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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평점 :
알지 못하는 이를 신뢰할 수 있는가? 낯선 타인과 동석해 하루를 나눌 수 있는가? 누구도 진심으로 신뢰하지 않는 동시에 타인의 일면과 순간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가? 비정형적이고 강제되지 않는 집단 내의 호혜를 기대하고 또 그 연쇄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가? 호의가 배반으로 돌아올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는 성립 가능한 것인가?
이 모든 질문에 망설임 없는 긍정은 고사하고, 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조차 허황된 꿈, 어리석은 이상론으로 치부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사회에 살고 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실현을 경험한 적조차 없다. 불가지 혹은 이해-전은 곧 불신으로 직결되고, 정보우위가 곧 생명인 세계에서 타인은 언제나 암묵적인 경쟁대상이므로, 제거와 압도를 목표해야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p.6 이들은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열린 커먼즈를 구축한다. (...) 뼛속까지 장사꾼인 이들이 타자를 돕는 이유는, 무엇보다 "내가 너를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도운 당사자에게 보답을 기대하는 대신,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더 넓은 세계로 이전함으로써 세계 자체를, 커먼즈로 만드는 셈이다.
p.92 카라마와 동료들은 (...) '지금'의 상황에 한정하는 형대로만 타자를 평가한다. 언뜻 냉정하게도 보이지만 이는 일종의 관용과도 표리일체다. 즉, '페르소나'와 그 뒷면에는 '민낯'이 있는데 '민낯'을 모르니까 신뢰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일관된 불변의 자기 같은 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유일한 진리가 아니다. 그저 믿어진 규칙, 그렇다고 선언되기 때문에 믿어지는, 이외의 가능성을 완전히 소거했다고 믿기 때문에 유일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종의 방향 혹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공고하게 구축된 불신과 경계의 토대에서 호의의 순환경제는 요원하거나 공허할 뿐이다. 그러나 '헐렁한 이상론'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곳이 있다.
비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상인의 도시. 돈과 물건과 사람이 쏟아지듯 밀려오고 스쳐지나가는 곳, 홍콩, 그 중에서도 가히 "국제적인 비공식 경제의 거점"으로 알려진 청킹맨션. 천차만별의 인간군상이 득실거리는 곳, 짝퉁과 내일을 장담하지 않는 이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에 바로 그 가능성이 있다. 그를 향한 여정의 안내를 맡은 것은 역시나 도통 못 미더운 동시에 모두에게 신뢰받는 자칭 타칭 '보스' 카리마다.
p.157 TRUST가 공식 중고 거래/경매 사이트와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TRUST가 '신용할 수 있는 브로커/고객'과 '신용할 수 없는 브로커/고객'을 점차 가려내는 플랫폼이 아니라는 점이다. TRUST에는 변함없이 누구나 신용할 수 있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세계·인간관이 유지되고 있고, 거래 실적이나 자본 규모, 과거의 실패나 배신과도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돌아간다.
p.173 비즈니스에 관한 이기적인 관심과 타자에 대한 이타적인 행동을 분간하기 어렵게 맺어져 있는 구조가 구축되면, 누군가가 내게 베푼 친절에 직접 갚아주지 못하더라도 이게 그 사람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으며 (...) 즉, 여기에도 '부담'을 애매하게 만들며 자발적인 도움을 촉진함으로써 '분명 누군가가 도와준다'라는, 국경을 초월한 거대한 안전망을 형성하는 장치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홍콩과 아프리카를 잇는 가품과 모조, 도박과 도전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공식 경제에 참여하는 이들과 생활을 공유하며 그들의 독특한 호수관계에 주목한다. 모두가 입을 모아 누구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낯선 이에게 의탁하고, 호의를 베풀며, 그것이 배반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각자를 하나로 묶는 것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처지와 불안정한 연결 뿐이다.
서로의 전체와 근원을 파악할 수 없는 유동적 관계에서 이 완벽한 불신과 절대적 신뢰의 기묘한 공존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담보 없는 신뢰, 잠재적 폭력을 예비하지 않는 우호적 관계 구축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숱하게 증명된 호의와 선의의 순환이 전지구적, 전사회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필요는 무엇이란 말인가?
p.249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다. 돈을 버는 건 좋은 일이다, 우리는 어떤 기회도 자신의 이익으로 바꿀 수 있다, 라고 누구나가 공언하기 때문에 가볍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 자본주의경제에 대항하는 지점으로 증여경제 또는 분배의 구조를 구상하는 게 아니라, 증여경제나 분배경제가 잠재적으로 내포한 부정적인 측면이 자본주의경제에 의해 활용될 수 있는 힌트가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p.282 돈벌이라는 목적은 이들을 순식간에 연결하는 동시에 연결을 적절히 끊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 동료를 만들고 증여를 순환시키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벌이를 동료나 증여를 순환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돈벌이야말로 사회를 만드는 놀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전반적 금융, 상업 시스템은 불신에 기반한다. 각자도생을 전제하고 대가를 선지불하지 않으면 신뢰도 없다. 시작이 없으니 성취도 없다. 조력이 없으니 회복도 없다. 저자는 청킹맨션의 사례가 정답이라 말하지 않는다. 호수 시스템 유지와 구축에 '낭비되는' 유무형적 자원에 대한 비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특수성'을 보편신념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담보가 신뢰에 앞서는 사회에서 순간의 실패가 회복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은 곧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담보를 갈구하는 길로 이어지기 떄문일지 모르기에. 느슨한 연대, 무관심의 관용, 그렇게 펼쳐질 가능성의 세계.
p.259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 매 순간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셈해서 딱 맞아 떨어지는지 신경 쓰인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환한다.
p.292 이들이 효율성과 편의성을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 우위에 두거나 신뢰의 등급화를 목표로 삼는 것과는 다른 회로로 실현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한 방법론으로 민족지를 통해 세련된 사회경제 시스템의 이론과는 다른 인간 사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가 반드시 '위험한 타자'나 '이질적인 타자'를 배제하지 않아도 공유할 수 있음을 사고하는 한 걸음이 된다면 기쁠 것이다.
*도서제공: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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