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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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어져온 물음이 있다. 필경, 개중 하나는 "저 인간은 뭐가 문제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왜 이 모양인가"일 것이다. 일생일대의 중대사를 앞두고 저자는 이 오래된 의문에 맞닥뜨린다. "나 왜 친구 없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쟤들"도 없다. 많은 '남자'들이 졸업 또는 은퇴와 동시에 사회적으로 고립되어버린다.

깊은 이야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한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남자에게 허락된" 감정은 지극히 적다. 어째서일까? 전형적 형태의 가부장제는 옛말이 되었고, '유해한 남성성'을 비판하는 시각이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도 낯설지 않게된 지 오래인데도.

p.55 많은 연구결과가 남성은 '독립적'인 자기 개념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할 가능성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남성은 자신과 타인을 구분해 자신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묘사한다. 그리고 남성은 성취지향적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인간관계를 부수적 단역으로 언급한다. 반대로 여성은 '상호의존적' 자기 개념을 가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 여성은 파트너, 어머니, 자녀, 친구 등 타인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묘사한다.

p.125 남성성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감정표현 규칙'이라는 개념을 자주 언급한다. 남성은 감정을 표현하도록 허가를 받기는 하지만, 일부 특정한 감정만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만 표현하도록 제약받는다는 뜻이다.


남자들은 다 그래, 남자는 그런 거 싫어해, 따위의 말들로 남성을 정말 '외롭게' 만드는 것은 그들을 배척하는 비-남성 집단도, 마초이즘의 공고함을 부정하는 사회 흐름도, '엄마만 따르는 자식들'도 아닌, 오직 남성성 규범이다. 남성성으로 무장한, '남장된 남성'이 남성을 외톨이로 만든다. 남성다움이 남성을 고립시킨다. 맨박스는 "남자는 이래야 해"와 "남자는 이러면 안 돼"라는 이중 명령으로 남성들을 불쌍하고 외로운 약자와 감정배제적인 지배계급 사이를 마구잡이로 오가게 한다.

본질은, 남성성 중심 사회는 남성으로 묶이는 이들에게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소통하지도 공감하지도 않는 일방적 관계맺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남성은 소통과 공감, 유대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차단당하는 줄도 모르는 채 고립되기 마련이다.

p.126 남자들이 관계에서 권력을 쥐는 방법 중 하나는 침묵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무관심으로 가장하여 애정쟁취 과정에서 상대방이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만듦으로써,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나에 대한 요구사항을 만들고 활동을 계획하고 사람을 초대하고 일을 진행하도록 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 (...) "우리는 내가 혼자서도 충분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유지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 어떤 이가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존재라고 해도, 우리는 이 점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행동한다."

p.154 남자들의 충성심, 관대함, 배려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위기만 대비하려 사는 게 아니다. 남성우정은 단순히 위기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인생 어딘가에서 상처를 입었을 때를 대비해 우정이 대기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우정은 그 이전에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쯤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왜 남성들은 고립되는가. 왜 심지어 어떤 남성은, 가족에서도 고립되는가, 왜 어느 모임에서든 배우자 옆에 찰싹 붙어 의지하지 않고는 소셜 커뮤니티든, 친구든, 심지어 가족 간에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가. 왜 커뮤니티를 형성하거나 개인적으로 유의미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고립된 존재가 되어버리는가.

"남녀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유성애 이성애자 중심적인 연애정상성 또한 다양한 우정과 관계 형성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데 한몫을 차지한다. 서열싸움과 각종 규범, 우월성이라는 허울로 감춰진 배척과 단절로 우정과 유대관계를 거부하는 이 외로움의 도돌이표에 탈출구는 없는 걸까?

p.154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신적 부담'을 꺼리는 남성들의 태도가 남성 외로움 통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다른 측면에서의 분석도 있다. 남성의 고립이 여성에게 더 많은 감정노동을 야기한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남친이나 남편과 동거하며 그들을 돌보는 심리치료사 같은 역할을 겸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들에게는 함께 사는 여자 외에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충족시켜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p.306 여러 관계에서 느끼는 욕망들의 파장이 다양하지만, 우리 문화에는 이를 분리할 수 있는 언어적 자원이 없다. 그래서 관계 안에 수반되는 모든 복잡한 가능성, 즉 '매력'이 가진 광범위한 느낌을 단 한가지 차원, 곧 성적인 차원으로 좁혀버린다.


기실 "고립된 남성" 문제는 단순히 그들의 감정뿐 아니라, 극단화되는 마초이즘과 폭력적 집단행동의 결부로 돌진해가는 남성들에게, 또, 그와 함께 살아가야 할 사회 성원 모두가 연결되어 있기에 시급성을 갖는다. 좋든 싫든 같은 사회, 시간,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은 일생일대의 존재론적 난관에 봉착한 저자의 "웃픈" 자아성찰기이다. 동시에, 개인의 일화에 그칠 수 없는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과시와 경쟁, 조롱과 모멸로 시작해 압도적 자살과 고독사로 마무리되는" 남성들, 그와 함께 살아가야 할 남성-아님들의 미래는 과연, 어디로 향해야 할까. 한숨어린 물음에 더해 쓴웃음이 남는다.

p.331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숨기 위해서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현실세계의 관계로 되돌아온다. 코로나 봉쇄는 사람들이 실재하는 세계의 대면사교로부터 완전히 멀어지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대부분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기술의 도움으로 대면사교를 배제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남성이다.

p.418 "내가 했던 것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였어. 외롭다고 고백하는 거. 나는 친구들과의 우정에 대해 내가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이에 대해 슬퍼하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했어." (...) 남성들 간의 대화에서 마지막까지 금기로 남은 주제는 사교생활에 있어서의 건강함이 아닐까?


*도서제공: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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