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둑 - 예술, 범죄, 사랑 그리고 욕망에 관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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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역사상 전무후무한 규모의 도둑이 있다. 본격적인 절도 행위만 해도 최소 유럽 7개국, 약 200회에 걸쳐 300점 이상의 "물건"을 훔쳤고, 공식적인 자백만 해도 100건 이상이다. 도난품들의 가치는 가장 과소평가된 것만으로도 3,000만 달러(약 400억 원). 도저히 개인이 저질렀다고 믿기 어려운 규모다. 이 정도면 전문지식을 가진 범죄집단의 소행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세간을 경악케 한 범죄 행각에 최초로 선고된 형량은 4년. 규모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가벼운 처벌은 그의 죄목이 강도가 아닌 절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가능한, 적어도 통제불능한 절도광으로 변모하기 전에는, "물건"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려 애썼다. "장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기는 단 하나,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훔친 것은 예술품, 그것도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은 각국 박물관의 소장품이었다. 그는 "지극한 심미안"으로 선정한 목표물들을 "감옥"에서 구해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는 사람"이라 칭했다. 금전적 이득이 아닌, 오로지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p.36 "박물관은 예술의 감옥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북적이고 시끄러우며 관람 시간도 정해져 있고 자리도 불편하다. 조용히 생각하거나 쉴 만한 장소도 없다"


죄과를 논하기 전에,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림, 조각, 극도로 정교하게 세공된 공예품을 보고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살아있는 동안 딱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그 앞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마음을 빼앗겨 온 세계가 감동으로 차오르는 감각을 알고 있다면, 당신 또한 "도둑"에 공감하고도 남을지 모른다. 나 역시 도난된 예술품를 설명하는 장면마다 마치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지는 묘사에 대체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헷갈릴 정도였으니.

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 사건에 얽힌 이는 최소 셋. 피고 본인과 그의 연인, 그리고 어머니.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가담하고, 묵인했으며, 부추겼다. 피고, 브라이트비저는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살아있는 예술, 그의 연인과 함께하는 낙원인 다락방에 처박힌 자신을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여겼다. 비록 '행복의 완성'은 "아름다운 예술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럽혀진 절도품"이라 회고했지만.

p.152 브라이트비저는 산업혁명 이후 엔진과 전기의 발명, 그리고 대량 생산 시스템 덕분에 사람들의 삶이 수월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 점차 보기 흉해졌고 (...) 기계가 세상을 점령하기 직전의 시기에 인류 문명이 이미 아름다움과 기술 면에서 최대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기의 물건과 작품을 훔친다.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가지만, 한적한 마을의 작은 다락에서만은 멈추기를 희망한다.


앞서 말한 동조자, 모친은 아들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수집품"을 몽땅 내다버렸다. 그의 행동을 무분별한 예술품 파괴요 그 작품들의 가치도 모르는 무지한 행동이라 비난할 수 있을까? 평생에 걸친 회피의 대가는 차치하더라도, 여기서 다시금 예술의 가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처분" 전후로 여러 사람에게 단순한 잡동사니로 간주된 것은 의외로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235-6의 "활용례"를 보라).

시작이야 유년기의 결핍이었든 잘못 자란 싹이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그는 극도의 이기심과 자아도취로 수많은 이들의 '감동'을 빼앗았으며 주체없는 절도와 수집 강박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작품들 중 일부는 영영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그것은 파손이 아닌 파괴였다. 전자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남기지만, 후자는 영혼이랄지 존중받아 마땅할 정수가 깡그리 무시되었기 때문에.

예술의 가치와 감상의 권리가 이렇게까지 혼돈 속에 뒤엉킨 적이 없었다. 그의 주장처럼 그간의 절도는 범죄가 아니라 구출에 불과했나? 도난과 경매로 이어져온 예술품 거래의 역사적 상례에 한 발 걸쳤을 뿐인가? 예술은 소유될 수 있는가? 온몸으로 감동을 느끼는 것과 "물건" 자체의 가치는 별개의 것으로 논해져야 하는가?

p.198 한때는 아름다움을 숭배하며 작품 하나하나를 귀한 손님처럼 대하던 브라이트비저였지만, 이때부터는 마치 사재기를 하듯 그저 무엇이든 끌어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 한때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실 하나를 따온 것 같던 두 사람의 다락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쓰레기장이 되었다. 끝도 없이 물건이 줄지어 들어올 뿐인.


그를 수사한 예술품범죄수사관은 "박물관은 속세의 교회나 마찬가지라서 이런 곳에서 물건을 훔치는 일은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다"고, 피해 박물관장은 "금전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의미 자체, 그리고 물건과 장소 사이의 맥락"이라고 말했다.

읽기 전, "재미나고 요상하고 황홀한" 이야기라는 평을 들은 바가 있다. 과연 그랬다. 도둑과 수집가, 탐닉과 집착, 낭만과 광기를 오가며 빠져나갈 길 없는 파국으로 달려가는 이야기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부디 박물관에서 황홀하게 반짝이는 얼굴로 만날 수 있기를.

p.86 사실 박물관 보안에는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박물관은 작품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유하기 위해 존재하며 관람객은 거창한 보안 장치의 방해 없이 가능한 한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물관 절도 사건을 거의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작품을 저장고에 넣고 문을 잠근 뒤 무장 경비를 세우면 된다. 하지만 이러면 당연히 박물관도 사라진다. 박물관이 아니라 은행이 된다.

p.249 오래된 예술 작품은 시간 여행자 같은 존재라서 다락은 그저 정류장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훔친 작품들은 브라이트비저보다 세상에 더 오래 머물 것이다. "저는 잠시 맡아두었을 뿐입니다." 브라이트비저는 훔친 물건을 모두 돌려줄 계획이었다고 덧붙인다. "10년이나 15년, 20년쯤 지나서요." 그렇게 작품들은 여행을 계속할 계획이었다.


*도서제공: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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