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늦여름
이와이 슌지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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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우리는 서로를 아는가. 과연 누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으로 이루어진 존재인지 답할 수 있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겠냐는 물음에 피와 살, 과거와 현재, 수많은 타자의 시선과 기억이라 답한다면, 어떨까.

사람이 사람에게서 태어나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다 죽는 존재인 탓에,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지각하는 때부터 '나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시달리며 시선을, 이름을 갈구한다. 그러므로 죽음은 부재가 아니다. 육신의 소멸로 존재의 부재는 부재의 현존으로 이행해 어긋나고 단편적인 기억으로, 이해와 오해, 진실과 침묵의 불협화음으로 재배열된다.

p.84 전철이 왔다. 개찰구에서 배웅하는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재빨리 계단을 올랐다. 머릿속에 자욱한 미련을 애써 떨치며 나는 손을 가슴에 갖다 댔다. 그곳에 남은 한 줄의 상처. 이런 때면 그것이 지독한 콤플렉스가 되어 욱신거렸다.

p.158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미안해서 괜히 해본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때까지도 나유타라는 화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내 속을 꿰뚫어 봤는지 어쨌는지, 가세는 답이 없었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은, 퍽 애달프고 간절한 일일지 모른다. 알아달라고, 나를 보라고, '진짜' 이름을 불러달라고. 아니, 부르지 말라고,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고, 그 누구도 '진실'을 감당할 수 없다고. 스스로조차. 지극한 무한에 가까운 이름이 곧 부재이자 영원한 존재의 그것과 맞닿는 것처럼.

어떤 진실은 영영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어 감은 눈과 서투른 비밀 속에 묻혀버린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위해 태어나 존재하는가. 마음과 형상 중 흉내내기 더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p.269 미코토의 죽음을 슬퍼하는 형제, 가족, 무리의 멤버들. 소메이는 생각했다. 이 소박한 사람들은 슬퍼하는 법을 아는구나. 그게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두 더듬이가 뜯겨 나간 곤충이랬던가, 물속에서 세상을 보는 듯한 감각이랬던가, 아무튼 본인 말로는 그랬어요."

p.314 "그런데 소메이 군은 아니래요. 실패는 노이즈 마케팅 탓이 아니라 죄책감 탓이다, 남의 비난과 악평을 견디지 못하는 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을 버리지 못해서, 진부한 양심을 버리지 못해서다. 세기의 예술가를 만들어내는 데 그런 게 필요하냐, 외려 그리 되물으면서요.”


그러나 같은 이유로, 기억과 시선은, 믿음은, '나의 세계'의 '너'는 무엇으로 믿어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믿음이란, 구성된 기억이란, '진짜 의미'란 무엇인지. 믿음의, 바로 그것을 이루는 믿을 수 없는 연약함이란. 어떤 상처, 연약함에서 삶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더 큰 상처를 내야한다. 더 깊고 더 위태로운 지점까지.

새로운 상처가 아문 자리에는 새 살이 차오르고 한때 무엇이 있었다는 흔적이 남는다. 공백과 부재는 꼭 그만큼의 무게와 자리를 갖는다. 면책의 괴로움과 부정(不定)의 공포, 죽을 힘을 다해 기억되는 상실.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이 초대이자 애원이었던 셈이다. 나를 기억해줘요. 나를 알아봐줘요. '진짜 나'를 만나러 와줘요.

p.270 "면책. 그게 그를 미치게 한 거죠." 에베 씨가 말했다. "그가 살았던 곳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 오로지 저쪽에서만 살아있음을 실감했다고. 그런데 그건, 죽은 거 아닌가? 나는 죽었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실감한 거죠."

p.341 "그래서 더욱 기를 쓰고 기억하려 했어요. 잊는 게 무서웠어요. 절대 잊기 싫은 것은 매일매일 떠올렸어요."


작품 전체가 한 사람의 시선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라는 커다란 그림으로 그려나가는 과정과도 같다. 헤매는 듯도, 자꾸만 멈춰서는 듯도 한 여정은 진실에 다가갈수록 속도를 더하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라서는 숨을 멈추고 읽게 한다.

슬프고 무력한 존재가 마침내 서로의 '진짜' 이름을 부를 때, 마주할 용기를 냈을 때, 그제야 다음을 말할 수 있다. 새 살이 차오르고, 기억은 흔적으로 남는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전히 살아갈 수는 있다. 그제야 비로소 생과 사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우리는 무엇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물음에의 답을 찾아나설 수 있다.

어렴풋한 혼란으로 읽어나가기를 바란다. 무언가 왈칵, 하고 와닿는 이야기로 읽기를 바란다. 밝기를 낮추고, 조금쯤 지친 목소리로 읽기를 바란다. 이해란 그런 것이므로. 안다는 건, 꼭 그만큼이므로.

p.403 분명 인생에선 누구에게나 한 번은 이런 일이 찾아온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한 점에 집결하여, 나는 이걸 위해 태어났던가, 하고 깨닫는 순간이. 유년 시절 나를 살리기 위해 가차 없이 그어졌던 상처의 자국. 그걸 그에게 드러내며 나는 순수하게 실감했다. 나는 이 사람에게 그려지기 위해 태어났다고. 그래서 이 사람에게, 그림을 가르쳤던 거라고.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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