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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거두는 시간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4년 11월
평점 :
찬란했던 때, 아니, 모든 것이 끔찍하리만치 생생하게 타오르던 날들이 있었다. 그것은 치기, 청춘, 과거의 편린... 어떤 것으로도 불릴 수 있지만 동시에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시간들이다. 이제는 기억의 저편, 망각의 언저리에서 희미하게 부유하는 이미지들이 되어버린.
이혼 후 대필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나'는 이모의 의뢰를 받는다. 오랜 시간 일가 모두에게 금기와 수치, 동시에 선망이자 '기댈 구석'이었던 그의 생애를 글로 남기는 일을. 알면서, 아니, 알기에 지워져왔던 그의 생애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가.
말해지고 기록되는, 필연적이고도 미묘한 간극 사이에서 '나'는 과거의 자신을 마주한다. 아니, 과거에서 이어져온 것, 망각되어온 '나'의 실체가 현재를 침습해온다. 조각난 진실, 어긋나는 기억, 나는 누구인가. 나의 기억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우리는, 정말 아름다웠을까.
p.136 시각과 후각에 이어 청각이 합쳐진 그날의 추억. 그걸 먼 훗날까지 홀로 부끄럽게 곱씹으리란 예감 때문에 나는 한없이 슬퍼졌다. 황혼이 깔리는 언덕바지에서 마주한 정체불명의 그 감정을 향해 나는 묻고 또 물었다. 그날 그 감정의 실체는 대체 무엇이었느냐고.
떠나보내지 못한 추억, 어제처럼 선명한 감정들 사이로 스며드는 위화감과 제자리를 찾은 증오에서 '나'는 스스로의 폐허를 마주한다. 과거의 이름으로 남겨둔 채도망친, 믿어 의심치 않은 그림자의 실체를, 까맣게 타버린, 태워버린 것들을.
과거의 전말을 마주한 '나'의 고백에 '그'는 속죄를 말한다. 이를테면, 속죄는 죄벗음이다. 새로 태어남이다. 과거의 허물을 벗어두고 난 자리를 떠나는 일이다. 반면 참회는 그렇지 않다. 두고두고 과거와 현재를, 어쩌면 영영 도래할 수 없게 되어버린 가능성까지도, 일어난 일과 벌어진 결과를 곱씹는 일이다.
속죄에는 종착점이 있지만 참회에는 끝이 없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에게 지은 죄는 어떻게 '빌어질' 수 있는가. 신도 사람도 용서하지 않는, 빌 곳도 고백할 이도 사라진 죄는 어떻게 속, '벗어질' 수 있는가.
p.169 위선을 떨지 않았던 만큼 위악스러웠던 적도 없으리만치 나는 타인에게 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결혼과 이혼도 그런 맥락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인간관계의 하나였다. 나는 왜 그렇게 감정 표현에 인색했던 걸까. 그 중심에 선재가 존재했고 선재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는 그걸 꽁꽁 감추느라 타인과 거리를 둬야 했다. 선재에게 철저하게 거부당하면서부터 나는 나 스스로를 부정하며 살아온 것일지도 그랬다.
제목처럼 이야기는 이미 '거두는' 때에 도달해있다. 그물은 거둬지기 위해 던져져야 한다. 따라서 그물의 존재는 자기자신조차 던져버릴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 무엇이 걸려 올라올지도 모르는 채. 같은 이유로 상처를 떠올리는 일은 또다른 상처다. 상처 위에 새로이 더 깊은 상처를 내는 일이다. 상처입은 자의 죽음을, 나의 '죽임'을 각오하는 일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숱하게 태어나고 잊혀지는 까닭에, 이것은 끝이 아니다. 또다른 가능성이다. 용서를 빌 시간이, 존재가 사라져버린 '상처'가 가득한 세계에서 참회와 속죄, 용서가 태어나기 위한, 영원한 미완의 가능성.
마지막에 와서 이모의 자서전은 '나'로 이어진다. 여기서 다시 물어야 한다.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청할 대상이 사라진 때에, 그들의 시간은 얼마나 닮아 있는가? 상처주고, 상처입히고, 파괴하고, 떠나온 자리에 돌아가 설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 있는가. 또, 무엇으로 말해질 수 있는가.
p.243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의 기억이 분분할수록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선재뿐이었다. 이제 망각의 커튼을 젖히고 잃어 버린 기억의 실체와 맞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 망각 속에 떠오른 환청이 내 신경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달그락과 잘그락, 딸각과 짤각, 툭과 톡! 빈 도시락의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와 쇠붙이가 스프링과 몸을 비벼대며 내지르는 비명은 둘인 동시에 하나였다.
모든 참회는 사후적이다. 그런 이유로 속죄 또한 언제나 뒤늦게 일어나는 일이다. 지울 수 없는 일, 망각의 너머에서 사라져버린, 어떤 가능성. 흔적조차 남지 않은 희망에서, '나'는 인간으로 설 수 있을까. 죄와 함께 가라앉은 인간성의 조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는 과연 누구의 이름으로 용서를 말할 수 있을까. 독자가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야기의 끝에서, 그 누구도 그를 용서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 스스로가 그 '가능성'을 받아들일 때까지.
p.202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송두리째 유린당한 듯 성장의 순간순간을 녹슬게 했던 그 일은 소녀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아니,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의 상처가 아니었다. 소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향해 품었던 설렘과 그리움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솟구친 질투가 불러 온 악의였다.
p.203 너도 이제 너답게 살아. 이제 너를 그만 감추고 세상으로 나와. 숨기려다가 나처럼 애먼 사람 다치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머리칼이 곤두섰다. 냄새만으로도 동족을 알아보는 감각은 동물에게만 있는 능력이 아닌 모양이다. 길거리에 내놓아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나의 가면을 나는 언제 벗어버릴 수 있을까.
*도서제공: 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