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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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세대, 적어도 나의 부모 이상 세대에게 미국은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다. 넘쳐흐르는 자본, 그에 걸맞는 무한한 일자리, 타고난 신분과 죽어가는 땅에서 벗어나 개인의 노력으로 눈부신 성취를 거둘 수 있는 곳. 황금향이자 이상낙원이고, 자유와 평등, 공정한 기회의 현신과도 같은 곳. 그러므로 미국에 정착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일종의 신분상승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아니. 이전에도 수없이 알아차렸으나 이제야 이해받고 있음에 가까울 것이다. "신세계" 침략에서 시작한 그들의 역사는 공고한 성이 되어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창백한 피부색처럼 빛나는 금의 땅. 단 한 번도 "순혈"인 적이 없었던 그들의 제국. 영원한 이민자들의 땅. 배척의 낙원.

p.53 아버지는 늘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불렀다. 그게 아버지만의 독창적인 말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누구를 위한 기회? 아버지를 위한 기회? 아버지가 소망하는 것이 될 기회?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사람들과 아버지가 진정한 동격일 경우로 국한된다.

p.149 만일 이 모든 이야기가 피해망상처럼 들리는 독자가 있다면 그의 행운에 축하를 보내고 싶다. 분명코 그런 독자들은 공화국의 일원이기보다 그 적으로 인식될까 봐 — 그리고 그렇게 취급될까 봐 — 걱정에 시달리는 일상을 보낸 적이 없었을 테니까.


앞서 말했듯, 미국은 여전히 이민자의 땅이다. 인종의 용광로니 글로벌이니 어떤 수사를 붙여도 '이민자'는 이방인일 뿐이라는 뜻이다. 잠시 머무르는 이, "우리" 아닌 자들. 스스로에게조차. 이방인은 그저 낯선 자가 아니다. 영주하지 않는 자다.

그의 신원과 기원, 과거와 현재가 어떠하든 그는 정착하는 자가 아니다. 잠시 머무르는 이유가 해소되면 떠나는 이, 집단에의 충성과 믿음을 소유할 자격을 얻지 못하는 자다. 이방인은 "우리"가 아닌 탓에 우리 이하의 지위를 지닌다. 그들의 자리는 불신과 대립의 가능성으로 얻어진다. 그것을 거부하는 자는 이방인으로도 남을 수 없다.

p.297 나는 나 자신을 닮은 사람들이 내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걸 알았기에 나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임을 알았다. 그들을 닮은 거울 속 나의 모습은 내가 늘 잊고자 하는 나의 진실, 내 외모를 마주할 때를 제외하곤 알 수 없는 진실(내가 〈아웃사이더〉라는 의식이 없음에도 오직 그렇게만 보일 거라는)을 상기시키는(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하나의 암시였다.

p.493 늘 자신을 미국인으로 생각하고 싶어했었지만 사실 그 상태를 열망했던 것일 뿐이었다고. 되돌아 보니 자신은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하나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 역할이 진짜인 줄 알고 있었다고. 나쁠 건 없었고 그저 그 역할을 하는 것에 지쳤을 뿐이라고.


이방인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성원으로 생존하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려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성원 개개인으로부터 무엇을 착취하는가. 그것은 무엇으로 생명을 얻는가. 놀랍지도 않게, 돈이다. 기본적인 삶, 탄생부터 죽음까지, 건강과 교육, 존엄까지도.

미국의 신은, 뿌리는 건국의 여러 아버지도, 하늘에 계신 유일한 아버지도 아니다. "미국인들"이 기함하는 샤하다에 무엇보다도 미국이 목을 맨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자본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달러는 신의 사도이다. 아, 엉클 샘의 영광이여.

p.363 이제 우리는 시민이기 전에 그 무엇보다도 소비자였으며, 구매가 우리의 특권적 행위였다. 이제 더 이상 제우스나 여호와 같은 의인화된 추상적 관념의 지배를 받지 않고 경제라는 물질적 존재를 섬기게 되었다. 우리는 그 존재의 변덕을 두려워하고, 그 존재가 베푸는 시혜에 감사하고, 의식과도 같은 구매 행위로 그 존재의 가상의 안녕에 이바지했다.

p.425 「사람들이 집도 마당도 돌보지를 않아요. 그들 자신도 돌보지 않고. 아무것도 돌보지 않는 거죠.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가난해진 건 벌써 30년이나 됐고, 이제 의욕 자체를 잃은 거죠. 그걸 잃게 되면?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거죠.」


WASP의 제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있던 적도 없던 영광을 찾아오겠다는 헛소리는 현실의 위협이 되었다. 설마, 했던 재선까지 이뤄지며. 그 사회에서 여전히 이방인으로 자리하는 이들은 어떻게 구성되고, 이해되는가. 자서전인지 허구인지 모를 이 이야기는 음악적 형식이라는 외피를 두름으로서 다시 한번 독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일대기, 일생, 개인적인 동시에 지극히 익숙한 이 되풀이, 론도는 그와 다름없이 태어나 자란 곳을, 그저 우리-아님으로 "생각된다는" 이유로, 입 닫고 살든지 아니면 떠나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던지는 '순진함' 앞에서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찬양의 노래가 되지 않을 것이다.

p.12 미국은 식민지로 시작했고 식민지로 남아 있다. 즉, 여전히 약탈이라는 단어로 정의되며, 부가 우선이고 시민의 질서는 뒷전인 곳이다. 약탈은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조국의 이익을 위해 이어져 왔으며, 여기서 조국은 더 이상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미국적 자아이다.

p.507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요. 난 그저, 여기서 사는 게 그렇게 힘들다면 왜 여기서 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 「내가 여기 있는 건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기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좋든 싫든 — 늘 조금씩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죠— 나는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살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미국은 내 고향입니다.」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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