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하는 사람들 - 우리의 인간다움을 완성하는읽기와 뇌과학의 세계, 2024 세종도서
매슈 루버리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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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자찬 내지는 거들먹대는 것처럼 보일 줄을 뻔히 알기에 굳이 꺼내지는 않는 말이 있다. 읽기는 내 삶이었고, '읽기'를 시작한 이후로 내 삶에 책이 없었던 적이 없다. "나를 이루는 것은 팔할이 활자와 종이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읽었고, 다른건 몰라도 읽는 능력만은 숨쉬듯 당연하고 "정상 기준"이 요구하는 선 아래로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의식적인 취미 개발로서의 독서를 이해하는 데 곤란을 겪기도 했다. '읽는 아이'였고, '읽는 어른'이 된 지금, 나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은 독자로서의 그것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것은 나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인 동시에 두려움이기도 하다. 물성으로서의 책, 의미로서의 책, 언제나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존재하는, 숨처럼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로서의 책과 그것에 닿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인 '읽기 능력'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해묵은 공포가 있다.

p.170 읽기능력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학습한 기술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존엄성을 상실한다는 뜻이며 부분적 인격 또는 불완전한 인격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 읽기능력을 잃은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완전한 인간'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이 두려움에는 근원이 있다. 나는 이미 뿌리를 잃은 적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 없이 욀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던 책을, 그 첫 문장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때, "눈이 글자 위를 미끄려져" 붙잡을 수 없었을 때 나의 세계는 바닥부터 흔들려 무너졌다.

이전과 큰 차이 없이 회복한 지금도, 어쩌면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그 때의 기억은 수시로 나를 찾아와 흔들어 놓는다. 이제는 익숙해진 통증에 눈을 감고 무력하게 누워만 있을 때는 마음과 몸이 모두 나의 '읽는 세계'를 앗아갈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비단 남을 위하고 함께 사는 일을 위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 없다는 깨달음은, 다양한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앎은 나 자신의 변화, 다양한 '정상'으로의 이동과 적응을 가능케 한다.

p.162 자폐인 독자와 똑같지는 않아도 자폐인 독자도 책과 만나며 즐거움을 느낀다. 자폐적 읽기 방식을 통해 일반 독자에게 읽기와 다른 활동의 경계가 어디인지, 무엇보다 읽기의 경계를 벗어나 텍스트를 느끼는 그들만의 즐거움에 과소평가된 측면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사는 동안 만나온 "'읽기'와 먼 사람들"에는 단 한 번도 책읽기가 즐거웠던 적이 없는 이도, '읽기의 즐거움'을 등지거나 잃어버린 이도, '정상적 읽기' 자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이도, "정상에서 벗어난 '읽기' 방식" 탓에 스스로를 독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도 있었다.

"인간의 뇌는 읽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말과 달리, 인간은 읽는 동물이다. 이것은 "인간은 이야기를 짓는 동물"이라는 상투적 표현과는 궤를 달리한다. '읽기'는 고도의 학습 능력이 종합된 결과인 동시에 좀처럼 상실되지 않는 능력이다.

이 책은 난독증, 자폐인, 문해력 상실, 공감각과 환각, 인지증(치매) 등, "정상적 '읽기'" 밖의 독자들과 그들의 전략을 고루 펼쳐보인다. "정상 바깥"의 너무도 넓고 다양해 기존의 의미처럼 단일하고 명확한 '읽기'의 기준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p.315 리딩투커넥트 위원들은 독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텍스트 전체를 이해하든, 몇 페이지에만 머물든, 한 문구를 곱씹든 이미지만 즐기든, 그들은 활자 매체와 상호작용하고 있다.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도우면 인지 결함이 있는 사람도 책과 계속 만날 수 있다. 나는 이런 방식도 읽기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그들의 방법이 과거에 읽어왔던 방법과 전혀 비슷하지 않아도 말이다.


"인간의 뇌는 읽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읽는 동물'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읽기' 혹은 읽기 이후의 세계에 적응하고,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독자는 어쩌면,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계를 지우고 다양성이 포괄하는 범위를 넓히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다르다는 것은 실패와 미달의 동의어가 아니라고.

p.339 읽기를 스펙트럼으로 본다고 해서 읽기와 읽기가 아닌 것을 절대로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 하지만 우리는 제한적이지 않은 정의도 염두에 두고, 다양한 행위를 구분하는 일보다 이 행위들의 공통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p.343 신경다양적 독자의 사례는 읽기 방법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을 알려주고, 다른 사람과 비슷하거나 다른 자신만의 취향을 되돌아보게 한다. (...) 논의를 이어나가면서 자신이 읽기 습관이 완전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을 같은 생각을 해왔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어도 좋다.



*도서 제공: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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