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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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점을 달리하는 단편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은 연작소설집일까요, 아니면 하나의 장편소설로 봐야 할까요? 솔직히 저는 첫 수록작이라고 해야할지, 첫 번째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한 챕터를 읽고 나서 '이야. 열등감 대단한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엔 이게 내 얘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내가 주인공의 나이 때에 저런 생각을 안 해봤던가? 나는 과거를 부정하고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친 적이 없었던가? 자신있게 부정할 수 없는 스스로를 돌아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이야. 내 열등감도 만만치 않았네'.

태어나서부터 이렇든 저렇든 생활에 부족함 없는 대도시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늙어 죽어가는 공동체의 시취"를 실감해본 경험 없이 그저 막연한 농어촌 어딘가를 떠올리는, 오만한 인간일 수밖에요.

p.15 작은 난리가 일어나는 와중에, 허무한은 초고추장과 간장으로 얼룩진 비닐을 유심히 보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게 늙어 있었고, 비스하게 외로운 것 같았다. 허무한은 늙어 죽어가는 공동체의 시취를 느꼈다.


기회의 평등, 공정한 경쟁과 노력의 결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수능과 대학기관의 환상. 능력이 있으면, 노력하면 누구나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찬란한 기만. 이렇게나 여과없이 마주치는 경험도 오랜만입니다.

앞서 이렇든 저렇든 생활에 불편이 없는 수준의 환경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는데요. 내게 절박한 이슈가 아니게 된 이후로 괴로운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피해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타고난 성격이 게으르고 소박해 색다른 자극을 추구하지 않기에 어지간한 정도로도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만,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기에 딱히 뭘 더 요구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p.66 "우물 안의 개구리는 불행할까요? (...) 이 개구리를 우물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되는 거예요. 우물 밖의 드넓은 세상과 우물 안을 비교할 수밖에 없겠죠. 아무리 우물 밖에서 오래 살아도, 우물 안에서 가졌던 습성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요. 그 중간에서, 그 중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우물 밖에도, 안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요는, 우물 밖으로 나간 적 없는 개구리의 삶을 살았다, 이겁니다. 나는 여전히 우물 밖을 알지 못하는, 혹은 알고는 있으나 이 작고 안락한 세계에서의 지위에 만족하기에 머무르기를 택한 개구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물 밖을 갈구한, 혹은 우물 너머의 세계를 보고야 만, 차마 열망을 떨치지 못한 이들의 세계는 어떨까요. 승승장구하는, 노력이 빛을 보는, 기대를 한몸에 받지만 이렇다할 성취를 내지는 못하는, 선하고 근면한 '재능충'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미덕 아닙니까? 전생애에 걸쳐 요구되고 주입되는 환상이기도 하지요. 성취는 노력의 결과다. 경쟁은 공정하고 노력에는 마땅히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능력있는 자가 모든 것을 얻는다.

p.141 임현채에게 이 힘은, 자신에게 주어져 마땅한 힘이었다. 누구도 뺏을 수 없는 힘. 누구도 임현채에게 힘을 포기하라고 할 수 없었다. 이 힘이야말로 임현채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이 힘이야말로 임현채의 삶이었으니까. 오직 이 힘 때문에 그는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돌아오는 실패를 넘어선 패배 그 자체라면, 적절한 때에 적절한 성취를 보여 기대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 이에게는 인생의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그러던 차에 우연한 기회로 주어진 힘, 눈물나게 달콤한 보상, 그것을 포기하라 말할 수 있는 자, 대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세계에서 등장인물 모두는 분투하는 존재입니다. 누구는 개천의 용으로, 누구는 노력형 인재로, 누군가는 부서진 낙원에서 뛰쳐나오는 '인간'으로요. 그만큼 이기적이고 나약한 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군들 안 그렇겠어요. 주어진 세계에서 살아남기도 벅찬, 평범한 이라면 더더욱.

분명 작품의 세계는 환상적이고 초인적인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지만, 꼭 그만큼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원하느냐 묻는다면, 가봤자 이런 곳이라면 싫다, 고 답하겠습니다. 마법이 있든 없든, 별반 다르지 않으니.

p.231 사회에서 반마력을 가진 이들이 종사할 수 있는 일자리는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더럽고, 가장 어려운 일들. 물론 모두 이 세상에 필요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선택지가 그것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은 불공평했다.


인간됨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지-않음의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 딛고 선 땅을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우물을 뛰쳐나갈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능력은 그런 데에 쓰는 말입니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을 거머쥐지 않았다고 욕하고 부에서 부를 만든 노력에 보상까지 내놓으라고 할 때가 아니라.

인간이 되는 문은 좁고 길은 험난합니다. 인간됨의 자리는 위태롭고 사소합니다. 필요하다면 목숨까지 걸어서라도 문을 열어젖히는 일입니다. 어떤 "최선"이 도래하든 한 사람이라도 "사소한 것"이 된다면 그곳은 이상도 최선도 아닙니다.

나는 이 책에서 부끄러움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아주 희미한 빛을 보았습니다. 괴로움을 아는 존재를 보았습니다. 변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작은 기대를 걸어보렵니다. 신도 마법도 없는 세계에서, 인간 너머의 힘을 내는 인간의 힘에.

p.253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어쩔 수 없어. 이 세상에 완전히 선한 일 같은 건 없다. 최선이었다. 그게 최선이었어. (...) 네가 도와주면, 더 나은 세상을 보여준다고 약속할게." "그래서? 그 나은 세상에 우리 아빠는 어딨는데!" 이윤진이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p.257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 하나하나의 역장이 모두 죄책감이라는 비수가 되어 그녀의 폐부를 찔렀다. 어떤 점에서, 그 부끄러움은 종아리의 총상보다, 출혈과 냉기로 인한 탈진보다 더 그녀를 괴롭게 했다.



*출판사 래빗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갈아만든천국 #심너울신작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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