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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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오래된 고집이 있다. 사실 고집이라기보단 호되게 데인 흔적에 가까운데, 일단 이 작가 이름만 들었다 하면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이 『고백』인데다 그 뒤로 『야행관람차』며 『경우』, 『모성』 등등을 줄줄이 읽어댔기 때문에 이번엔 대체 누굴 피말려 죽일지... 도통 안심하지 못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는 뜻이다.

뼈아픈 불신과 살떨리는 인간불신을 안겨준 바로 그 작가가 하필이면 등산을 주제로 돌아온 탓에 '힐링 드라마'라는 소개에도 산에서 누구 하나 죽어나가는 게 아닌지 바들바들 떨며 읽어야 했다. 그러니 불안이 무색하게, 아니, 꼭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게 그저 따뜻한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지 않아 감동에 더해 역시, 하는 만족에 푹 잠긴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p.33 남편이 왜 고류다케를 제일 좋아했을지 가르쳐주세요. 마미코 씨는 즉답했어요. "고류다케 위에는 밤하늘이 아니라 우주가 펼쳐져 있어요." 우주. 우리는 둘이 동시에 사진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은하수도 이렇게 뚜렷하잖아요."

p.69 "쇠사슬이 있는 곳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걸을 수 있어." 그러니까 거기에 익숙해져버리면 아까 비슷한 곳에는 쇠사슬이 있었는데 이쪽에는 없다는 데에서 망설임이 생기고 무서워져 있으면 마련해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없으면 스스로 안전한 경로를 생각하면서 나아가라, 너라면 할 수 있다! 이 말이지. 쇠사슬에 의지하지 않는 인생을 나는 보내왔을 터다. 설사 산이 거기에 응답해주지 않아도.


네 편의 이야기는 산과 '산을 찾은 여자들'을 매개로 이어진다. 산이라는 특수한 공간, 평지를 걷는 일상과 다르게 땅이면서도 고립된 곳, 하늘에 가장 가까운,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되게 만드는 곳이다. 산에서는 누구나 겸허해지고, 솔직해진다. 자연을 굴복시키려는, 작아지기를 거부하는 오만은 산에게 허락받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래서일까. 산을 찾은 등장인물들은 들어서기 전의 각오랄지, 허세랄지. 단단한 벽을 허물고 저마다의 진심을 마주하게 된다.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무엇을 움켜쥐고 두려워하며 애써왔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p.149 인형이 좋다. 하늘하늘한 치마가 좋다. 귀여운 리본이 좋다. 그게 여성임을 보여주는 잣대라면 나는 완전히 여자다. 외견과 내면의 성은 일치한다. 하지만 왜 인형이나 치마, 리본이 어울리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전부 갖춘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면 눈살을 찌푸릴까? 차라리 인형을 좋아하는 인간이 자동차를 좋아하는 인간을 좋아할 수 있는 원리를 가르쳐주면 좋겠다.

p.312 산에서도 힘들 때일수록 쉬는 게 두려웠어. 더는 못 움직이게 되는 것 아닐까 하고. 앉는 게 두려웠어. (...) 제대로 쉬어야 그 뒤에 더 잘 걸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산에서는 알고 있던 걸 일상생활에는 적용하지 못했을까? 그건 분명 여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나만 이물질이었어.


땅 아닌 땅, 고립된 공간으로서의 산은 오르는 이들로 하여금 해묵은 속내를 털어놓게 한다. 상처와 두려움을 길 위에 내려놓고 가야 할 길을 가게 한다. '노을 진 산정'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내일일까. 지나간 오늘이었을까.

어쩌면 네 편의 이야기의 그들은 어느 순간엔가 서로를 스쳐지나갔을지 모른다. 삶의 많은 순간처럼, 낯선 이와 작은 기억에 힘을 얻으며, 격려하고 또 다독이며. 온갖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는 작가의 감상은 수없이 마주치고 안부를 기원했을 산행의 기억일지 모른다.

p.99 산에 오르면 그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는 줄곧 함께 있을 수 있다. 태양이 상공에 있는 동안에는 손을 맞잡고 암릉을 넘고 꽃을 즐긴다. 밤에는 랜턴 불빛 아래 한 손에 따뜻한 와인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서로의 심장 소리를 자장가 삼아 기대어 잠든다.

p.308 건물이 무너졌을 뿐이라면 또 세우면 돼. 하지만 그 땅이, 마을 전체가 안전한 생활을 보내지 못하는 장소가 돼버리면, 거기서 재생하는 건 불가능해. 적어도 반년, 일 년 같은 시간으로는.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릴 수도 없어. 오늘을, 내일을 살아가야만 하고 아이들도 먹여 살려야 하니까.


"아무도 다치지 않고 선의에 기대는 이야기"라는 소개는 반만 맞았다. 네 편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제각기 삶에 할퀴어진 상처를 끌어안고 있다. 시간이, 서로가 의도치 않게 상처입히고 무너지게 했다. 그러나 순간 미워할지언정 증오하지는 않는다. 아파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믿음과 선의가 서로를 일으켜세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듯이.

이제야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는다. 바짝 붙잡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만날 또다른 누군가가 머리 위엔 하늘, 단지 그것뿐인 파란 하늘이 펼쳐진 꼭대기에서 여기는 종착점이 아니구나. 흙과 바위를 디디며 올라온 산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까지가 산의 시간이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산에 가고 싶다.

p.218 나쓰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자기 마음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말을 찾기 위해. 나는 이제 충분한데. 그거면 됐다고, 그 말을 듣고 싶었다고 말해버리고 싶다. "그런 일을 하고 싶은 게 아니야. 나 자신이 사람의 생명에 다가설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

p.292 산에 이끈 건 나였는데, 언젠가부터 네가 앞장서 걸으며 시야에 들어오는 산 이름을 확인하고는 다음에는 저기로 가자, 여기로 가자며 다음 산으로 인도해줬지. 네 편지가 정상에 도착한 데에서 끝나는 것도 수긍이 가. 네게 산정은 목적지이자 다음 목표를 향한 출발점이기도 했던 거 아닐까?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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