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를 해부하다 - 〈키스〉에서 시작하는 인간 발생의 비밀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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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많은 경우에 〈키스〉가 아닐까. 황금빛 강물같은 옷자락에 휘감긴 연인, 그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상을 잊고 황홀경에 빠진 듯한 표정. 어떻게 제목마저 ”키스“일까. 벅차오르는 것 같기도, 꿈꾸는 것 같기도 한 표정, 마음처럼 온 몸을 쏟아부어 기대는 연인.

이것만 보자면 클림트의 작품세계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것만 같다. 공중을 부유하는 마음으로 살았을까. 과연 그럴까. 인생의 곳곳에서 상실과 비탄을 마주해야만 했던 그의 세계가 그토록 아름답고 신비스럽기만 했을까. 혹은, 매일같이 세상을 뒤집는 발견이 쏟아져나오던 때의 정신이 그저 영원불멸한 꿈에 젖어있기만 했을까.

클림트가 태어나 자라고 활동했던 시기의 유럽은 가히 전 분야의 격동기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시기였다. 넓게는 1880년에서 1920년, 좁게는 1890년에서 1918년을 일컫는 ‘빈 1900’, 바로 그 때의 오스트리아에서 집어삼킬듯 나날이 쏟아져나오는 새로운 깨달음과 발상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자. 로댕, 아르투어 슈니츨러, 카를 크라우스, 슈테판 츠바이크, 아놀드 쇤베르크, 에곤 실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모리츠 슐리크, 마르틴 하이데거, 에른스트 마흐, 구스타프 말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찰스 다윈...

이름만 들어도 탄성을 자아내는 쟁쟁한 이들이 별처럼 많았던 시기, 앉은 자리에서 다 말할 수도 손꼽아 세자니 손발을 모아도 모자랄 만큼 쏟아져나오던 바로 그 시기이다. 이렇듯 클림트의 세계는 전 분야에 걸쳐 폭발적인 발전과 참신함이 양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평생 안주를 몰랐던 화가, 죽기 직전까지도 도전과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클림트의 그림에서 동시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그의 그림에 예술-신비 너머의 것이 존재하지 않으리라 단언할 수 없지 않은가?

p.28 ‘빈 1900’은 건축, 디자인, 회화, 문학, 정신분석, 음악, 철학, 정치, 경제학 등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찍는 사상과 인물들을 대거 배출한, 그야말로 ‘문화적 생산성이 대단한’ (...) ‘빈 1900’은 모더니즘을 이끌어낸 시공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과연 그러하다. 무심코 무작위적인 패턴의 일부로 여기고 지나칠만한 요소들에는 인간의 발생과 존재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영감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클림트의 작품은 생물학에 대한 은유로 가득하다.

당시 학계의 중심에 대학이 있었다면, 문화예술계의 주축은 ‘살롱’이었다. 의사, 예술가, 작가, 음악가, 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들이 교류하던 그곳에 클림트라고 예외었을까.

그는 주요 멤버로 활동하던 살롱의 주인 베르타 주커칸들의 소개로 1903년 주커칸들 교수의 ‘예술인을 위한 해부학 강의’에 참석해 인체 구조와 조직, 정자와 난자로부터 발생하는 인체의 신비에 눈을 뜨게 된다.

p.129 생명 탄생의 신비를 신의 뜻으로 설명하는 기독교적인 사고와는 달리, 클림트의 〈의학〉에서 인간을 창조하는 장면은 (...)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어버이로부터 태어나며, 핵심은 여성이고, 자궁임을, 따라서 여자가 생명 창조의 핵심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당시 과학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다윈의 진화론, 독일의 다윈이라 불린 헤켈 교수의 조직학과 함께 그의 창작관에 깊은 영향을 남겼음에 틀림없다. 그 증거로 작품 곳곳에서 다양한 포궁, 양막, 세포조직 모티브를 찾아볼 수 있다.

기존의 신학적 관념과 신의 신비로 존재했던, 설명할 수 없는 불변불가침의 존재로서의 인간상을 탈피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자 했던 클림트의 그림에는 존재에 대한 경이와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것은 그의 일생 전반을 지배한, 고통스러웠던 상실을 포함한다. 그러나 좌절과 무력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은 생명이고, 살아있는 존재이다. 자연의 일부이며, 지극히 유한한 동시에 영원을 꿈꾼다.

p.217 〈생명의 나무〉는 헤켈의 ‘생명 계통수’로부터 디자인적 측면이나 과학적인 관점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 생명의 나무 가지 형태는 클림트의 〈키스〉, 〈희망Ⅱ〉, 〈죽음과 삶〉 등의 작품에도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은 자연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생물 중 하나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의 상징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된, 경이롭고도 한없이 초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마주한 클림트의 작품을 과학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보물처럼 숨겨놓은 수많은 상징과 메시지를 하나하나 발견해가며 감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보이는 것 이상의 충격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신비와 초라함, 인간 존재의 경이와 덧없음이라는 모순을 평생토록 끌어안고 살아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쇠락의 문턱에 선 시대에서의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고뇌를 살펴보기를, 또한 그들의 내면에서 경이와 공포와 희망을 마주하기를.

p.274 리베라가 활동했던 시기엔 많은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미생물과 면역학 연구를 통해 감염병에 관한 이해가 증진되어 감염병으로부터 인류를 지킬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그 결과 리베라의 그림에는, 태아를 위협하는 많은 미생물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의학의 도움을 받아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것이고 또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들어있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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