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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코리아
정주식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2월
평점 :
지면과 매체를 막론하고, 시사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 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것도 젊은 세대라면 더더욱. 반쯤은 농담으로 자고 일어나면 뒤집어지는 시국이라고, 하루라도 드잡이 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말하지만, 따지고보면 반도 후한 셈이다. 정신없이 들썩거리고 고성과 협잡이 오가지 않는 사회라고 하면 너무한 감상일까.
이 징글징글하게 사분오열 갈등이 만연한 한국사회를 설명할 단어를 딱 하나 꼽으라면, 무엇보다도 "다이내믹"일 것이다.. 뭐라고 콕 집어 정의할 수 없는, 정말이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사회인 탓이다. 어째서일까? 케케묵은 순혈민족주의와 무한경쟁이 안팎으로 성원을 들볶는 이 사회는, 왜 이 지경에서 벗어나질 못할까?
p.5 사람들은 불안을 밀어내기 위해 격앙되고, 불확실성을 견딜 수 없어 섣부른 신념에 빠진다. 혼란기에 필요한 것은 매끈한 이상이 아니라, 혼란을 마주하고 견디는 능력이다. 그러려면 무질서한 세계 속에서 요동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줄 나만의 관점이 필요하다.
p.28 (박권일) 뉴스의 가치를 못 느끼고 뉴스 소비를 왜 해야 되는지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는 이런 공중이 사라졌거나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에요. 공적인 담론을 얘기하는 것에서 가치를 더 이상 찾지 못 하는 거예요.
현재 K-컨텐츠의 흐름은 온갖 관찰예능과 컨텐츠로 가득하나 역설적으로 타인에게 극도로 무심하다. 그들을 타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나의 연장이자 소비대상이다. 화면 바깥의 숙고와 성찰이 결여되어있다. 너, 우리, 소비자와 상품 외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한다. 이를 온전히 구조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에 '신뢰할 수 있는 공론장'의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세대와는 별개로 천차만별인 미디어 리터러시도, 소수자와 약자가 겪는 장벽을 낮추는 것이 곧 '역차별'로 이어지는 무한경쟁사회도 사회를 구성하는 근원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할 기회가 박탈되고 무산되기를 연거푸 이어져온 데에 어느정도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p.88 (정주식) 한국에 나타났던 중도정치의 영향이라고 하는 건 선거 때 잠깐 양당을 긴장시키는 정도의 역할이죠. 그건 결국 양당을 더 공고하게 하는 기능인 거예요. 선거 때마다 돌아오는 중도에 대한 관심은 양당제를 더 공고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지 양당제를 흔든다거나 이걸 개선시키는 데는 전혀 효과가 없었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회의론을 갖고 있습니다.
p.182 (박권일) 아무리 동일시를 해도 마지막엔 까만 공백으로 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바로 타자라는 거거든요. 그런 타자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파시즘이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이게 자본주의 논리고 소비자 논리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해버리면 안 됩니다. (...) 돈을 얼마만큼 썼든 간에 그 아이돌 역시도 나랑 똑같은 동등한 시민인 거예요. 민주사회에서 타자를, 시민성을 인정하지 않고 아이돌들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형처럼 생각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가능성의 상상만으로도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함부로 절망을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그러니 질문해야 한다. 묻고, 흔들어야 한다. 가능성을 모색하고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왜 전력투구해야만 하는가? 무슨 근거로 그것을 요구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진정한 정치주체로 기능하는가? 이 극도로 폭력적이고 소모적인 사회의 뜨거운 논쟁들, 정치와 문화, 개인과 사회, 생명의 위계까지, '한국 사회'의 문제를 타개할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
p.101 (이재훈) 저는 결국은 보이지 않는 제3지대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열망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정치적인 견해를 표방할 수 있거나 대리할 수 있는 매개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분명히 한국 사회에 있고, 이 사람들이 더 드러날 수 있는 정치세력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생각이 듭니다. 그러지 않은 이상은 (...)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비슷한 세력끼리 권력만 교체되는 상황이 이어지지 않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p.233 (정주식) 좋은 삶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 제일 큰 원인인 것 같아요. 젊음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육체적인 것이죠. 육체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가치일 텐데, 그거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인생의 의미를 못 찾은 거예요. 그래서 오로지 쫓아갈 수 있는 게 젊음밖에 없다는 거죠. 정신적 삶이 없는 거예요. 젊음의 의미 과잉은 곧 늙음은 무의미가 되는 거죠.
왜 끊임없이 묻고 생각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할 때, 불편하고 혼란한 이슈에 대해 뜨겁게 토론할 때, '공론장'의 가능성을 꾸준히 상상하고 구현하기를 멈추지 않을 때야 비로소 생존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날들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익숙한 집단주의적이고 이분법적인 생존 논리를 벗어나 고민해야 한다.
이 책 또한 그 시도의 일환이라 믿는다. 왜 '우리'에게 '나'는 없고 '우리'만 있는지, 왜 우리 사회에 '너'는 없고 '나'만이 가득한지. 민주주의의 경종이 울리는 "헬조선", "불반도"에서 살아나갈 길을 모색하기 위한, "다이내믹 코리아"가 진정한 '다이내믹'이기 위해 생각하고 토론하며 지지고 볶기를 멈추지 않기 위한.
p.292 (은유) 여기서 제가 의문을 갖는 거는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뭐든지 내던지고 거기에 올인해야 되냐는 거예요. 내 일상은 없고 운동만 남는 거지. (...) 소위 말하는 평범한 생활을 다 저버리고 그 한 가지만 해 가지고 오로지 성공만 해야 돼, 이런 게 체육적인 경쟁 시스템에도 많이 퍼져 있고 내면화돼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이탈되는 사람들의 일상은 조명되지 않고요.
p.360 (김민주) 그때는 내가 말을 했을 때 혹은 문학으로 말을 했을 때 소양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니가 틀렸다" 라고 할지언정 "못 알아듣겠다" "듣고 싶지 않다"라고는 하지 않는 시대였잖아요. 근데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폭력에 대한 묘사가 나왔을 뿐인데 폭력적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도서제공: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