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와인드 : 하비스트 캠프의 도망자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1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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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연령의 인간은 '보호자'의 의사에 따라 그 신체 부속 일체가 "처분될" 수 있다. 분해되어 적출된 장기 및 전신 조직은 100% '활용'되어야 한다. 일단 태어난 이상 쓸모 없는 '인간'은 없다. 더 이상 자녀를 양육하고 싶지 않은 부모도, 자원이 부족한 시설도 걱정할 일이 없다.

일단 "본보기"로 보내면,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두가 잘 알지 않는가. 손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원활한 진행을 위해 모든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사는 일절 고려되지 않으며, 결정은 번복될 수 없다.

p.41 「매일 원치 않는 아기들이 태어나고 있거든. 그 아기들 모두가 보금자리를 찾는 건 아니야.」 「우리한테는 그런 아이들을 받아 줄 의무가 있단다.」 「새로운 피보호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해.」 「그 말은, 10대 피보호자 수를 10퍼센트 줄여야 한다는 뜻이야.」 「이해하지?」

p.129 그가 실제로 하는 말은 이것이다. 제발 인간이 되어 주세요. 너무도 많은 규칙과 통제에 둘러싸여 살다 보면 우리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녀는 얼마나 자주 연민이 편의에 자리를 내주는지 안다. 그런 경우를 자주 본다.


이렇게, 가치 없는 생명을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하는 제도를 '언와인드'라고 한다. 아름답지 않은가? 공리주의에 대한 어설프고 확고한 오독과 지극히 평범한 이기주의가 환상적으로 뒤섞인 미래라고 해도 좋겠다. 다만, 지극히 현실적인. 지금도, 어딘가에선, 충분히.

혹자는 장담할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납득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있어봤자 짐만 되는 '몸' 하나만 제거하면 수십수백의 '사람'이 새 것 같은 몸으로 살 수 있는데? 손, 발, 피부, 장기, 안구, 혈액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자원 순환인데도?

p.251 부모는 자신을 사랑했을까? 어렸을 때는 확실히 사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됐다고 해서 자신이 영혼을 도둑맞은 건 아니었다… 때로는 부모가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영혼을 도둑맞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적어도 부모가 언와인드 의뢰서에 서명한 순간 코너의 영혼 일부는 죽어버렸다.

p.321 「물론, 더 많은 사람이 장기를 기증했다면 언와인드는 절대 생기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것을 지키고 싶어 하지. 죽은 뒤에도 말이야. 윤리가 탐욕에 짓밟히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언와인드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방치했다.」


당연히 두 말 할 것 없이 끔찍한 이야기다. 사람의 자격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도, 인간이 인간의 지위를 갖기 위해 타인을 비인간화해야만 하는 것도, 그것이 사회와 제도의 합의 아래 이루어졌다는 것도.

개중 가장 끔찍한 점은, 누군가에겐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제법 매력적이고 합리적인 미래로 보여질 게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이 이야기는 더더욱 단순한 절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미 어딘가에서는 현실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이 이야기의 어디에서든 엄청난 상상을 동원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지옥은 이미 도래해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지옥.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박탈할 권리를 가질 때, 혹은 그렇게 믿기로 "합의할" 때, 그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어떤 곳이 되는가. 모든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여되는 존엄이 그 자신의 존재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합의"가 있는 사회는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누군가가 덜 사람이거나, 더 사람인 사회는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p.473 「네 행동에 책임이 있을지도 몰라. (...) 하지만 네가 진짜 세상을 살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내 잘못이지. 너를 십일조로 키운 모두의 잘못이고. 우리는 네 피에 독극물을 주입한 사람들만큼이나 죄인이야.」


사람의 일부가 사람의 지위를 박탈당할 수 있는 사회에서 누가 더 사람이고, 더 안전하며, 더 존엄하고 귀중한 존재인가. 존엄이 한정된 재화인 사회, 존엄성을 경쟁해야 하는 사회, 존엄에 "자격"과 "증명"이 필요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존엄하지 않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모래산 위의 깃발을 뺏는 게임과도 같아 조금씩 덜어내고 가르다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실체도 토대도 없이, 오로지 끝을 위한 끝으로 향하는 전력질주처럼.

짧은 분량의 챕터와 여러 캐릭터의 시점을 오가는 서술에도 난잡한 느낌 없이 연결하는 솜씨가 좋다. 되돌릴 길이 요원한 이 절망에서 "제거당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투쟁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총 네 권의 대여정의 마지막까지 동력을 잃지 않고 쭉 밀고 나아가기를 기대해봐도 좋겠다.

p.421 롤런드는 이런 일을 당해도 싼 인간이 아니다. 그는 많은 일을 했다. 전부 좋은 일이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해도 싼 인간은 아니다. 게다가 그는 결국 신부를 만나지 못했다.

p.481 「난 우리가 언와인드될 때 우리 정신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 코너가 말한다. 「우리 정신이 언제 시작되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건 알아.」 그는 모두가 듣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잠시 말을 멈춘다. 「우리에겐 우리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어!」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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