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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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에 더해 법적 성인이 된 지도 한참이고, 어디 가서 갓 사회 나온 초년생 취급 받을 나이도 지났다. 한 사람 몫을 다할 것을 요구받는 일에 익숙해졌고, 더이상 "어른 계시냐", "어른 불러와라" 소리를 듣지도 않는다. 급기야 때때로 부모의 보호자 노릇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른이 되고 사회인으로 자리 잡는 효능감에 익숙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보호자-돌봄대상 관계가 역전되는 것의 두려움에는 전혀 익숙해지지 못했다. 늙고, 약해지고, 느려지고 뒤처지는 부모와 그들을 보호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에 나부터가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시대가 어느 땐데 젊어지는 샘물은 커녕 늙어감을 멈추는 방법마저 똑부러지게 존재하지 않는다. 억울하고 무서워 팔짝 뛸 노릇이래도 별 수가 없다. 그러니 배워야한다. 알아야 덜 무서워진다. 알아야 덜 싸운다. 내 가족뿐만 아니라 같은 사회 성원으로 살아야 하는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다.

p.17 바로 '고령자 씨'입니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 쇠약해져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풍부한 경험에 근거하여 우리들의 상상을 뛰어넘은 말과 행동으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그런 뉘앙스를 담은 말입니다.


전통적인 가부장, 대가족, 성장 중심 사회는 고령 사회에 대한 대처 방법이 전무한 상태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늙으면 자연히 사회에서 물러나 익숙하고 편안한 집단, 주로 가정 내에서, "챙겨주고 떠받들어주는" 대로 받아먹다 쇠약해지고 죽는 줄로만 안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그러나 요즘이 어디 그런가. 수명은 늘었으나 젊음을 유지할 방법은 없다. 과거에 비해 늙고, 아프고, 겉도는 채로 사는 기간이 늘어났을 뿐이다. 노인의 기준은 변했으나 변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대처하지는 않지만 요구는 한다. 전통적 의미의 노년기는 이미 한참 뒤로 밀려버렸다.

노인은 투표권을 뺏어야 하네, 운전면허를 박탈해야 하네… 우스개로, 분풀이로 쉽게도 말해지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젊지 않고 영원히 젊은이들의 사회에서 인정받고 "기능하는" 성원일 수 없으며, "젊은이"들만 모이는 사회에서 살 수 있지 않으므로.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일시에 죽을 수 없다면 함께 살아야 한다.

세상은 변했고, 인간은 오래 살게 되었다. 늙고 병들고 "덜 기능하는"상태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빠르게 늙어가고 있으며, 나도 늙는다. 아니, 이미 늙어가는 중이다. 도마뱀 꼬리 자르듯 몸뚱이를 훌렁 벗어던지고 도망갈 방도가 있지 않은 한, 어쩔 수 없이 이 늙고 느려지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제목은 묻는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그리고 설명한다. 왜 그들이 화를 내는지, 왜 느려지는지, 왜 고집을 부리고, 우기고, 과시하고 싶어하며 왜 "답답하게 구는"지, 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지. "고령자 씨"와 함께하는 이의 태도는 어때야할지.

다같이 덜 불행하려면, 사람으로 살다 죽으려면 배우는 수밖에 없다. 이런 나와도, 늙었거나 늙어갈 남과도.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은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해야한다"로 사람을 뜯어고칠 수 없기 때문에, "바람직한 모습"으로 "훈련시켜야만" 공존하는 게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며, 누구나 그렇게 되기 때문에.

모르면 두렵다. 안다고 두렵지 않게 되는 건 아니지만, 덜 무섭다. 준비할 수 있다면 덜 힘들 수는 있다.

p.124 나이가 들면서 신체 능력과 인지 기능은 쇠퇴하기 마련이며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도 늘어납니다. 자신의 유능감과 할 수 없어진 일에 대한 실망감의 간극이 클수록 스트레스를 느끼기 쉽습니다. 작은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짜증이 쌓여 (...) 최후의 한 방울이 더해지면 컵에서 물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되어 화가 표출되는 것입니다. 고령자 씨이기 때문에 화를 내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사람은 이상으로 단박에 뜯어고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당장"에는 그에 맞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돌보는 사람에게도, 돌봄 받는 사람에게도 삶이 있기에, 각자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과 시야가 필요하다.

돌보기 위한 배움은 함께 살기 위한 배움이다. 피할 수 없이 도래할 미래를 위한 배움이고, 지금 현재를 같이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배움이다. 알면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면 기다려주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결국, 모두가 서로를 돌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스스로가 제대로 돌봄 받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쓰인 내용이라 한국,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이상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대체 왜 저럴까', '왜 이럴까', '나도 그도 모두가 언젠가는'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기에는 충분히 도움을 줄 만큼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실용서다. 일독을 권한다.

p.157 앞으로의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간접 호혜성 커뮤니티라는 사고방식이다. 장기적인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서로 서로' 지탱해 주는 공동체가 아닌, 도와준 상대와는 다른 별개의 사람과 단체로부터 그 보답을 받는 것이 가능한 공동체다. 도움을 받은 쪽이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들 필요가 없고, 도와준 쪽도 '전혀 감사해하지 않는군' 등의 불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가볍게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그런 공동체가 실현되면 더욱 많은 고령자 돌봄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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