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물리 장난감 - 일상 속 사물들에서 찾은 신기한 과학 원리
김범준 지음 / 이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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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전공에 몸담은 지인에게 '교수나 연구자는 해당 학문의 최전선 아니냐', '실제로 만나보면 어떠냐'고 물으면 매번 같은 답이 돌아온다. "그냥 오타쿠인데 다행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장르"를 파고 있을 뿐"이라고...

반 농담 반(보다는 좀 더 되는 것 같은) 진담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결국 본질은 다를 바가 없다. 어떤 분야의 주제와 연구가 너무 좋아서, 하다 보니 적성에 맞아서... 기타 등등.

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오타쿠"가 언제 세상을 향해 뛰쳐나오는가, 하면, 눈을 번뜩이며 "이렇게 재밌는 걸 나 혼자 알 수는 없다. 이 재미를 세상에 전파해 새로운 "동지"를 모집하리라"는 결심에 모종의 확신을 얻었을 때라고 할 수 있다.

고래 이후로 딱히 돈 잘 버는 직업의 대명사였던 적이 없는 전공의 현실을 학부 시절 내내 체감한 자로서 조금 분하긴 하지만, 이 광기와 환희 사이의 어딘가일 "장르 영업"은 생각 이상의 힘이 있다. 확실한 증거로, 나도 홀린지 오래라 틈만 나면 기웃대고 있지 않은가...


이러나 저러나 '사람 바뀌는 일 쉽지 않다'는 말처럼, 나에게도 나름의 고질병 같은 천성이 있다. 바꿔보려고도, 숨겨보려고도 해봤지만 결국 둘 다 포기하고 되는대로 살고 있는 그것은, 호기심이다. "원래 그래" 내지는 "넌 참 별 게 다 궁금하다"는 핀잔 겸 비난에 익숙한 사람에겐 저 두 마디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도 없다.

아니, 나야말로 '원래 다들 그렇게 궁금해하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단 말이다. 솔직히 그렇잖아요. 분명 투명한 개구리알이 컵에 가득 차 있는 걸 봤는데, 물을 부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뭔지, 부리 하나로 손끝에서 떨어지지 않는 신기한 모형은 대체 무슨 원리로 저러는 건지.

마구잡이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공에서 통계적인 규칙을 발견할 수 있을지. 아찔하게(라고 쓰고 고문이라고 읽는)놀이기구의 원리가 대체 뭐길래 다들 좋다고 줄을 서가며 타는 건지.

p.284 요즘 전기로 작동하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속도를 줄일 때 전자기 유도를 이용해요. 자이로드롭의 속도를 줄이는 원리와 정확히 같아요. 그리고 이때 생성된 유도 전류를 이용해서 자동차의 배터리를 다시 충전할 수도 있죠.


해서, 읽기 전에 한참을 고민했더랜다.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데다 사회 현안에 대한 분석도 아니라 요약하기가 영 곤란한 이 책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첫 챕터를 마칠 때쯤,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이 사람도 "오타쿠"구나...! 이거 영업이네...!"

내내 유쾌했고, 쪼끔, 단언컨대 조금이 아닌, 쪼끔, 분했다. 축하합니다. 이달의 영업왕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잖아도 교단에서 꿈나무 양성에 힘쓰고 계시니 교양독자야 뭐, 손쉽게 홀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투정 섞인 애정의 고백이다. 과학은 낭만이다. 정확히는, 과학하는 마음은 낭만적이다. "원래 그래"의 세계의 포장을 굳이 벗겨 속을 들여다보는 것, "별 게 다 궁금해" 파고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

p.78 우리가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갑갑해진다면, 하늘 위로 바람을 불어보세요. 평형을 이루며 공중에 떠 있는 탁구공을 상상하면서요.


그래서, 이 넓고 무심한 세계에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 일상에서, 장난감에서, 작고 사소한 물건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를 양껏 상상하고 끌어내는 즐거움을 재발견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평생의 즐거움으로 향하는 문, 활짝 열어젖히는 초대는 기껍다. 물리학자 또한, 그렇다. 당연함 너머의 세계, 당연함을 이루는 원리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장난감을 통해, 손끝의 즐거움을 따라.

p.7 너무 익숙해서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도, 물리학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제법 많아요. 너무나 익숙해서 늘 당연하게 생각했던 현상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깨달을 때 저는 등골이 오싹한 경이로움을 여전히 느낍니다. 세상도 경이롭고 물리학도 경이롭습니다. 이처럼 경이로운 물리학을 만들어 낸 우리 인간도 참 경이롭습니다.

p.114 빙산의 일각을 이해하면, 얼어붙은 호수 아래에서 물고기가 살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재밌어요. 과학의 눈으로 보면 아주 달라 보이는 두 자연 현상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아요. 이럴 때 저는 제가 과학을 정말 사랑한다고 느낍니다.

*도서 제공: 이김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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