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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평점 :
2022년 2월 24일, 두려움과 설마하는 안일함이 뒤범벅된 채로 전세계가 지켜보던 그곳에서, 드디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집권 이래 팽창주의, 신질서패권의 야욕을 숨기지 않던 러시아 정부가 인접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야 만 것이다. 기실 그 징조는 오래전부터 사그라들지 않은 채 정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명분 없는 일이 어디 있겠냐, 국가 간 일시적인 외교 갈등이니 그들끼리 해결하게 두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가진 것 다 내놔라 하는 마당에 넙죽 내주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명목상의 경계와 주권이나마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집단 성원, 국민의 생존까지도 좌우하는 요소이지 않은가.
말그대로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던 양차대전, 태평양전쟁 이후로 전세계가 휘말려드는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곧 비교적 지엽적 규모의 학살과 침략, 분쟁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러나 결국, 이른바 "선진국"의 성원으로는 미디어 등의 간접경험 외의 전쟁을 겪어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p.57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요? 배급제/기초적 복지제도와 초강력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비밀경찰의 전국적 감시와 통제망으로 무장한 국가는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 내몰려도 그리 쉽게 내파되지 않습니다. 탈세계 추세와 함께 앞으로는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전쟁들이 더 빈번해질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이한 일이지 않은가. 명실공히 휴전 중인 국가이면서 노상 주적은 누구요 승리요 무력을 주문처럼 외면서 그 실상에 대한 위기감은 조금도 없다는 것이. 평화의 세대, 실제로서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번 전쟁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우리, 그러니까 적어도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전쟁을 모른다.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지금 외의 세계를 기약할 수도 전할 수도 없는 그 참상을 모른다. 지금의 전쟁은 국지적 분쟁, 일시적이고 이례적인 갈등일까, 과연.
p.15 전쟁 시대에 평화 만들기란 국가에만 맡길 수 있는 과제가 아닙니다. 시민사회와 그 구성원 각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 무엇보다 평화는 우리 안에서의 가치 재평가부터 시작됩니다. 예컨대 '죽음 장사'라고 할 만한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 폭증에 과연 우리가 환호하고 기뻐해야 하는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봐야 합니다.
p.35 푸틴주의를 총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사회주의의 반대편에 "야만"이 있다면, 푸틴주의는 바로 그 야만을 대표하는 이데올로기 중 하나라고 봅니다. (...) 푸틴주의가 지향하는 미래 세계는 강국들이 약소국을 지휘, 통제하는 서열적 세계이지, 평등의 세계는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목처럼 나는, 우리는, 한국과 주류 선진국 사회는 전쟁 이후의 세계를 구축할 힘이 있을까? 지금의 인간이 빙하기의 종언이 아닌 그 사이의 어딘가를 살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전쟁을 겪지 않은 이들, 전쟁을 세계 어디선가 벌어지는 일 정도로만 아는 이들에게는 전쟁 이후의 세계를 상상할 능력조차 없는 형국이 아닐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일견 현대전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전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유무형의 폭력을 통해 타자의 생명과 자유를 포함하는 존재-범위를 침해하는 것이 곧 전쟁의 본질이다.
작게는 신체와 물리적 공간을, 크게는 이름, 그러니까 의식체계와 존재의 근원까지도 침범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전쟁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다. 힘의 논리, 남의 목숨으로 이득을 보는 이가 주도하는 것.
p.202 신권위주의 국가들은 대신 노동자 등 피통치자 사이의 연대를 파괴해 원자화된 개인이 각자도생식으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게 만들고, 어용언론의 매혹적인 메시지에 홀로 노출되도록 합니다. (...) 저복지와 불안정노동, 개인의 원자화 속에서 무력해진 개인들이 호소력 높은 민족주의적 메시지에 포획된 것이 신권위주의 사회입니다.
p.221 21세기초반 홀로코스트라는 참상을 겪고 현재는 인터넷으로 모두가 하나의 '마을'로 연결된 세계이지만, 여전히 한 국가의 영토 보유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바로 해당 국가의 '살인력', 즉 군사력입니다. 인류가 지난 역사로부터 본격적으로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파괴와 말살을 도모하지 않는 전쟁은 없다. 이번 전쟁 또한 그렇다. 앞서 이야기한 전세계적 규모의 전쟁 이후, 오랜 시간 질서라는 이름 아래 갈등을 키워온 평화의 시대, 그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전쟁의 시대를 상상할 능력을 잃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의 시대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도래했다.
저자는 묻는다. 간신히 재건한 세계가 다시금 포화와 절멸의 길로 착실히 나아가는 지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겠느냐고. 아직도 기존의 방식으로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으리라 믿느냐고. 자본주의 사회의 재앙에서 진보를 주장하는 이의 책무란 무엇이겠느냐고.
소련의 몰락, 과거의 영광 그 이상을 원하는 푸틴의 신질서 이상향을 지켜본 이의 물음에 우리는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러시아의 침략전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반도의 섬,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무엇을 도모해야 할 것인가.
p.262 열강 세계의 외교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반자도 없습니다. 서로 간에 아주 복잡하고 갈등으로 가득한 역사를 가진 중, 러는 지금 이해타산이 맞아 준동맹 관계가 됐지만, 타산이 달라지면 그 관계도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불확실성 혹은 가변성을 염두에 두고 대한민국 역시 앞으로의 생존 전략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