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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
조르주 페렉 지음, 김용석 옮김 / 신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10분, 오밤중에에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오늘도 질 좋은 수면은 커녕 잠시간의 절전모드에도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한참을 뒤척이고 좋다는 건 다 해봐도 도저히 잠들 수 없는 날엔 차라리 일어나버리는 것도 방법이지요. 깨어있는다고 퍽이나 별다른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창밖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군요. 이곳의 날씨는 자주 궃습니다. 툭하면 흐리고 땅이 젖기 마련이지요.
다시금,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5분. 새들도 아가양도 다 자는 이 시간에 아직도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 밤은 하얗게 지새우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날엔 언젠가의 기억을 꺼내 찬찬히 들여다보곤 합니다. 별 것 아니던 풍경들, 경탄이나 유별난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느리고 지루한 기억들. 오가는 사람, 드문드문 들려오는 새 소리, 대충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되는 엔진 소리...
비단 잠 못 드는 날뿐만 아니라 가물거리며 환상의 경계를 넘는 때에도, 문득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범람하는 시간에도 때때로 찾아오는 이 경험은, 지각 세계를 일시에 흔들어놓는 압도 혹은 붕괴와는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배경과 나의 분리, 투명한 공기방울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나와 그 밖의 모든 세계라는 유리화의 경험이라고나 할까요. 모든 것을 포착하고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지금 여기 이 행위에 영원히 새겨보려는 시도는, 그래요. 시선의 경쟁, 나와 타자의 영원한 줄다리기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기, 한 자리에 정물처럼 놓여 모든 것을 전경으로 끌어오려는 시도, 제목처럼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는 어쩐지 슬픈 구석이 있습니다. 저자 또한 그러했는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요.
어쩌면 나는 은연중에, 모든 것을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고 분주합니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도, 같은 시간에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일상의 편린을 반복해 드러내보이더라도.
세상은 필연적으로 미끄러지고 흘러넘치거나 채 인상이 되지 못한 잔상만을 남기고 지각 너머의 세계로 흩어져버리고는 하지요. 묻고 싶어집니다.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 지각에 포 착되는 모든 것을 채집하는 것과도 같은 이 시도에는 의미가 있을까요? 찰나에 휘발되는 감각과 인상들을 그대로 모아두려는 시도는 무엇을 닮은 걸까요?
마지막으로, 지금 시간은 새벽 4시가 조금 안 되었고요, 머지않아 해가 뜨고 하루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 글도 금방 잊히고 한구석에 밀려나 존재조차 희미한 기억이 될 테고요.
언젠가, 잠들지 못하는 어느 날에 다시금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한다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게 된다면 다시금 이 글을 불러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날도 필사적으로 모든 것을 붙잡아 내리누르고 여기에 있으라, 애를 쓸 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나 언젠가, 어느 곳에서 이 글을, 이 책을 떠올린다면 저자를 따라 어느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도착지를 모른 채 힘껏 내달린 후의 나른한 탈력감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모쪼록 해가 저물어가는, 도시 한 켠의 느긋한 오후이기를 바랄 뿐입니다.