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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괴이 ㅣ 비채 미스터리 앤솔러지
조영주 외 지음 / 비채 / 2024년 10월
평점 :
수 년 전, 세간을 충격에 빠트리고는 씻겨내리듯 잊혀진 사건이 있다. 10여 년 전, 한 사람이 황량한 돌언덕에서 발견되었다. 머리에는 가시관, 옆구리에는 상흔이, 손발에는 못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오래된 종교의 교리적 순간을 집착적으로 재현된 듯한 느낌을 주는 그 현장.
사람이 스스로를 못박아 죽일 수 있는가. 자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끔찍하다. "신의 아들"마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을 만큼. 그러나 타살로 보기에는 증거가 없다. 잠정적 결론만이 내려진 채 여전히 해결이 미뤄지고 있는 이유다.
아무것도 믿지 마라.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의심마저 무지와 미지에 갇혔음을 잊지 마라. 의심의 끝에서 미지는 발걸음을 쫓아 질문하는 자를 집어삼켜 새로운 미지가, 무지, 의심의 시작이 되리니. 여섯 편의 이야기는 죽은 자만이 아는 순간, 공란으로 남겨진 조각들에서 출발한다.
p.192 인간은 십자가 아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자신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해야 한다. (...) 그렇다면 그들은? 그들은 자신의 죄를 사해달라고 한 것인가? 자신의 죄를 자책하기 위해서 자기 육체를 학대한 것인가?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이야기일까? 에셔의 유명한 작품처럼,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이야기까지도 이야기가 된다면. 마치 클라인의 병처럼, 안팎을 구분할 수 없는 이야기의 독자는 누구이며, 그것을 써내리는 자는 누구인가.
이는 또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을 예비하신 그 분"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가. 선험적인 전능자로 세계와 함께 존재하는가. 어쩌면, 불경하게도 그의 "의지를 따르는 자들"에 의해 구현되는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압도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의 존재에 대한 순종은 저 바닥에서는 굴종과도 닮아있지 않은가.
p.138 그것은... 나를 알고 있었다. 단순히 내 이름과 사는 곳을 아는 정도가 아니었다. 내 삶 전체를 관통해 모든 것, 약점이나 강점, 밝은 면이나 어두운 면까지 속속들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것은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기나긴 세월 동안 나를 내려다본 것만 같았다. 피부가 벗겨지고, 근육이 갈라지고, 뼈가 으스러지고, 마침내 내 안의 모든 것이 피를 뚝뚝 흘리며 드러나 보이는 기분이었다.
p.183 그분의 계획 안에서 모든 일이 벌어졌다. 나는 태초에 존재했다. 이 이야기의시작에. 그러니 내가 처음이었고, 그분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진상은 죽은 자만이, 어쩌면 그조차도 모르는 채로 남겨져있다. 오래된 신을 흠숭하여 그 자신이 신성의 자리에 오르고자 했던 이의 마지막인지, 타락한 신성으로 모반을 꾀한 흔적인지, 그저 사람이 사람을 죽였을 뿐인지, 어쩌면 또다른 "의지"였는지. 그도 아니면... 영원히 알 수 없을 무언가일지.
여섯 명의 작가가 스스로를 이야기에 끌어들여 내놓는다. 달리 말하면 가장 자신있는 이야기로도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한 '미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빌어 묻고자 한다. 그 날, 그곳의 진실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은 이 무지와 미지 사이의 어딘가일 이야기에서 살아 나갈 수 있겠습니까. 길고 긴 낮, 사방을 알 수 없는 밤의 시간에.
p.57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만 같았다. '같았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런 그의 손이 내 눈엔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만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를 믿을 수 없다.
p.227 어쩌면 이런 식으로 자신도 십자가의 길을 배우는 건 아닌가 느끼며 안은 지금의 이 모호함을 견뎌보려고 한껏 몸을 움츠렸다. 그렇게 무진의 밤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제법 긴 밤이 될 것이었다.
한 가지를 분명히 할 것. 이 사건에 영웅은 없다. 추대된 순교자 혹은 제물이 있을지라도. 폐허의 시신, 그 끔찍한 참상은 여전히 진실을 파헤치는 자와 재야의 음모론자를 매혹한다. 추측컨대, 오래도록 이 이야기는 살아남을 것이다. 으스스하다기에는 지극히 황량하고, 짜릿하다기엔 너무도 처참한 탓이다.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모든 창작물을 마주하는 독자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책무가 있다는 것을. 실제에 허구를 덧입히는 일 자체에 대한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주저함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상상하되, 주장하지 않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머무는 것, 거기까지도 독자와 창작자의 몫이라 믿는다.
다시금, 진실은 무엇인가. 여전히 이야기 바깥에 머무는 독자를 이 순간에도 바닥부터 집어삼키는 심연은 무엇인가. 미지의 몫으로 남길 뿐이다.
p.192 인간은 십자가 아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자신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해야 한다. (...) 그렇다면 그들은? 그들은 자신의 죄를 사해달라고 한 것인가? 자신의 죄를 자책하기 위해서 자기 육체를 학대한 것인가?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도서제공: 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