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구픽 콤팩트 에세이 6
남유하 지음 / 구픽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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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아니. 종자가 다르다고 하는 게 맞겠다. 쫄보 무더기에 살던 쫄보는 이 호러 마니아 작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너무 재밌게 얘기하는 통에 홀랑 넘어가 슬쩍 찍어먹고 밤새 눈을 감았다 떴다, 설치는 것까지가 쫄보의 삶이다. 어떻게 아냐고요? 그거야 이게 다 내 얘기니까 그렇지...

동시에 주관적 메이저, 객관적 약간 마이너로 분류되는 내 취향에 한마디씩 얹던 이들이 생각나는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 읽는 동안 "아니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를 한 칠십 번쯤 외쳤단 뜻이다.

p.51 나도 가위에 눌리는구나! 잔뜩 기대에 찬 마음으로 그것을 기다렸다. (…)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게 느껴졌다. 가위 눌렸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p.56 은혜를 아는 귀신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이 관건인데, 평소에도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내가 과연 귀신 보는 눈은 있을까? 애당초 착한 귀신이건 나쁜 귀신이건 안 보이는 척 외면하는 게 답일까? 그래도 모처럼 만난 귀신을 그냥 보내기는 아쉬우니 한국말로 욕을 하면 어떨까? 욕에 반응을 보이면 한국 귀신이니 대화를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마냥 이해 못할 내용은 아닌 것이, 저자의 경험과 나름의 줏대있는 호러 예찬론(!)을 따라가다 보면 아, 이 사람도 평범한 사람이구나. 그런데 이제 조금... 뭐랄까... 쉽사리 공감받기는 어려운 취향을 가진... 싶은 순간이 많다.

굳이 따지자면 나도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다. 무섭다고 온 집안 불을 몽땅 켜둘지언정 어쩌다 마주친 괴담 시리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밤새 읽곤(혹은 보곤) 한다. 그 후의 뒷감당, 이를테면 괜시리 이불귀를 여민다든지, 가구 틈새의 어둠을 보지 않으려 애쓴다든지, 하는 것들은 내 몫이지만.

재밌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온전히 현실 너머의 것으로 즐길 수 있다면 즐거울 수 있다. 상상의 재미, 어디까지나 그 주인공이 내가 아닐 것을 확신할 수 있는 한 호러는 로맨스와 더불어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을 주는 장르가 아닌가. 그 즐거움의 이름은, 쾌감이다. 그것도 뇌가 비현실을 구분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걸쳐진.

p.26 짧은 순간 공포 영화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해서 죽어간 엑스트라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엑스트라로 죽고 싶진 않다. 나는 다급하게-그러나 귀신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공손하게-외쳤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걸리는 부분이 많다.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로서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호러는 개중 가장 심부의 본능, 생존 욕구를 건드리는 장르다. 안전과 생존을 위협하는 불안을 메인으로 끌고 오는 장르가 바로 호러 아닌가.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피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싶을 것을 왜 찾아다니면서 보고, 읽고, 듣고, 쓰고, 상상하는 걸까? 동어반복 같지만, 우리가 동물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상상하는 동물, 문명화 뒤로 밀려난 동물성을 되살리려 시도하는 동물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로맨스와 호러는 필연적으로 닮은 장르인 것이다. 이성을 넘어서는 것, 의지를 꺾고 기대를 배신하는 것, 예측 밖의 존재. 이 모든 것은 절절한 사랑과 극한의 공포 모두에 발을 걸친 수식어가 아니던가.

p.91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심장이 되는 순간 호러요, 마음이 되는 순간 로맨스가 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당연히 상대방의 마음을 원한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건 눈으로 볼 수가 없다. 상대방의 마음이 나만큼 간절하지는 않음을 느끼는 순간, 사랑의 감정은 분노와 집착으로 변질된다. (...) 너무 지나친 로맨스는, 호러와 서로 모른 척 등지고 사는 쌍둥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 인간은 본디 연약한 살과 부드러운 가죽으로 이루어진, 따뜻한 피가 흐른다는 것, 안전하고 확고한 세계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것, 잠시간 소름돋은 팔을 쓸어내리고 나면 무사히 현실, 안락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동물성을 부정하려 애써온 문명화의 허상을 정면으로 찌르는 쾌감은 필연 중독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워지는 계절에 슬그머니 호러에 눈길이 가는 것도 일종의 사랑 같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데, 비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책을 덮고 나면 작은 의문이 고개를 들지 모른다. 사람이 무서운 걸까, 사람 아닌 것이 무서운 걸까... 그 답은 호러에 있습니다. 오세요. 보면 알걸요.

p.115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은 어찌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 삶에 밀착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죽음을 인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 죽음을 망각하는 것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프로그래밍된 체계인지도 모른다.


*도서제공: 구픽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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