으로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해줌으로써다.
개중 후자가 압도적으로 궁핍과 과로의 현장이라는 사실은 일단 제쳐두기로 하자. 저자는 대량살상무기 급진보의 실험대였던 세계대전에 활약한 의사들을 중심으로 성형이 왜 외과에 속하는지, 어쩌다 학문의 영역에까지 확장되었는지, 무엇보다도 그 필요성이 대두된 기원이 무엇이었는지를 병원 안팎의 생생한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놓는다.
그 가운데 어떤 '미용'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 앞서 제쳐둔 후자.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와 타인 모두에게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그를 위한 시도들은 말 그대로 생존의 영역에 닿아있었다. 사람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폭력에 맞닥뜨린 이를 '인간'으로 되돌리는 힘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로서의 삶을 위한 토대였다.
p.168 가면의 목표가 병사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긴 하지만, 가면 자체는 그 궁극적인 목적을 상기시키는 역할도 했다. 바로 가리는 것이다. 관람객을 위해 쓸 때가 그렇다.
p.324 길리스는 얼굴을 재건하는 일 외에도 제2차 세계 대전 때와 그 뒤에 부상병의 생식기 재건 수술도 했다. (...) 길리스는 새 환자에게 급성 요도밑 열림증이라는 허위 진단서를 써주었다. 요도 구멍이 잘못된 곳에 생기는 선천성 결함이었다. 진료실에 오는 딜런이 성전환자임을 숨겨서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길리스는 몇 년에 걸쳐 딜런에게 13차례 수술을 했다.
이런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에서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매달리는 마음은 뭔지. 그리고, 그렇게 살려낸 사람을 도로 끌어가 기어코 죽여버리는 높으신 분들과 명분이란 게 대체 무엇이었을지. 수없이 죽어나간 다음에야 하나둘씩 살릴 방도를 찾아낸다는 게 과연 인류사의 진리일지.
수술대 위의 존재가 더 아름다운 '용모'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 또한 여상해진 지금, 과연 누가 그 언젠가의 수술실 안팎에서 벌어지던 사투를 기억할까.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왔는지를. 역사의 끝, 현재에서 그 기원을 다시 묻는다.
p.102 의사들은 서둘러 부상병들을 깁고 꿰매면서도, 의도치 않게 그들이 회복되면 더 강력해질 전쟁 기계에 인력을 공급하고 있었 다. (...) 〈이 통탄할 결과 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점이 하나 있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전시에 의사들이 획득한 지식으로부터 인류가 혜택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격렬해질 시기에는 오로지 한 가지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다. 가능한 한 빨리 치료하여 최대한 많은 병사를 전선으로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p.256 제1차 세계 대전 때 이루어진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결정과 마찬가지로, 그 명령도 상부의 보이지 않는 손들을 통해 전달되었다. 클레어가 받은 명령은 새 환자들을 위해 침대를 비워 주고 전쟁 기계에 인간이라는 연료를 계속 공급하라는 것이었다. (...) 그리하여 클레어는 치료받다가 만, 멍들고 부은 상태로 다시 싸우러 갔다.
*도서제공: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