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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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고백합니다. 그간 내게 문보영이라는 시인은 어쩌면 묵묵하고 또 담담하면서 쓸쓸하고 건조한 이미지였기에, 이 책 또한 씁쓸한 맛이 강하게 배어나는 점을 빼면, 뭐랄까, 크게 특별하지 않은 에세이들의 반열에 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뒤집어졌지만요.

이 사람이 이렇게 귀엽고 엉뚱해 어디로 튈지 전혀 모르겠는 이였던가? 정녕 이 사람이 부슬부슬하고 퍼석퍼석한 환상을 그려내던 그 시인이 맞나?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 문보영의 삶을 제대로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쪼끔(조금 아님) 웃긴..." 이랄까.

p.14 아이오와에 와서 가장 먼저 한 말은 "My room has no view"이다. 작가들은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이라는 곳에 머문다. 호텔 인근에 아름다운 아이오와강이 흐르고 햇빛이 가득하지만 방은 어둠에 잠겨 있다. (...) 작가들에게 어두운 방을 배정하라는 상부의 지령이 있었나? 그게 아이오와 IWP의 은밀한 목적인 걸까? 빛이 없는 곳에서 어떤 글이 탄생하는지 실험하는…. 여기 일종의 글쓰기 감옥?

p.91 여하간 그렇게 걷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점점 더 모르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둘은 신나게 대화를 하고 나는 소외된 채, 나아가 방해자가 된 채 걷고 있었다. 난 에바의 옷자락을 붙잡고, 에바야... 이건 좀 에바 같은데, 해 뜨면 가보지 않겠냐고 말했는데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생이 영화라면 아무래도 장르는 호러가 아니겠냐고. 내게 삶은 대체로 불안하고, 끊임없는 계획과 통제와 경계... 익숙해진 것들에 대한 자그마한 사랑의 순간과 찰나를 파고드는 공포와 기겁의 연속체다. 하루의 크레딧이 올라갈 쯤엔 이미 모든 기력을 탈탈 털어쓰고 이제 그만 극장 문 닫죠... 의 심정이 되어버린달까.

그러니 이 작가의 기행(여러 의미로...)은 놀라움의 연속이 아닐리가. 두렵지 않은가? 무섭고 불안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꼭 그만큼 즐거웠다. 엉뚱하고 사랑스럽고 다정한, 심심찮게 헐렁한 구석이 있는 시인의 어떤 순간, 삶의 단편을 조금 나누어받는 경험이.

잠시 머무르는 이방인, 생각보다 대책없고 삶의 면면에서 귀엽고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구석을 발견해낼 줄 아는 사람. 여전히 나는 시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가'도 '사'도 '자'도 아닌, 시인. 시 곁에 나란히 자리하는 사람, 그런 이가 써내는 시를 알알이 들여다보고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하기에.

p.232 몽 씨는 사람을 안 만나고 대체로 사람 아닌 것들로 집안을 꾸며놨는데 (...) 대체로 사람 빼고 좋아하는구나. 내가 사람이어서 미안했다. 저 사람과 있을 때는 최대한 사람답지 않은 모양으로 있어야겠다. 그게 어떻게 하는 거냐 하면 내가 들판 아닌 방향으로 걸을 때 조사한 그 나무들처럼 존재하는 것일 테다. 사람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좋으니까, 나는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오래도록 작은 동네의 달팽이처럼 살고 싶다. 강박적인 효율과 계산의 세계에 사는 나는, 정처없이 걸어본 적이 없다. 적어도 자의로는. 들판의 길을 기꺼이 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 순간 단단히 각오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불안에 흔들리며 울먹일까봐.

오래 전에 먼 곳에 자리잡은 친구와 근래 들어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찾아 낯선 땅으로 건너간 이들을 떠올리며 읽었다. 어떤 사람의 세계는 저럴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괜찮다'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울 수도 있겠구나. 사랑을.

p.209 이곳에서 나는 강해지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안다. 어떤 따뜻한 곳에서는 내가 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호구처럼 살아도 된다는 걸 안다. 아이오와에서도 똑같이 움츠려 있지만, 나의 웅크림은 보상받는다. 사람들은 호의를 알아차리고 보답한다. 며칠 전에 타로를 봤다. 이번 달에 당신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동시다발의 사랑이 발생하여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카드는 말했다. 나는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변하지 않기로 한다.

p.266 사랑이 있을 때 많이 써둬야 한다. 사랑이 있어야 묘사의 눈을 갖게 되기 때문에 만상을 'devour'할 수 있다. 'devour'이라는 단어는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다'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가오나시가 사물과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장면을 상기시켜 쿡 웃음이 나온다.


다정하지만 무르지 않게, 자기만의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이와 또 그러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읽고 난 지금, 여전히 집달팽이(민달팽이→달팽이→집달팽이 순으로 은둔과 고립의 정도를 더한다는 나의 지론) 인간인 나는 울고 싶은 날에, 바람에 눈을 감고(질끈! 말고 아이고... 정도) 기꺼이 모르는 이와 인사를 나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은 여전히 벅차거나 두려울 수 있지만, 어쩌면, 들판의 길로 기꺼이 헤매고 돌아가기를 택한다 해도, 여전히 우리는 괜찮을 수 있다고, 조금 슬프고 구겨지고 낡고 닳아 헤진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p.60 I want to live here. I want to leave here. 살다와 떠나다를 구별할 수 없다면, 내가 여기 살고 싶다고 말할 때, 너는 내가 떠나고 싶어 한다고 이해하겠지. 이젠 떠나고 싶다고 말하면 여기서 살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하겠지. 그건 좋은 걸까 나쁘 걸까 아름다운 걸까. 그건 어두운 밤, 강을 건너는 새끼 오리 같은 것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들판의 나무들처럼 슬프겠지. 살고 싶다는 말은 떠나고 싶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p.110 제 하루는 완벽하지 않은 언어로 누구가와 대화를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일어나자마자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문이 막히는 거 좀 좋지 않나요? 왠지 안전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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