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왜곡의 역사 - 증보판
바트 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갈라파고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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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많이 '팔렸다'는 책, 성경. 통독이야 교인도 쉽지 않다 쳐도 존재 자체나 그것이 신자들에게 갖는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만들어진' 이래, 때마다 철마다 진리처럼 불려나오는 이 오래된 텍스트는 과연 교리처럼 완벽불변하는 내용으로 전해지고 있는 걸까?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익히 알려진 성서무오설이니 축자영감설이니, 거창한 수사를 빌지 않더라도 전능한 유일신의 '말씀'이 시대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달리 말해진다고, 쉽사리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외로 눙치기엔 너무 많다.

p.91 어떤 필사자가 실수로든 의도적으로든 한번 본문을 바꾸면 그 이문은 사본 속에 영원히 남게 된다. 다른 필사자가 수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이문을 담고 있는 사본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사본을 만드는 필사자는, 그 이문들도 저자가 말하고자 한 바라고 믿으며 그대로 베낀다. 그런데 그뿐일까? 이 필사자 역시 새로운 이문들을 만들기 마련이다. 또 이 사본을 베끼는 후대의 필사자는 앞선 두 필사자가 만들어낸 실수에 자신만의 실수를 더한다. 이문에 이문이 덧붙는 셈이다.

p.117 중세 필사자들은 그렇게 전문적인 방식으로 베껴 쓴 사본을 어디서 구했을까? 이들은 분명히 이전 단계의 사본을 필사했으며, 그 사본들 역시 그 이전 단계의 사본을 필사했다. 물론 그것은 또 그 이전 단계의 사본을 필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형태상 원본문에 가장 가까운 본문이라고 한다면,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후기의 표준화된 전문 필사본이 아니라 초기의 조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사본들일 것이다.


신앙의 세계에서 자란 저자가 실제로 마주한, 빈번하다고 하기에도 민망할만큼 무수한 자기모순과 충돌의 역사에 퍽 당황할만도 하다. 무류한 말씀입네 성령으로 받아적었네 해놓고선 이렇게까지 막 주먹구구로 뜯어고쳐도 되는 건가, 싶을 지경이었으니, 읽고 쓴다는 것, 이해한 내용을 전달하고 정리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변개'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종장에서 독자는 어떤 이해에 가닿게 된다. 필사에 '연루'된 이들 모두가 사람이라는 것. 믿음의 세계, 교단의 세력 확장에 결부되는 분열을 통제하기 위한 시도가 필연히 그 흔적을 남기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가장 탈속적이어야 한다고 믿어지는 영역이야말로 지극히 세속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p.148 어떤 경우에는 필사자들이 본문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독자의 오해를 막기 위해 본문을 변개하기도 했다. (...) 때때로 필사자들은 보다 신학적인 이유로 변개하기도 했다. '이단들'이 본문을 자의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하거나, 필사자가 이해한 의미를 더 분명하게 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p.230 2세기와 3세기만 해도 이렇듯 일치된 견해가 없었다. 합의된 정경과 교리가 없었으며, 매우 다양한 모습의 신학적 스펙트럼이 존재했다. 예수의 사도들이 썼다고 주장되는 다양한 문서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파가, 다양한 신학을 주장했다.


다시, 현재, 신이 죽고도 남은 이 시대에 왜 수천년 묵은 텍스트의 변천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가, 하면, 이 성스러운 '말씀'이 기천년을 이어져온 종교의 뿌리인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신의 실재와 전능에의 믿음과는 별개로, 그 이름을 빌어 말하고 행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시작이야 산꼭대기든 동산이었든 간에,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해져온 말. 필연히 오류와 의지의 산물일 믿음으로 이어지는 섭리에 대해 물을 책임은 인간에게 있었다. 언제나. 신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인간의 폭력이 또다시 세계를 좀먹는 지금, 묻고 싶다. 무엇을 믿겠습니까.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어떤 세계에서 대화할 책임이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p.278 요약하자면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는 여성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으며, 간혹 이런 논쟁은 신약성서의 전승 과정에서 본문에 유입되었다. 필사자들은 때때로 성서 본문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교회 내 여성의 (제한된) 역할에 더 부합하도록 본문을 변개하곤 했다.

p.324 본문을 읽으려면 그것을 마음속에서 다른 말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표현하기 위한 다른 말을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하고 (...) 살아있다는 것은 곧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온갖 요소들 즉 욕구, 갈망, 필요, 바람, 신념, 관점, 세계관, 의견, 기호, 혐오 등으로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본문을 변개하는 행위이다.


*도서제공: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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