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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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낯설지 않은 "**깡". SPA브랜드를 포함한 글로벌 저가 의류 산업의 범람으로 옷은 크게 품 들일 필요도 없이 흔하고 또 흔한 재화가 되었다. 수천 수억을 호가하는 명품 의류보다 싸게는 만 원도 안 되는 돈에 최신 유행을 누릴 수 있고, 더구나 SNS와 유튜브에서 보이는 필수템! 추천템! 온갖 템은 또 어찌나 많은지. 이왕 사는 김에 하나 더... 꽉 찬 옷장, 산더미같은 옷을 가질 수 있다.

패션은 더이상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저렴한 가격과 높아진 접근성, 빠르게 흘러가는 유행은 누구에게나 부담없는 접근을 선사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쉽게 사고, 빨리 질리며, 금세 쓸모 없어진다. 버리자니 영 찝찝한 당신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재활용. 필요한 사람이 쓰겠지. 버리는 것보단 덜 해롭겠지. 그 값싸고 손쉬운 위안이라니.

p.8 패스트패션이든 울트라 패스트패션이든, 이 유행의 뒤안길에 남는 건 그저 헌 옷뿐이다. 산 옷을 모두 입을 수 없고, 집에 쌓아둘 수도 없다. 그러니 헌 옷 수거함에 넣는다. 수거함에 옷을 넣을 때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좋은 곳에 기부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 반면, 쉽게 '버린다'는 마음을 갖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버려지는 옷은 어디로 가게 될까?

p.44 수출업계 관계자들 말을 들어보면, 재판매되는 의류는 전체 중고의류의 1퍼센트 안팎이다. (...) 수출되지 않고 국내에 남은 옷은 소각됐고, 재활용이나 재사용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출된 헌 옷들 또한 대부분은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타이 등 개발도상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재판매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매립지와 소각장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살 땐 물건이었으나 버릴 땐 쓰레기다. 문제는 쓰레기로 뒤덮인 땅에도 사람이 산다는 점이다. 그 쓰레기가 정말로 '사라질' 때까지 파묻히는 삶이 있다. 쓰레기가 버려지는 땅에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쓰레기로 먹고 사는 이들이 쓰레기가 아니라는 점, 그들도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부담없이 사라는 광고는 곧 '부담없이 버리라'는 메시지를 준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산뜻한 이미지와 공격적인 마케팅은 소비자의 책임을 한없이 가볍게 한다. 그렇게 버려진 옷들이 '재활용'되기 위해 속수무책으로 오염되는 땅과 물, 공기에 노출되는 삶 또한 버려지고, 태워지며, 표백되어 말끔한 로고 너머로 숨겨진다. 그 많은 헌 옷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라지는 걸까.

p.149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들이 수출하는 중고의류는 점포가 1400곳이나 되는 중고 시장에서도 모두 소화하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었다. (...) "(매립되거나 소각된 옷들은) 대부분 쓸 만한 거였거든요. (매립지로 들어온) 중고 모자를 100개까지 모아서 친구들 나눠주고, 버려진 바지도 좋은 것을 직원들에게 주기도 했어요. 그래도 롱끌르아에는 옷이 너무 많이 들어와요."

p.191 "몇 가지 쓸모 있는 옷 아래에는 손상되고 얼룩져 팔 수 없는 옷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바로 글로벌 패스트패션 산업에서 버려진 옷들입니다. (...) 이건 자선이 아닙니다. 낭비적인 식민주의입니다. 우리는 북반구의 패션 실수를 버리는 곳이 아닙니다."


세 저자가 추적한 옷들의 행방은 사뭇 충격적이나 놀랍지 않다. 만드는 사람 따로, 사는 곳 따로, 버려지는 나라 따로. '우리'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한국의 패션 시장 규모는 세계 5위 안에 든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사지로 몰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혹자는 일개 소비자가 무슨 힘이 있느냐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권리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세워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권리라 말할 수 없다(260)." 바다를 건너는 추적과 폭로의 끝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할 것이다. 증언의 응답은 책임이다. 무엇을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이제는 저렴하지도, 가볍지 않은 책무가 남았을 뿐.

p.176 "재활용하는 것처럼 하다가 수출해서 우리 국경 밖으로만 내보내면 그만인가? 오히려 그것이 전 지구적으로 볼 때 비환경적이며 폐기물 기반 열회수 관련 환경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과거의 비위생적 소각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기억으로 금기시되고 있는 폐기물 기반 에너지회수를 넓은 의미의 재활용으로 인정하고, 기술개발과 적용을 고려할 때라고 본다."

p.259 새하얀 천 뒤에서, 누군가의 삶도 지워져 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왜 이런 열악한 환경의 한가운데에는 늘 사회적 약자가 서 있는 걸까. 우리가 버린 옷의 무게를 그들이 대신 짊어진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마음을 짓눌렀다. 그 순간 '환경문제'라는 말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았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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