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 - 모든 사람은 한 편의 드라마다
이언주 지음 / 비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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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사람에게 관심이 많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매번 같은 말로 돌려준다. 관심이 아니라 정이 많은 거라고, 있다고 해도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수준에 그칠 거라고.

그래서인지, 토크쇼라면 아주 질색을 했다. 아니,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연사가 나오는 것도 싫고, 여럿이 모여 남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은 종류를 막론하고 시청 시간 10분을 넘긴 적이 없다. 남이사 이런 삶을 살든 저런 삶을 살든, 괜히 훈수 둘 생각 하지 말고 알아서들 앞가림 잘하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동시에, 가까운 이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듣고 있어"다. 귀 기울여 듣고 있다. 당신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당신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어주기를, 그리하여 당신과 같은 마음으로 당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뜻으로 하는 말.

너무도 복잡해진 세상,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그 수만큼 다른 세계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우리는 타인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커녕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모두가 선망하는 빛나고 힘있는 지위가 아닌 평범한 일상의 영웅들, 그러나 제각기 자기 삶의 주인공인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애써 찾아내야만 가능할 만큼 귀한 일이 되었다.

우습지 않은가. 누구도 홀로 살아낼 수 없다, 모든 삶은 유일하다, 노상 입에 달고 사는 주제에 남 이야기는 듣기 싫다고 피해왔다는 것이. 어쩌면 무서워서 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알면 이해하지 않을 수 없고, 이해하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테니 모를 때처럼 속 편하게 살 수 없어서.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향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이것은 단지 말 그대로의 의미뿐만이 아니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자기 자신이라는 닫힌 세계를 내려두고 타인의 삶, 바로 그 자리에 서보지 않는 한 누군가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p.45 호기심은 우리를 움직인다. 기꺼이 움직여 이유를 찾고 묻고 듣게 한다. 호기심으로 가까이 다가간 누군가에게서 '나와는 아주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될지라도, 곽재식과 유재석의 경우처럼 뜻밖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도 있다. 불현듯 발견한 공통점은 서로를 이해하는 첫 문장이 되리라.


그러니 "사람은 다 그렇다", "인생사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틀렸다. 존재는 본질적으로 고독하는 말은 이기심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사람은 홀로 살도록 생겨먹지 않았다. 적어도, 자기 배를 곯을자언정 차마 굶어죽어가는 이를 모른척하지 못하는 이가 분명 존재한다. 언제 어느 때고, 어떤 상황에서든.

팍팍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세상에 여전히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다. 인사를 건네고, 손을 내밀고, 푼돈이나마 나누는 이가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희망은 거기서 온다. 더 작고 약한 이의 삶을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세상을 묵묵히 지탱하고 꼭 한 사람만큼의 가능성을 믿는 이들이 있다.

p.134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마음으로 분투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 모두의 마음속에는 누군가가 옆에 있기를, 혼자가 아니기를 바라는 인간을 향한 본능적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이 절망을 희망으로 희석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찾도록 한다고 나는 믿는다.

p.205 이름 모를 우리네 이웃이 적어도 밥 한 끼 정도는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그 마음에 답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보듬는 곳. (...) 세상의 안부가 궁금한 이들이 이곳으로 더 많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 생존을 확인하며, 우리 모두 오늘 또 하루 잘 살아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사는 원래 그러려고 나누는 거니까.


읽는 내내 평생을 갖고 살아온 그 생각, 신념에 가까운 그것이 처음부터 틀려먹은 것, 오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다채롭고, 당사자에게서 듣는 삶은 타인의 시선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내밀한 층위를 포함한다. 뼈저리게 느꼈다.

선망받는 권력을 쥐지 않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대도, 누군가는 코웃음을 칠 작고 작은 삶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처음, 혹은 수차례 마주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살아내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 어디에나 있다.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련다. 영웅은 매일을 분투하는 평범한 일상에 있다. 내일 당장 세상이 무너진대도 모두가 죽어버리게 둘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있다. 이야기를, 삶을 듣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위대한 이야기가 있다."

p.52 당장은 외롭고 방법이 없어 보일지라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가능성을 믿고 길을 가다 보면 같은 가능성을 믿는 한 사람이 홀연히 나타날 수 있다. 혹은 내가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그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걸출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가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살고 싶은 삶을 그리고, 믿고, 살아가게 되리라 믿는다.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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