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앨리게이터』**
현대 사회는 인간에 대한 폭력을 소거하는 대신 수면 아래로 밀어넣기로 합의했다. 적어도 일부 성공을 거두었다. 광장에서, 인간에게 사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부인하는 정도로. 이는 곧 '인간-아님'으로 여겨지는 존재에게 대해 '사적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은 침묵과 부인의 영역, 짐승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세계가 그렇다. 그는 상대를 앨리게이터에, 폭력을 굴욕에, 스스로를 생기 잃은 것과 낙오되는 짐승으로 비유한다 자연에서는 죽어 마땅한 것, 낙오되는 것. 화자는 스스로를 사람의 지위 밖으로 "밀려난" 존재로 정의한다. 우연히, 불운하게, 모든 것을 빼앗긴 존재로, 인간성마저도.
그의 세계는 몸 하나만큼이다. 감각과 운동에 불능이 아닌 무능이 붙은 몸. 그러므로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몸으로 존재한다. 그의 존재가 긍정되는 유일한 이유는 "희생"과 남은 영역 뿐이다. 그 자신마저 부정하는 존재는 들어설 곳이 없다.
p.8 앨리게이터의 특이한 습성은 호수에 자신만의 섬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가족과 생활한다는 거다. 수컷 앨리게이터는 그 섬의 지배자이자 폭군이며 보호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닿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통나무에, 야생에, 뜯어먹히는 살덩이에 머무르지 않는 자의식을 갖게 하는가. 자존심인가, "가능"의 세계인가, 돌봄인가, 살려달라는 외침에 응답하는 목소리인가. 내내 묻고싶었다. 신체 움직임으로 대표되는, 자립 불가의 공포는 '평범한 사람'의 세계에 얼마나 만연해있는가.
이것은 모욕일까, 혐오일까, "현실"로 용인될 수 있는 사실기술일까. 살아남은 것은 새로운 시작일까. 구정물과 토사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의 삶에 얼마나 더 많은 앨리게이터가 있을까. 주인공은, "나"는 시궁쥐인가, 악어인가, 통나무인가... 사람인가.
무엇인가, 이전에 어떻게 읽힐 것인가를 묻고 싶다. 환상 속에서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만 힘을 갖는 이른바 "정신승리"로 끝날 것인지, 현실도피로 볼 것인지,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있느냐는 물음의 단초가 될 것인지. 작가의 행보에 달렸다. 섣부른 포기를 미뤄두고자 한다.
p.90 "넌 아무것도 아니야!" "맞아. 난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넌 날 무서워하잖아, 그렇지?"
*도서제공: 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