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버트 영매탐정 조즈카 2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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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이랄지, 정석이랄지. 추리소설은 으레 범죄의 재구성을 향한 여정과도 같다. 미궁에 빠진 사건, 불가해한 현상의 심부에서 진실을 발굴해내는 과정은 별다른 이유가 없는 한 정의의 편, 즉 독자와 탐정의 입장에서 쓰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건이 제목처럼 Inverted, 도치된 서술로 전개된다면?

작가는 사건의 현장, 사건의 중심을 드러내고 시작한다. 아니, 목격자가 된 독자로 하여금 현장 밖에서부터 다시금 사건에 접든하도록 하는 모종의 게임에 가깝다. 범인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각자의 자리에서의 불완전한 진실을 짜맞추는 동시에 패를 숨겨야 하는 이 치열한 경합은 독자와 탐정이 한 팀이 되어 범인을 좁혀나가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되는 결과, 범행의 현장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올가미를 조여오는 탐정에게 쫓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추리 소설의 세계는 단순해서 좋아요. 명탐정의 논리를 모두가 이해해주고, 논리만 구축하면 경찰은 납득해줄 거고, 범인은 흔쾌히 자백을 해요. 재판까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그 부분이 명쾌해서 좋아요."


각 챕터는 사건현장, 그것도 범인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살인. 사람을 죽이는 일. 살아있는 자의 숨통을 눈앞에서, 제 손으로 끊어버리는 일. 살인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일인 탓에,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사정이 있었든 그 본질적인 속성을 떨쳐낼 수 없다.

'죽일만해서 죽였다'는 말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폭력. 응분의 살인이란 과연 가능한 말일까? 사람이 사람의 숨통을 끊는 일은 무엇으로 정당회될 수 있는가? 누가 '죽어도 되는 사람'이고 누가 '죽여도 되는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사람에 대한 폭력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는가? 살인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보편적 금기의 성격을 띄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꺼림칙한 난해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건가. 이렇게도 허무하게 인간은 죽는 건가. 에리는 당연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그래. 자신은 알고 있었을 터였다. 사람은 허무하게 죽는다. 비눗방울 터지듯 허망하게, 생명은 사라진다. 일격에 끝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수월하게 죽였다..."


작은 균열과도 같은 위화감과 속삭이는 웃음소리를 따라가며 도달한 곳에서 과연 어떤 진상을 마주할까. 어디서부터 꼬리를 잡힌 걸까. 무엇을 놓친 걸까. 허술해보이는 외양 너머에서 날카롭게 반짝이는 눈과 경쾌한 웃음을 가르고 찔러들어오는 질문, 잔인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모든 과정은 수사보다는 오히려 몰이에 가깝다.

그렇기에 사건 해결 뒤에 밀려오는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이 선택은 과연 옳았을까? 진실을 밝혀내면, 자백하면, "그 누구도 죽어 마땅하지는 않았다"고 맗하면, 그걸로 끝인걸까. 사건 이전의 사건에서 온전한 진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사회를 지켜나가는 것 외에는, 사람의 생명을 뺏으려는 폭력을 없앨 방법이 없다고요! 다른 사람을 죽이면 반드시 대가를 받는다고!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려면 그 룰을 철저히 알려야, 살인이라는 폭력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세요? 옳다고 판단하면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소중한 사람이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마가 옳다고 생각해서 죽였다고 주장하면 어쩔 수 없다고,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가르치실 수 있느냔 말이에요!"


졸지에 수사관의 안락한 지위에서 내쫓겨 필사적으로 증거를 조작하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범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추리소설에서는 꽤나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 독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 한 권의 책 전체가 전작 『영매탐정 조즈카』를 사랑했던 독자들을 위한 연결고리와 더불어 까다로운 서술트릭과 곳곳에 심겨진 증거로 빈틈없이 짜여진, 사건현장이자 탐문이고 힌트와도 같다. 어쩌면, 모든 것이 거짓이고 불완전한 진실이며, 꾸며진 연극일 수도.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숨겨진 손, 시야를 스쳐지나간 것들 중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포착해내는가? 그런 이유로, 작가가 탐정의 목소리로 던진 질문을 다시 묻는다. "범인은 자명. 하지만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과연, 당신은 탐정의 추리를 추리할 수 있습니까?"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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