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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평점 :
"우리는 불평등의 케이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 '불평등의 케이지'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사회다. 그것도 지금 당장의.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이미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양상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견해에 따라 그 원인과 기원만 모아도 역사가 될 지경이다.
그러나, 돌아가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 나아가 현대-도시화된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 불평등이 문제의 시발점이자 문제 자체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시 범위를 좁혀, 한국 사회의 세대, 계층, 집단 간 불평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어떻게 생존을 도모하고, 점점 해체되고 분열되어가는 사회의 미래는 과연 어디로 향하는가?
p.15 탈출을 꿈꿔보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어 이렇게 살고 있다고? 탈출을 시도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언젠가는 탈출을 감행할 것이라고? (...) 어떻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나도 모른다). 대신, 왜 우리가 탈출을 꿈꾸는지, 왜 꿈꾸면서 이 체제에 그대로 머무는지, 이 모순과 불일치의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p.23 이 책은 ‘탈출’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그 탈출을 좌절시키는 기제, 즉 ‘충성’과 ‘순응’을 야기하는 기제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탈출의 옵션이 중요한 만큼, 탈출을 좌절시키는 옵션 또한 중요하다. 이 옵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해야만, 탈출이 왜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이른바 "성공 신화"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가? 실력과 업적에 합당한 보상이 있는가? 격차는 능력과 노력으로 메워질 수 있는가? 상향이동이 불가한, 자본-계급이 생득적 권력의 지위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또다른 "기회의 땅"을 향해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이 절망과 좌절에서 탈출할 가능성을 소거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 사회에 가두는가?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지난 연구에 이어 이 '소셜 케이지'의 기원과 현재를 벼농사 체제에서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 문화에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통해 분석한다.
p.80 위로 올라가는 통로가 닫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꼭 자리가 아니어도, 소득이나 자산이 늘어날 여지가 봉쇄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 이동성이 저하된 사회에서 경기가 나빠지고 불평등이 증대되면, 중하층 계급은 대안적인 정치 세력을 지지하거나 스스로를 조직화하여 혁명을 꿈꿀 수도 있다. 하지만 후자의 옵션(혁명)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선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p.115 개인의 입장에서 엑시트 옵션이 적은 사회와 많은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사회인가? 엑시트 옵션이 많은 사회가 개인이 살아가기에 더 좋은 사회다. 그 사회는 인간의 정주 욕구와 이주 욕구 중, 후자를 극대화하는 사회다. 물론 정주 욕구를 극대화하는 사회와 조직도 계속 생존할 것이다. 인간은 안정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철밥통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책머리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생존기술"에 대한 지침서가 아니다. "나라도 살아남아보자" 식의 로드맵도 아니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어떤 실용적인 지침이나 성공으로의 열쇠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느껴질만큼 냉정하고 현실적인 길을 모색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어떤 이상으로의 투쟁과도 거리가 멀다.
혹자는 이에 절망할 것이다. 어쩌면 분노할 수도 있겠다. 일면 동의한다. 누군가에겐 공허한 이상이 당장의 생계에 맞닿아있는 탓에 역설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내던지고 온몸으로 나선 이들이 있다. 학문이 현실과 유리되는 현장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현장 바깥으로 나와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 글은 저자가 그 점을 잘 알고 본업에 충실하려 했다는 가정 하의 감상이다.
p.23 소셜 케이지 혹은 소셜 케이징은 '탈출을 좌절시키는 기제'다. 한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나 집단, 조직을 탈출하고자 할 때, 이를 좌절시키거나 단념시키는 '심리적-제도적-환경적 장벽'이 소셜 케이지다. 다시 말해서 소셜 케이지는 내가 현재의 사회적 관계와 구조를 이탈하지 않고 이 자리에 머물도록 만드는 생태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인센티브 메커니즘과 제도의 총체다.
p.117 결국 한국의 상층 노동시장은 좀 거칠게 이야기하면 노동조합, 연공제, 학별로 버텨온 시스템이다. (...) 전작에서 이 제도들의 뼈대 역할을 하는 연공제가 벼농사 체제의 유산이라고 주장했다. 벼농사 체제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벼농사 체제의 연공/위계 문화와 강력한 친화성(선택적 친화성)이 있는 임금체계라는 뜻이다.
한국 사회의 현재에서 탈출을 어렵게 하는 소셜 케이지는 학벌주의, 제한된 노동시장, 연공제가 복합적으로 뒤엉킨 합작품 내지는 오래된 유산의 역기능적 현현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실패가 곧 재기불가능한 추락으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노동자는 어떻게 자본권력에 맞서 자유도를 높일 수 있을까. 노동자가 또다른 노동자, 즉, 외부사회로부터 유입된 "노동력"과 약자 간의 출혈경쟁을 반복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모든 것을 지금까지의 패러다임, 케이징을 벗어나 사고하는 일은 과연 요원하기만 할까, 그 점이 궁금할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모방한 AI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노동의 가치는 임금으로 저당잡히며, 인생의 한 지점이 삶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는 단순히 "취업시장"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에서. 채 답하지 못한 질문으로 3부작의 끝을 맺는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결국 많은 일이 그러하듯, 남은 것은 미래의 일이다. 독자는 물어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살 작정인가?
p.299 MAGA를 외치며 중하층 백인을 결집하는 트럼프의 정치도 이러한 문화주의 우파를 자양분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이민 이슈는 좌파정당뿐만 아니라, 우파정당 내부에도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균열은 미국과 유럽에서 국제주의와 세계화를 추진해온 전통 우파가 사그라들고, 신 극우파가 출현하여 우파정당을 장악하게 된 구조적 배경이기도 하다.
*도서제공: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