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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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라는 말을 종종 떠올린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든 낯선 사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사람, 영원히 떠도는 미완의 존재, 자기 자신에게마저. 현시대의 이방인은 어떤 의미일까.

이민자를 말하기란 이방인에 비해 한결 쉽다고 할 수 있겠다. 후자를 구성하는 요소들, 그러니까 소외라든지 소격감을 기본 구성품으로 딸려주지 않던가. 바라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물건을 강제로 떠안겨주는 일.

숙명처럼 주어지는 영구불변의 정주지로서의 국가와 출신의 경계가 희미해진 시대에 이민이 대수냐 물을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그것들은 힘을 갖고 있지 않은가. 떠날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떠나온 자가 새로운 곳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닫혀있지 않은가.

굳이 말하자면, 주어진 대로 살든지, 모든 보호수단을 잃고 무표의 존재, 길가의 돌멩이만도 못한 존재로 격하되든지, 둘 중 하나를 고를 자유 정도가 있는 셈이다. 그것도 자유라고 칠 수 있다면 말이다


제각기 쓰여진 여덟 편의 작품들은 황금의 땅, 까지는 아니어도 황금빛 햇살이 아낌없이 내리쬐는 곳, 선주민과 동물을 밀어낸 이민자의 사막, 호주, 그곳에 당도한 새로운 이민자들의 일상을 그려보이고 있다.

사방이 바다인 메마른 땅, 물로 둘러싸인 대지, 그리하여 치솟은 불길을 피해 도망칠 수도 없는 곳. 사람이라고 다를까.

왜 떠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바라 이 모욕과 수치와 고난을 견디고 있는지의 문제다. 이방인의 지위에서 또다른 이방인을 배척하는 목소리에 동조하기란 적지 않은 자기부정을 요하기 때문이다. 나만은 다르다. 나는 그들이 아니다.

버릴 각오로 떠났으니, 당도한 곳에 악착같이 매달릴 수밖에, 온 힘을 다해 선택과노력과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을 수밖에. 새로운 세계로의 이식과 동화를 위한 필사적인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외로 이어진다. 자신에게서,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에게서.


옳고 그름을 떠나, 빛나는 순간이 응분의 보상처럼 주어지리라 믿기에 바쳐온 헌신을 모조리 부정당할 때 무너지는 것은 비단 자존심 만이 아니다. 이 절박한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은 작품 밖에, 뒤에, 행간 너머에 있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존재하는 것은 모든 존재에 대해 유책이다.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죄에도 책임이 있다. 그것은 나 자신과 "우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로부터의 소외에서, 이방인의 공포에서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의 전회를 목도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손 쓸 수 없는 것. 닿지 않고 알지 못하는 것에서 다가오는 희망의 가능성, 아주 약하고 어리고 또 꺼지기 쉬운 것. 메마른 땅을 불태우는 거대한 불길에서도 살아남는 것. 저 낯설고 연약한 것이 나와 이어져있고 또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

이 작가에게 이른바 "유니버스"가 있다면, 그곳에 들어가는 방법은 낯설고 나약한 피로한 존재들이 손을 잡고 함께 발을 내디디는 것, 오직 그뿐이지 않겠는가. 영원한 거부와 무정주의 두려움, 피로의 바다에서 손을 맞잡는 것, 눈을 마주치는 것.


홀로 결을 달리한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말을 빌어 묻고 싶었다.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너의 존재가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울게 하지 않았는지, 너의 존재가 네가 있을 곳을 없애버리지 않았는지.

언젠가의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의 사랑은 떳떳하게 울고 밝게 빛난다고, 환하게 웃고 눈치 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마땅히 그래야 하고 또 그럴 것이라고, 혼자 울게 해서 미안하다고.

이 또한 이방인에 대한 환대, 존재의 유책과 이어질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내친 "나"들에 내미는 손,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바로 그 책임. 내가 너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너와 나는 각자의 이방인이기에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죄. 경계와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

낯설고 피로한 자들, 이방인에게 가능성이 있다면 오직 이뿐이리라. 나는 또 한 번의 희망을 본다.

p.188 은영은 희율의 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는 나를 사랑해서 괴롭지 않았어?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게 수치스럽지도 두렵지도 않았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의심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어? 네 사랑이 너 자신을 혐오하게 하지 않았어? 네 사랑이 네 가족을 울게 하지 않았어? 네 사랑은 아프지 않지. 네 사랑은 밝고 빛나지. 너는 환하게 웃고 떳떳하게 울지. 눈치 보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지, 네 사랑은.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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